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고 퇴근하는데 골목길을 지나갈 때쯤
갑자기 축구공 하나가 아빠 차 앞을 굴러가지 뭐야?
'응? 뭐지?'
축구공에 시선을 뗴고 앞을 바라봤는데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모를 아이가
갑자기 휙 앞으로 튀어나오더라고
- 빠아앙 -
놀란마음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경적을 울렸어
아이는 놀랐는지 내 차 앞에 서서는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고는 다시 공을 주으러 가더라구
그 아이에게 말을 걸려 창문을 살짝 내리자
내가 혼을 낼 줄 알았는지
"죄송합니다..."
바로 사과하며 어쩔 줄 몰라하더라.
"조심해서 놀아야지~ 여기 주차된 차 중에 비싼 차 많다?"
그냥 조심해서 놀으라고 한마디 할 생각뿐이었는데 말이야.
다시 창문을 올리고 출발하면서 어렸을 적 아빠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되었어.
- 야! 이쪽 패스! -
요즘은 학교운동장에 아이들이 없다며? 학원이다, 피시방이다, 과외 다해서
어른들보다 더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
아빠 어렸을 때는 골목이고 학교고 할 것 없이 공만 있으면 그곳이 운동장이고 놀이터였단다.
"야 이놈들아 대문 그만 걷어차고 다른 데 가서 놀아! 공으로 하도 걷어차서 다 찌그러졌네!"
물론 어른들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았지만 말야.
후반 휘슬과 같은 어른의 호통소리에 우리는 축구를 끝마치고 골목을 걸어 나왔어.
지금처럼 차가 많지 않았던 때이기에 드리블을 하며 인도와 차도를 번갈아 걸었지.
한참 뛰어놀았던 탓일까? 목이 마른 우리는 문방구에 들어갔어. 문방구라고 아니?
요즘은 펜시점, 문구점, 장난감가게 해서 전문적으로 나뉘어져 있던데
아빠 때는 문방구에 가면 간식도 있고, 장난감도 있고, 책, 공책 등 없는 게 없는
보물상자와 같은 곳이었단다.
친구들과 신나게 한바탕 구경을 하고선 냉장고 앞으로 모였어.
"다 얼마 있어? 꺼내봐"
그 당시에 아빠랑 같이 놀던 친구들은 5명이었어.
독수리 오형제 아니? 동네사람들은 우릴 그렇게 불렀어.
네가 잘 아는 기용이 삼촌, 하나 이모도 독수리 오형제 출신이지.
나머지는 누구냐고? 그 친구들은 음... 글쎄? 연락을 안한지 오래돼서
생김새도, 이름도 천천히 잊혀져 결국엔 그런 일이 있었지.. 하는 추억만 남더라.
아들아, 꼭 기억하렴. 지금 이 순간을 평생 가져가고 싶다면
계속 꺼내보고 닦고, 추억해야 잊혀지지 않는 거란다.
상자 속에 가득 넣어놓고 꺼내지 않으면 어느 순간 그 상자에 무엇이 있었는지 잊혀지고
그 상자를 찾지 않으면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른 채 내 삶에서 지워져 버리더라고
나도 모르게 천천히 말야.
"에? 넌 뭔데 십원 짜리만 있냐?"
"야 그래도 애보단 낫다 애는 아예 빵원이야!"
아이들이 내민 손을 천천히 훑어보던 한 친구가 십원 짜리를 내민 친구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쏘아 붙였는데 그 옆에 돈 없이 손바닥만 내민 친구도 있었던 거야
"야야 됐어! 내가 사줄게~ 사실 교회 헌금 내라고 준 돈 삥땅 친 게 있거든~"
교회에 헌금 내라고 준 용돈을 갖고 있던 아빠는 천 원이나 있었어.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생색을 낸 거지.
아깝지 않았냐고? 글쎄... 아빠는 돈보다 친구들이 나로 인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아.
우리는 음료수에 빨대를 꽂고 다시 골목으로 들어서서 동네에서 가장 큰집 대문 앞에 앉았어.
다른 이유는 없었지 그 집 대문 차양에 펼쳐지는 그늘이 가장 컸거든
차양이라고 아니? 요즘은 아파트다 빌라다 해서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 집들은 대문에
지붕같이 올려놓은 게 많았거든.
"넌 무슨 아빠가 용돈도 안 주냐"
아까 돈 없던 친구에게 기용이 삼촌이 물었어. 비꼰다거나 무시하는 말투는 아니었던 것 같아.
그냥 단순한 궁금증에 물었겠지. 기용이 삼촌이 원래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는 스타일인 거 너도 잘 알잖아
"돈 줘봤자 노는데 금방 써버린다고 안 준데"
친구말에 아빠는 이해가 안 됐어.
"아니 용돈을 그럼 노는데 쓰지 어디다 써?"
"저금도 하고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던데?"
"... 그럼 일단 다시 줘보라고 해. 꼭 필요한 노는데 쓰고 혹시라도 남으면 저금하겠다고"
내 말에 모두 한바탕 크게 웃자. 아빠는 쑥스러우면서도 마치 개그맨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 손으로 브이를 하고 있었단다.
어느덧 웃음이 끊기고 음료수 빨아들이는 소리만 골목을 채우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물어왔어.
"있잖아 니들은 나중에 어떤 아빠가 되고 싶어?
"난 아빠 안 할 건데?"
"하나 너는 여자니까 엄마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친구의 그 한마디 질문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음료수 마시는 것도 잊은 채 우리는 다 같이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지.
"나는 화나도 애들한테 화 안내는 아빠가 될 거야"
"음.. 나는 치킨 많이 사주는 아빠"
"난 놀이동산 자주 가는 엄마"
"일요일에 잠 안 자고 놀아주는 아빠"
모두 자기만의 아빠상을 그리고 있었어. 미래에 나는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 그건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아빠가 아니었을까? 아빠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줬으면 좋겠고, 같이 잘 놀아주고, 항상 웃어주는...
"도리 넌?"
"나는.. 음..."
아빠는 그때 생각이 너무 많았어. 어떤 아빠가 되고 싶다기보다 아빠가 돼서 해주고 싶은 게 많았거든.
-쪽쪽쪽-
어느덧 다 마신 음료수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들이겠다는 듯이 쥐어짜며 빨아들 인후 쓰레기가 모여있는 곳에 던졌어
- 오~ 골인 ~ -
아빠가 던진 음료수가 쓰레기 더미에 딱 떨어지자 친구들은 찬사를 보냈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말했어.
"나는 친구 같은 아빠가 될 거야. 잘 놀아주고 화도 안 내고 용돈도 만원씩 팡팡 주는 그런 아빠가 될 거야"
"만원씩이나? 우아~ 도리야! 우리 아빠 하자!"
정말 되고 싶은 게 많고 해주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때.
아빠라는 건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럴 수 있어야 아빠라고 생각했던 그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
- 친구야.. 나 쌀이 떨어져서 라면이라도 사게 만원만... -
아빠는 아빠가 됐음에도 그렇게 원하던 아빠는 되지 못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