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문에 "로스쿨 졸업하고도 배달하며 버틴다"는 기사가 실렸다.
동시에 의사들이 거리로 나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간호사들은 과로 속 이직률 50%를 넘기며 떠난다. '전문직'이라 불리던 이들의 현실이 이렇다.
그토록 많은 시간을 들여 통과한 시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획득한 자격은 왜 이토록 무력해졌는가?
특히 개업이 목표였던 자격증일수록, 그 자격은 더 이상 '도착점'이 아니라, 겨우 '출발점'일 뿐이다.
변호사, 세무사, 약사, 심지어 의사까지도 단지 면허 땄다고 해서 안정된 삶을 보장받긴 어렵다.
이미 포화된 시장 속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자격증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전문직조차 본질적으로 자영업자와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자격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은 오랫동안 자격의 나라였다.
교육은 곧 입장권이었고, 신분상승을 위한 통로로 여겨졌다.
부모는 아이에게 "너는 선생님이 돼야 한다"고 말했고, 안정된 직업은 언제나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졌다.
우리는 '어디에 서고 싶은지'보다 '어디에 서야 살아남는지'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이제 그 줄조차 의미를 잃었다.
변호사는 넘쳐나고, 간호사는 탈진하며, 의사는 더 이상 전문가가 아니라 수요 공급의 논리 속 경쟁해야 하는 직군이 되었다.
자격증은 늘어나는데, 자리를 잃는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논리로 굴러간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외우고, 더 오래 버티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신화는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는데도, 그 허상을 향해 달리고 있다.
자격증이 무력해졌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이제 사람을 '기계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간호사는 간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병원 인력표의 숫자로 전락했고, 변호사는 분쟁이 아니라 수임율로 존재가 정당화된다.
의사조차도 더 이상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닌, 의료자본 구조 안의 수익 단위가 되어간다.
우리는 이제 '직업'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을 소비하는 구조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런 비관 속,
나는 문득 호주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2년, 모든 걸 알 수는 없었지만 단 하나는 분명히 느껴졌다.
그곳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보다,
그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커피를 내렸고, 누군가는 전선을 깔았으며, 누군가는 노인을 돌봤다.
호주 사회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말한다.
더 정확히는, '있더라도 그것을 입 밖에 내는 것이 금기시되는 사회'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존중받고, 바리스타도 자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큰 집에 살고, 누군가는 작은 집에 산다.
그러나 그 차이가 곧 그 사람의 '등급'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단지 선택과 삶의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그것이 '존엄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호주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삶의 맥락을 본다. 이는 호주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 속 형성된 것이다.
이민자 중심의 호주는
다양한 언어, 인종, 계층이 뒤섞인 곳이었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었다.
또한 영국식 계급 잔재 속 '계층은 존재하지만 서열화된 표현은 피하는 문화'가 발전했다.
그 결과, 각자의 직업이 '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오랜 계급제와 유교문화, 산업화 시대의 고도 경쟁 시스템 속에서 '직업 = 존재의 등급'이라는 인식이 고착되었다.
생존과 성공이 동일시되던 시대,
직업은 곧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고,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직업이냐'에 집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존중보다 비교에 익숙해졌고,
그것이 '7세 고시'를 낳았다.
한국은 여전히 자격이 사람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깨졌는데도, 시스템은 반복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더 많은 시험과 경쟁에 몰리고,
결국 무겁고도 가벼운, 자격증 한 장을 들고 세상 앞에 나선다.
그러나 그 순간, 세상은 묻는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냐고."
이제는 배워야 한다.
줄에 서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법을.
귀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된 직업이 아니라,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격보다 태도를,
경쟁보다 맥락을,
서열보다 존재를 가르치는 사회.
그게 우리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