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말로 완성되어야 한다
말을 아껴야 했던 밤들이 있었다.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무엇 하나 쉽사리 꺼내놓을 수 없었던 조용한 밤
말끝을 삼키는 연습이 어느새 습관처럼 몸에 익었고, 그 습관은 서서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벽이 되었다.
서로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무엇 하나 쉽사리 꺼내놓을 수 없었던 조용한 밤.
눈빛은 분명 머물렀고, 손끝은 닿을 듯 가까웠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밤은 유독 조용했다.
조명이 조금 어두웠고,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엔 어떤 소리도 흐르지 않았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공기조차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녀가 침묵을 편해 하는 줄 알았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손끝만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삼키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고, 지친 하루의 기색도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속엔 이미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말들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끝내 꺼내게 하지 못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입술까지 떠오른 그 말을 나는 끝내 건넬 수 없었다.
나는 그 질문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 실오라기를 끊어낼까 두려웠다.
그래서 침묵을 택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말을 하면 틈이 생길까 봐, 말을 꺼내는 순간 무너질까 봐, 그 밤의 모든 말은,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오히려 무언가를 증명하려는 말처럼 느껴졌고,미안하다는 말은
그녀의 눈빛을 더 흐리게 만들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 밤은, 한 문장도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났다.
조심스레 덜컥 닫힌 현관문 소리, 그리고 돌아선 뒷모습.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 밤의 공기와 그 무게가 떠오른다.
그녀는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 말없음은 포기가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조용한 문이 살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그 문을 두드리지 못한 건, 결국 나였다.
나는 그녀의 신호를 느꼈고, 그 진심을 알 것 같았지만 두려웠다.
내 말이 그녀의 마음을 더 멀어지게 만들까 봐, 내 서툰 표현이 더 큰 오해를 낳을까 봐
나는 끝내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진심은 말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걸 그 밤 이후로 배웠다.
사랑은 머물러 있는 감정이 아니라 흘러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도.
가만히 머물렀던 나는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못했고,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조명이 비추던 그녀의 옆얼굴, 잔잔히 깔린 음악,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그리고 말없이 흘러가던 시간들.
그 순간들이 왜 이토록 오래 남았는지를 이제는 안다.
말하지 못한 기억이 가장 오래 머무른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가장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어떤 말은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다.
타이밍을 놓친 말들은 아무리 나중에 꺼내보아도 그때의 온기를 담을 수 없다.
나는 그 밤 이후로 사랑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사랑이란, 조심스러움과 용기의 균형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
감정을 오래 품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감정을 제때 꺼내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이제 내 곁에 없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는다.
그녀의 침묵도, 나의 망설임도, 그 밤의 무너진 문장들도 모두 그 시절의 우리에게는 최선이었고, 진심이었다.
나는 그 밤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밤, 진심을 다해 침묵했고, 최선을 다해 머물렀다.
그리고 그 조용한 애씀조차도 나는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때 하지 못한 말들을 이제는 글로 써본다.
그녀가 들을 수 없어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어도, 이 문장 속 어딘가에 남겨두고 싶다.
우리가 한때, 말하지 못한 말들로도 서로를 아끼고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