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대출 축하 파티
아이의 소식을 들었을 때, 두 가지를 결심했다.
금연과 이사였다.
금연은 신혼 초 더 이상, 아내와 담배로
다투는 일 없이 살고 싶어서 시작했다.
회사에서 연초 두 개를 연달아 피우고
그 자리에서 완전히 끊었다.
덕분에 부부 싸움은 줄었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독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
이후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며 참아냈다.
지금도 길에서 담배 냄새가 나면
"크, 냄새 좋다"며
크게 들이마시고,
아내는 그런 나를 웃으며 바라봤다.
또 하나의 목표는
월세집에서 전셋집으로 옮기는 이사였다.
신혼집을 구할 땐 큰돈이 나갈 곳이 많아
보증금이 적은 월세집에서 시작해야 했다.
혼수는 없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중고거래로 5만 원에 산
우리 몸집만 한 소파를 언덕길에서 조마조마하며 옮겼다.
힘들면 골목길에 내려놓고
번갈아 가며 앉아 쉬었다.
이 소파는 현재 우리 부부가 가장 만족하는 가구지만, 다시 돌아가면 절대 안 살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추억과 출발이 담긴 집이었지만, 아기 물건이 늘어나면서 방이 좁게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이사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1층에 생긴 편의점이었다.
매일 현관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아내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현관 근처에 파라솔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때마다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결국 내가 먼저 이사를 말했다.
우리는 두 달을 기다려 좋은 집을 찾았다.
교통은 불편해도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아내와 나는 그날 바로 가계약금을 걸었다.
다음 난관은 대출이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은행들을 돌아다녔지만,
'대출규제 때문에 너무 늦었다',
'우리 은행과 거래가 없어 장담 못 한다',
'다른 지점 가라'는 거절만 돌아왔다.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혹시 늦었나? 이사 못하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에 등골이 서늘했다.
아내는 온라인 대출을 추천했지만
나는 꺼림칙했다.
대출은 은행에 직접 가서 얼굴 보고 해결해야 한다는 나의 똥고집이 나온 거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망설이는 내 단점이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결국 온라인으로 급히 진행했다. 서류는 간편했고, 진행은 빨랐다. 집주인께 채권양도를 부탁드렸고, 신청 6일 만에 대출이 나왔다.
올해 두 번째 환호였다. 첫 번째는 '콩알이'의 탄생이었고 두 번째 환호는 대출 승인 문자에서 자그마하게 터져 나온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집에서
전세 대출 성공 자축 파티를 열었다.
족발을 뜯으며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조잘거리는 나를 보며
아내는 "거봐, 진작에 내 말 좀 듣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우리 집도 아닌 전셋집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갸웃 뚱했지만,
나에게는 가장으로서 우리 가족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다는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컸다.
그래서 이사 가기도 전에 퇴근길에 미리 이사 갈 집에 들러 구경도 했다.
식구가 한 명 늘어난 만큼, 방 한 칸이 늘어났다.
우리 세 가족의 새 출발이 기대되었다.
올해의 두 가지 목표,
가족을 위한 더 나은 집으로의 이사와 금연
모두 이루었다.
오늘만큼은 고생한 나에게 "스스로 고생했다"라고 다독여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