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웅은 아프면 안 된다.

망토 대신 수건

by 콩알아빠

단백뇨와 간 수치가 높아 한 달 안에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서른 후반, 아직은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믿었는데 몸은 이미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10대에는 밤새 게임을 하고도 멀쩡했다.

20대에는 몇 시간만 자도 다시 밤을 새울 수 있었다.

30대 초반까지는 자정까지 야근하고도 다음 날 또 야근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제는 밤 10시만 넘어도 몸이 무겁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그럼 나중에는 숟가락도 못 들겠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주의'라고만 찍히던 건강검진 결과지가

이제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되지 않았다.


총각일 때는 내가 아프면 그냥

나 혼자 아픈 걸로 끝났다.

하지만 지금은 뱃속의 아이와 아내가 먼저 떠올랐다.

아빠가 된다는 건 결국,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떠올려본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햄버거 일을 준비하시고, 내가 잠들기 전까지 다음 날 재료를 챙기셨다.

부모님은 늘 4~5시간 밖에 못 주무셨다.

그렇기에 저녁마다 황금색 박스 담긴

아로나민 골드를 꺼내드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걸 먹으면 덜 피곤해서 좋단다."


그 말을 믿고 누나와 함께 고사리손으로 모은

용돈을 가지고 약국에 뛰어가서 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부모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영웅 같던 부모님도 이젠 한 달에 한 번꼴로

아픈 곳이 늘어났다.

전화를 하면 로봇이 고장 나듯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허리, 어깨, 다리.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을 것 같던 곳들이

하나둘 아파하셨다.

나의 영웅이 서서히 고장 나기 시작한 것이다.


토요일 아침,

검사 결과를 가장 빨리 알려주는 병원을 찾아갔다.


아내에게는

"혈액검사라는 게 그럴 수도 있대"

라며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불안했다.

불안한 마음이 불씨가 되어 마음속에 일렁거렸다.

30분 동안의 대기 시간은 유난히 길었다.


결과는 '정상'

숨이 빠지면서 동시에 기쁨이 몰려왔다.

불안도, 후회도, 모두 한순간에 지워졌다.


아직 자고 있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덜 깬 목소리로 내 말을 들은 아내는 한마디 했다.

"거봐, 별거 아니랬잖아."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 한마디가 무척 든든했다.


영웅은 아프면 안 된다.

오늘부터는 망토 대신 수건이라도 두르고

동네 한 바퀴를 달려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