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기회 대신 가족을 선택했다.
"난 콩알이가 없었다면,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내와 한참을 대화하다가 아내가 선뜻 말했다.
아내는 직장에서 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결혼 전 글로벌 본사에서 상을 받았고,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 속에서도
나이에 비해 꽤 빠른 진급을 했다.
좋은 기회들이 계속 찾아왔지만,
육아휴직을 생각한 그녀에게 그런 기회들은 아쉽게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걸 잘 알기에 어떤 위로를 하지 못했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가족이 우선이야지"
같은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내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왔다.
그런 그녀가 이젠 제법 커진 배와 퉁퉁 부은 발로
출근하는 모습은 항상 내게
왠지 모를 안쓰러움과 고마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아내의 출근하는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쳐다본다.
나 역시, 지금의 아내와 뱃속 콩알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바뀌지 않는 회사의 상황과 좁아드는 내 입지에서
좋은 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들어온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지금의 상황에서 해결책이 될 것 같아 당장이라도 제안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을 생각한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응답기한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아쉬움을 삼키며 거절했다.
드라마 속에서 회사에서 무시당해도 계속 다니는 가장들의 모습을 보며
"아니, 저렇게 무시당하면서 왜 다니는 거야?
이해가 안 가네"라고 혀를 찼었는데.
이제는 드라마가 현실이었고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하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 부부는 기회대신 가족을 선택했다.
무엇을 위해,
어떠한 미래가 있기에
이렇게 희생을 해야 할까.
그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했다.
간혹, 부모님께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 때 어떻게 우리를 키웠냐고 물으면,
그냥 먹고살려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그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과
자기희생이 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가족은 무엇일까?
우리 부부만의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래도 어렴풋이 답을 찾아가는 것 같다.
며칠 전 아내와 태교 여행으로 제주도에 가 성산일출봉을 보러 갔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영상편지를 쓰게 되었다. 쑥스러웠다. 그동안 글로만 적다가 영상으로 나와 말하는 게 어색했다.
"콩알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고, 우리 세 가족 내년에도 여기 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신나게 놀자"라며 붉어진 얼굴로 끝을 냈다.
가족이 있어 내일이 있고,
앞으로의 설렘을 가지는 것.
그게 나만의 가족의 의미인 것 같다.
가족의 의미를 물어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