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글을 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며, 많이 읽히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손이 간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감각,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알아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리고 그 순간에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있다.
그게 아마, 보람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보람은 아주 희귀한 감정이다.
의미를 가진 일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 결과가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만 느껴진다.
그 감정이 없으면,
아무리 돈을 벌어도 공허하다.
그 감정이 있으면,
대가 없이도 계속하고 싶어진다.
한 의사는 긴 당직 끝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한 교사는 졸업식 날 편지 한 장을 받을 때,
한 아버지는 자식의 어깨에 힘이 생긴 걸 볼 때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그건 성과도 아니고, 돈도 아니며,
“내가 있어서 이 일이 가능했다”는 존재의 확인이다.
그게 바로, 보람이다.
다행히 나는 그 감정을 종종 느낀다.
누군가에게 가맹점을 개설해줬고, 장사가 잘되었다.
점주님이 내게 말했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내 손을 떠난 무언가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요즘 사회는 점점 느끼기 어려워지고 있다.
잘해도 칭찬은 없고, 못하면 실망만 남는다.
성과는 있지만, 의미는 없고,
결과는 쌓이지만, 과정에 대한 존중은 사라졌다.
사람은 많은데, 연결은 없다.
요즘은 네 살짜리도 시험을 본다.
유치원에 붙고 떨어지는 걸로 우열이 나뉘고,
"넌 왜 이것도 못하냐"는 말을 듣는다.
좋아하기도 전에 평가받고,
의미를 찾기도 전에 실망을 배운다.
박사 학위를 받은 청년이 백수가 되고,
한국은 여전히 자살률 세계 1위다.
누군가는 너무 일찍 생을 내려놓고,
누군가는 어떻게든 하루를 버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보람은 사라지고, 측정 가능한 결과만 남았기 때문이다.
성과는 즉시 비교되고, 감정은 철저히 배제된다.
사람이 아니라 수치가 기준이 되고,
그 수치는 점점 더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어느 대학 나왔어?”, “어디 살아?”, “차는 뭐 타?”, “직업은?" "연봉은?”
학력은 등급이 되고, 재물은 인격을 대신하며,
엘리트주의는 삶의 시작점부터 기회를 나눈다.
비교는 습관이 되고, 습관은 무력감을 만든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 묻는다.
"이걸 왜 하지?"
그리고 그 물음에 답이 없으면,
그는 멈춘다.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고 있다.
아주 작은 흔들림이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 하나로 다시 손을 움직인다.
보람이란 결국,
내가 한 일이 세상 어딘가를 건드렸다는 신호다.
신호가 없다면, 사람은 점점 조용히 침묵한다.
침묵은 형태를 바꿔 사회 곳곳에 다양하게 퍼져 있다.
무기력한 청년, 탈진한 중년, 냉소적인 노인.
모두, 보람 없이 오래 버틴 사람들이다.
보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들은
성과, 경쟁, 수치, 피로감, 탈진, 냉소…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무언가를 잘해냈다는 감정 말고,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감정을
우리는 마지막으로 언제 느껴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