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평범함과 특별함에 대하여

by 도리

고단한 하루의 끝에 잠자리에 누워서

내일이 오지 않고 이대로 영원히 잠들기 바라던 때가 있었어.

날이 밝고 아침이 오는게 두려워 몇 번이고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쉬던 그때.


"자?"

"쉿! 다소 지금 잠들었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너를 토닥거리며 졸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이 상황이 짜증이 난 건지 내 처지가 짜증이 난 건지,

가슴이 뭔가 답답한 게 이유 없이 화가 나더라.


"내일은 어쩌지?"

"으그그그! 흐아~ 뭐가 돼도 되겠지! 일단 좀 자 출근해야지"


너를 재운다고 한 자세로 너무 오래 있어서 몸이 많이 찌뿌둥 한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주섬주섬 일어나려고 하는 네 엄마를 보며 물었어


"당신은 안자? 애도 재웠는데 깨기 전에 좀 자지?"


내 말에 네 엄마는 피곤에 절어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입만 웃으며 아빠에게 말했단다.


"내가 잘 시간이 어딨어... 애 잘 때 옷도 정리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

"도와줘?"

"놉! 출근해야지 얼른 자!"


그렇게 방문을 나선 네 엄마.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쿵쾅 거리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걸까?

아니 어쩌면 미안해서, 네 엄마 고생하는 것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너를 키우지 못하는 것도

돈이 없어 흔한 장난감도 사주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숨죽이며 사는 것도

모두 내 탓인 것 같아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숨죽여 울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다녀올게"


시계를 멈춰놔도 시간은 간다고 했던가. 결국 아침이 왔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네 엄마를 바라봤을 때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가 불편한 건지 죽겠다고 악을 쓰며 우는 너를

어르고 달래며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그래도 아빠만큼은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라는 작은 배려였을까?


"다녀오시게! 우리 아들~ 아빠 보고 인사해야지? 다녀오세요~"


너의 손을 억지로 흔들며 날 보고 웃고 있었어.


도리 고객님 이번 달 대출 원리금 입금일은...
가스 미납으로 인한 공급 중지예정 안내..
도리 고객님 연락이 닿지 않아 직장, 자택으로 실사 방문 예정입니다.


'하아... '


연달아 울리는 핸드폰 알림을 애써 무시하다가 얼핏 봤을 때.

더 이상 서있을 힘조차 없어 그대로 주저앉아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단다.

하얀 연기가 한숨과 함께 뿜여자 나올 때

연기 때문인지 눈물도 찔끔 흘러 나오더라고.

어느덧 다 타들어가 담배를 집어든 손가락이 뜨거워질 때쯤

바닥에 비벼 끄고 또 한대를 물고는 친구에게 전화했어.


"야~ 오랜만이다? 나? 나야 잘 지내지. 그런데 말이야..."


처음부터 돈 빌려 달라고 한 전화였는데 아직 자존심이 남아 있었던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어.

친구들 기억에 아빠는 돈 많고 자신감 넘치는 친구로 기억돼 있을 테니 말이야.

그냥... 계속 그렇게 남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자존심이 밥 먹여 주니? 나랑 내 가족이 지금 죽게 생겼는데.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며 한숨과 함께 다시 내뱉고는 겨우 입을 뗏어


"나 돈 좀 빌려주라..."

"엥? 부르주아가 서민에게 돈도 빌리나?"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내 말을 장난스럽게 받아들였고 그 말은 아빠를 다시 한번 바닥에 내리꽂는 것처럼 느껴졌어.

이러나저러나 아빠는 돈을 빌려야 했고 자존심이 바닥나버린 아빠는 괜스레 화가 나고 창피해 큰소리를 쳐버렸지


"야! 애기 분유 좀 사려고 그런다. 집세도 내야 되고 빌려줄 거야 말 거야"

"내가 돈이 어딨냐...?"

"너 학교 다닐 때 누가 너 데리고 다녔냐? 이 새끼... 은혜도 모르는 새끼! 야 꺼져!"

"..."


그렇지... 돈이 없었을 거야 같은 사회 초년생끼리 빌려줄 돈이 어딨겠어.

하지만 그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어. 단순히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거에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 버렸지.

출근을 해서도 언제 대출업체에서 찾아올까.

전화만 울려도 사체업자가 아닐까?


"도리씨 찾는 전화예요"


라는 동료의 전화 한 통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누군가 내 전화를 받게 될까 봐 전화만 울리면 당겨 받으면서

그렇게 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갔던 것 같아.

그렇게 숨 막히는 하루가 끝나고 퇴근을 하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도리아저씨~ 언제 와?"

"응? 왜?"

"당신 피곤한데 미안한데... 친구가 근처에 왔다고 해서 잠깐 만나고 와도 될까?"


누구는 친구들한테 돈 빌리려고 자존심도 다 내려놓고 쩔쩔매는데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엄마말에 아빠는 솔직히 어이없고 답답했지만 만나지 말라고 할 수 가없었어.

엄마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응 금방 갈게"


집 밑에 다다랐을 때 우편함에 꽂혀있는 미납청구서를 보자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어.

집문을 열자 잠이 든 너를 눕혀놓고 그 옆에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는 엄마가 보였지.

오래간만에 활기 있는 네 엄마를 보니 서운한 맘도 답답한 맘도 조금은 가라앉으면서도

더욱 미안해지더라. 저렇게 해맑고 활발한 엄마였는데 내가 이렇게 만들었구나 싶어서 말이야.


"도리아저씨~ 기저귀는 방금 갈았고 좀 있다 깨면 맘마만 주면 돼 한 스푼 반 넣어주면 돼 몇 스푼?"

"한 스푼.. 반.."

"좋아~ 헤헤 나 금방 올 거야~ 밥만 먹고 바로 올게~ 뭐 사달라고 하지?~"


그렇게 집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또 한 번 초라하게 느껴지는 아빠였단다.


'하아.. 다른 집 남편들은 친구 만나 쓰라고 카드도 휙 던져준다던데...'


아빠 손에는 카드는커녕 미납청구서만 들려있었어.


'으아아 앙'


그렇게 선채로 한참 멍하니 있는데 네 울음소리가 날 깨우더라.


'하... 한 스푼 반... 부... 분유가...'


한 통 남은 분유통을 부랴부랴 열었는데 바닥이 보이는 분유양에 또 한숨이 쉬어졌어.

젖병을 가져와 분유를 덜어 넣는 아빠의 손은 많은 생각과 함께 떨리고 있었단다.


'한 스푼...'


바닥을 보이는 분유통을 긁어 마저 푸면서 어찌나 내 모습이 처량하던지..


'반...'


억지로 퍼담은 분유를 차마 통에서 꺼내지 못하고 멈칫했어.

그리고 바라본 너는 얼굴까지 빨개져 울고 잇더라.


'조금 덜먹여도 괜찮겠지..'


반스푼을 다시 분유통에 털어 넣고 젖병에 물을 넣고 너에게 물리면서

힘차게 젖병을 빨아대는 너의 얼굴에 내 눈물인지

너의 눈물 자국인지 모를 눈물이 네 뺨 위로 떨어져 흘러내릴 때 아빠의 슬픔도 같이 흘러내렸단다.

그렇게 다시 잠든 널 옆에 두고 시계만 바라보며 네 엄마를 기다리는데


-철컹-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네 엄마가 보였어

손에 든 하얀 비닐봉지와 함께.


"아저씨~ 밥 안 먹었찌? 만두 사 왔어 같이 먹자!"

"하아.. 돈도 없는데 또 무슨 만두를..."

"아닌데? 친구가 사준 건데?"


엄마는 여전히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만두를 내려놓으며 연애할 때 아빠가 사줬던 오래된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봉투를 하나 내밀었어


"자! 오늘 애기 잘 본 일당!"


돈봉투였어. 갑자기 웬 돈인가 싶어 어리둥절 한 내 표정을 바라보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만두를 꺼내기 시작했어


"웬 돈이야?"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 조금 빌렸어"


엄마는 같이 만나 떠들며 웃을 친구를 만나러 간 게 아니었어. 네 분유, 기저귀, 나 그리고 우리를 위해

돈을 빌리기 위해, 돈을 빌려줄 친구를 만나러 갔던 거야.

너무 미안했지... 나만 믿으라고, 평생 고생 안 시키겠다는 내 말만 믿고 따라온 네 엄마에게

이런 상황과 현실을 안겨줬다는 게 너무 비참하고 미안했어.


"왜 그랬어... 내가 알아보고 있는데..."


만두를 하나 집어 물고 입에 우물거리며 또 한 손으로 집어 나에게 내밀던 네 엄마의 모습...


"와 맛있다! 이 집 잘하네! 먹어봐~"


차마 입이 벌어지지 않아 바라만 보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만두를 꿀꺽 삼키고는 아빠에게 말했어.


"왜 혼자만 힘들어? 나도 있잖아. 우린 가족이잖아"


엄마의 그 말은 아빠에게 큰 위로였음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더욱더 초라하게 만들었어.


"미안해..."


내 말을 뒤로한 채 다시 만두를 집어 들며 아빠에게 내미는 엄마였지.


"아 뜨뜨.. 뭐가 미안해? 괜찮아! 어차피 우린 잘될 거니까~... 뜨거운데 빨리 좀 드시지?"


아무 의미 없던 평범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한 것이 아니야.

나를 있게 하는, 나를 있을 수 있게 하는, 그때를 수식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된단다.

아빠는 왜 그렇게 만두를 좋아하냐고 물었던 적 있었지?

원래 아빠는 만두를 좋아하지 않았어. 명절 때 떡만둣국을 끓이면 떡만 골라 먹는 그런 사람이었지.

하지만, 그날 먹었던 만두맛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단다.


어쩌면 아빠는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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