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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는 아빠, 할 말하는 아내

세상은 홀수와 짝수다.

by 콩알아빠

요즘 아내와 가장 자주 하는 이야기는
"콩알이는 누굴 닮을까?"이다.

눈은 아내를 닮고,
머리숱은 나를 닮고,
발가락은 아내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서로의 장, 단점을 찾아 협의하고
배시시 웃어넘긴다.

장난처럼 시작된 대화지만,
사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게
나에겐 하나 있다.

눈치.
이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대화 중에도,
메시지를 쓰기 전에도,
상대방의 반응을 상상하다가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음으로 넘긴 적이 많다.

혹시 내가 이 말하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내 감정은 언제나 맨 끝으로 밀려났다.

예전엔 그걸 배려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내가 상상한 타인의 감정에
몰입한 결과였다는 걸.

아내는 나와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은 망설이지 않고,

불편한 건 넘기지 않는다.

한 번은 연애 초,

자주 가던 샤브샤브 집에서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다음부턴 안 와야지’ 생각했지만
아내는 직원에게 물었다.

"사장님 바뀌셨어요?"


속이 시원하면서도

'헉' 하고 놀라게 된다.

나는 눈치이 보는 사람이고
아내는 자기표현이 강한 사람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단점들이다.

홀수와 홀수 같은 사람들.
모난 우리지만,
둘이 만나 짝수가 된 것처럼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가며

또 하나의 숫자를 기다린다.

홀수와 짝수가 있어야

숫자는 완성된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짝수일 수 없고,
모두가 홀수일 수도 없다.

그렇기에

홀, 짝을 떠나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 둘을 꼭 닮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눈치를 덜 봐도 되고,
할 말은 조금 늦게 해도 된다.
우리의 장점을 닮으면 좋겠지만,
단점을 닮더라도 괜찮다.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며 행복해졌으면 한다.

다만, 아빠가 해준 음식을
맛없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콩알아 아빠는 눈치를 많이 봐서..

상처를 잘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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