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한 소년이 있었어.
아버지의 재력, 명성을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인 양 으스대며
그렇다고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진 않았어
그런 그에게는 항상 친구들이 붙어 다녔지.
"오늘 저녁에 피시방 콜?"
"나 돈 없는데..."
"누가 너더러 돈내래? 가자~"
사업하시는 아버지 덕에 주머니에 돈이 마를 날 없었던 그 소년은
항상 남들에게 나눠 주는 걸 좋아했어.
그 아이가 자라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의 주변엔 여전히 사람들로 넘쳐났어.
"얘들아~ 과제하느라 힘들지? 우리 치킨 먹고 하자 내가 사 왔어~"
"맨날 미안해서..."
"친구끼리 뭐가 미안하냐? 돈 있는 사람이 사면되는 거지~"
그는 늘 대수롭지 않은 듯이 친구들을 대했지.
뭐 덕분에 전화 한 통이면 달려 나올 친구들, 무슨 일 있으면 발 벗고 도와주는 친구들
때 되면 연락해 오는 친구들 덕에 그는 외로울 틈이 없었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했고
자주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어머니께 전화가 온 거야.
"지금 올라올 수 있니? 네 아빠가 지금 많이 안 좋은데..."
아버지가 편찮으시단 전화였지만 항상 나무처럼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아프셔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털고 일어나 제자리를 지키셨던 분이라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나 공부할 게 많아서 집에 가기 힘들 것 같은데..."
그랬어.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별거 아닐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는 그 전화를
무시해 버렸어.
얼마뒤 집으로 찾아갔을 때.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건강해 보이셨어.
"에이 뭐야. 아프셨다더니 더 젊어지신 것 같아"
"개놈새끼 말은..."
"헤헤 아버지 나 교육 들어야 되는데 돈 좀 주셔요..."
"... 아껴 써..."
호기롭게 돈을 건네시던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살짝 멈칫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건네받은 돈에 그는 마냥 행복했지.
그 후로도 그는 갖은 명목으로 용돈을 타냈어.
그리고는 지인들과 노는데 열과 성을 다했지.
얼마나 흘렀을까? 그와 그의 여자친구 사이에 아기가 생겼고. 그때 그의 나이 25,
대학교 4학년 때 일이야.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을 아는 그는 임신했단 사실은 숨긴 채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며
그녀를 소개해줬어.
그의 아버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뭔지 모르게 복잡한 표정이 섞여 있었지.
어느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어.
"결혼... 꼭 지금 해야겠냐...?"
"왜요? 맘에 드신 거 아니었어요?"
"너 이제 4학년인데 취업하고 돈 좀 모아서 그때 결혼하면 어떨까 싶어서 그러지"
"에이~ 아들내미 장가보내는데 얼마나 든다고.."
그는 솔직히 서운했어. 집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결혼은 니 돈으로 하라는 식의 말로 들렸던 거지.
그 뒤로도 두어 번 같은 전화를 받았었고 결국 어머니도 그에게 전화를 한 거야
"지금 네가 결혼 걱정할 때니?"
"아 왜들 이래? 언제는 빨리 장가가라더니만? 됐어요 안 하면 되잖아"
뱃속의 아기는 점점 커져가는데 자꾸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로 지체되니 그도 화가 났었나 봐
아버지는 무서워 말 못 하고 그 모든 걸 어머니께 풀었던 거야.
"알았어"
알았어라는 한마디에 이제 됐다 싶었던 거지. 앞으로 펼쳐질 결혼생활과 미래를 그리며
그는 그렇게 행복했데
결혼식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인생을 뒤바꿀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해.
"아버지 수술하는데 안 와볼 거니?"
"취업준비하느라 바빠서 못 가요"
그렇게 그는 또 어머니의 부름에 외면했어.
주머니 속 돈은 왜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지 모르겠어 그렇지?
돈이 떨어진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거야.
"엄마 나 돈 좀.."
"... 네 아빠 사업 인계하게 됐다.."
아버지는 당뇨를 심하게 앓고 있었고 합병증으로 여러 번 쓰러지셨던 거야.
더 이상 건강상 문제로 사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 거지.
"에? 그럼 나 결혼은?"
그는 철이 없었던 거야. 아버지의 아픔보다, 어머니의 상실감 보다, 앞으로 가족의 미래보다
당장 내가 중요하고 급했던 거지. 다른 건 보이지 않았던 거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결혼은 예정대로 진행되었어.
다만, 그의 아버지는 더 이상 돈 많은 사장님이 아니었고
그는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대학교 4학년 생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돈이야 벌면 되지'
늘 그랬듯 안일한 생각만을 하고 있었으니까.
눈치챘니? 그는 네 아빠 바로 내 이야기란다.
다행히 아빠는 결혼하기 1주일 전 최종면접에 합격해서 신혼여행 직후 입사 예정이었어.
다만... 할아버지가 결혼자금이라고 없는 돈 쪼개 만든 2천만 원으로 보증금 2천에 월세로 시작을 하게 됐지.
아빠 첫 월급이 얼마였는 줄 아니? 출근일 수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통장에 찍힌 돈은 30만 원.
월세가 55만 원이었는데 월세도 내지 못할 돈이었지.
그때도 철없는 아빠는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돈을 빌렸어. 갚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계속 빌려 댔던 거야.
결국 할아버지는 사업을 접으시고 살고 계시던 아파트까지 팔아버리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시게 됐어.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 할아버지의 건강, 돈, 사업 이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한 죄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단다.
그거 아니? 후회와 깨달음은 아무리 빨리 해도 상처를 남긴다는 것.
우습게도 그때 아빠는 할아버지를 원망했던 것 같아.
내가 거지같이 사는 게,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다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자기 관리에 소홀했던 할아버지 탓같았어.
그렇게 아빠의 결혼 생활은 아빠가 그렸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시작되고 있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