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이제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by 진하준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랑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질수록 나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는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조용함은 마음의 언어였다.
말보다 눈빛, 설명보다 침묵으로 전하는 다정함.
가만히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마음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조용함을 오해했다.
무심함이라 생각했고, 마음이 멀어졌다고 느꼈다.

나는 그 오해마저 감싸주고 싶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해될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이 어쩌면 내 편안함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지 않았고, 사랑을 느끼는 만큼 말하고,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 모습이 처음엔 조금 낯설기도 했다.
나는 무언의 교감이 사랑의 깊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사랑은 표현이라고, 말이라고, 때론 아주 사소한 확인으로부터 서로를 더 단단히 엮어주는 감정이라는 걸.

그녀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눈에 보이게 사랑했고, 작은 일에도 웃음을 보였고, 때때로 이유 없이 손을 잡았다.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수많은 마음들은, 그 순간보다 지금 더 뚜렷하게 떠오른다.


나는 바라보는 쪽이었다.
그녀는 표현하는 쪽이었다.
나는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했고, 그녀는 내가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다.
다름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과 이해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그 다름마저 사랑하고 있었다.
단지, 사랑을 설명하는 언어가 달랐던 것뿐이었다.
나는 침묵 속에 마음을 숨겼고, 그녀는 말과 행동으로 그 마음을 깨우려 했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한 사람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방식까지 껴안는 일이라는 것.
서로의 다름을 밀어내는 게 아니라 그 다름 사이에서 길을 찾는 게
함께하는 시간이란 걸.


그럼에도 우리의 사랑은 따뜻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진심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수많은 작은 풍경들을 함께 지나왔다.
비 오는 날 우산을 함께 쓰고 걷던 저녁, 늦은 밤 아무 말 없이 마주 보고 마신 따뜻한 커피,
길을 걷다 고양이를 보며 멈춰 서던 그녀의 옆모습.
그 모든 장면들이 지금도 마음속에 고요히 남아 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다.

사랑이란, 누가 더 주고받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가의 문제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과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었다는 걸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조금은 서툴렀을지 몰라도 사랑 앞에서는 정직했고,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건넨 마음은 단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다.

그녀는 나의 무심한 눈빛 뒤에 숨어 있던 다정함을, 가끔은 오해했고,
가끔은 기다려주었다.

나는 그녀의 잦은 표현과 반복되는 확인 속에 진심이 숨어 있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이별은 늘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모든 관계는 어느 한쪽이 틀려서가 아니라,
서로가 조금씩 다르게 옳았기 때문에 끝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서툴렀지만, 그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단단하지는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 머물고자 했던 마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언젠가, 사랑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면—
그땐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깊이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침묵하는 순간에도, 그 마음의 결을 놓치지 않고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늘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함께 겪고, 그 안에서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다면—
그 사랑은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무언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나 자신이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소중한 흔적이자,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아름다운 배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배움을 마음에 담고, 조금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또 누군가의 옆에 다정히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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