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사람을 살리고,
누군가는 불을 끄고,
누군가는 교단 앞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병원, 학교, 경찰서, 소방서 같은 공간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을
공공의 일꾼이라 불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간호사의 퇴사율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하고,
의사들은 진료를 멈추고 거리로 나섰다.
소방관과 교사의 고충은 뉴스 속 단골 키워드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익숙하다는 이유로 무뎌졌다.
“일이 힘들어서 그런 거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가 아니다.
이 사회의 필수 직업군은 애초에 사명감과 헌신 없이는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다.
생명과 교육, 안전을 책임지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책임’이다.
그 책임을 버티게 해주는 건 결국,
“내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감각이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실감.
그게 모든걸 움직이게 한다.
나는 필수직업군이 아니다.
성과와 숫자로 평가받는 직업으로 사회를 배웠고,
지금은 사익을 좇는 자영업자다.
하지만 교사였던 부모님, 산부인과 전문의인 형을 보며 가까이서 많은 감정을 들었고, 목격했다.
그래서 어쩐지 그들이 잃어버린 감정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잃어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이제 그 감정을 빼앗는다.
진로의 출발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디서 오래 버틸 수 있나”가 되었고,
헌신은 착취로, 존중은 당연한 일로 밀려났다.
사람은 돈으로만 버티지 않는다.
지치는 건 의욕이고,
마모되는 건 기대다.
그 끝에 남는 건 텅 빈 마음과 번아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떠난다.
초심의 눈빛을 내려놓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다.
이건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가 너무 빨리 변했고,
그 변화를 떠받칠 윤리와 구조는 따라오지 못했다.
선택은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태도는 점점 가벼워졌다.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이탈한 개인만을 탓한다.
지방 공공의료를 기피하는 의사에게
“배가 불렀다” 하고,
피부미용으로 전환한 의사에게
“참의사가 아니네”라고 손가락질한다.
간호사의 이직은
‘태움’ 때문이라며 개인의 잘못으로 축소하고,
소방과 경찰 조직의 문제는 특정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한다.
여성 경찰관 논란 역시, 구조보다 성별만 부각된다.
이 사회는 늘 가장 자극적인 단면을 집어들어 가장 단순한 설명으로 소비한다.
진짜 문제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구조에 있다.
단 하나의 사례, 단 하나의 결정이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피로, 무너진 존중, 사라진 의미가 그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묻지 않는다.
왜 이들은 점점 지치고, 왜 이 자리는 점점 비워지는가.
그럼에도 아직 그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불 꺼진 병동에서 묵묵히 버티는 간호사,
아이들 없는 교실을 홀로 지키는 교사,
새벽 구조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소방관.
그들의 이야기는 뉴스에 잠깐 등장하고,
다음 날이면 잊힌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대체 가능한 사람들처럼 다룬다. 그리고는 말한다.
연봉을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질적 변화 없는 양적 보상은 또 다른 환멸만 낳는다. 사람은 돈으로만 버티지 않는다.
그 직업을 시작한 이유와,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 사이에는 분명한 감정이 있어야 한다.
그 감정을 우리는 오래전엔 ‘보람’이라 불렀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 일을 하는 사람부터 지켜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일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