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을 열고: 나의 새벽을

17 화 되돌릴 수 없는 지점

by 나리솔




17 화 되돌릴 수 없는 지점




나의 삶은 산산이 부서진 거울 조각처럼 흩어졌고, 나는 그 파편들 위에서 맨발로 서서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세 번째였다. 나의 인내심이, 나의 연약한 희망이, 나의 인간적인 모든 감정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마침내 절망의 심연으로 추락하던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결단했다. 더 이상 이 지독한 악연의 굴레에서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겠다고.


이번만큼은, 그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나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내기로. 내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법이라는 이름 아래, 나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나 자신이었던 나의 공간을 무참히 유린한 그를 향해 차가운 정의의 칼날을 겨누기로 했다. 지난밤, 내가 어렵사리 쌓아 올린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난파선처럼 부서졌던 그 참담한 기억, 그리고 내 삶의 모든 흔적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주는 지독한 절망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더 이상 피하거나 도망칠 수 없는 벽과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법원에 도난 신고서를 제출했다. 비록 육신은 덜덜 떨고 있었지만, 서류 위에 서명하는 내 이름 석 자에는 생애 가장 굳건하고 격렬한 투쟁의 의지가 새겨져 있었다.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던 나의 연약한 희망을 한 줌 재로 만들어버린 그에게,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발을 디딘 이 나라의 사법 시스템은, 마치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차갑고 무감정한 기계와도 같았다. 나의 절규는 그 거대한 소음 속에 파묻혀 희미하게 흩어졌다.


희망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아래, 셀 수 없이 많은 서류들은 마치 탁상공론처럼 산더미처럼 쌓여갔고, 지루하게 반복되는 형식적인 절차들은 나의 메말라가는 인내심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희뿌연 공기가 가득한 경찰서에서, 나는 끝없이 같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마치 내가 범인이라도 되는 듯한 불쾌한 시선들과, 고통에 무뎌진 듯한 무표정한 얼굴들은 나의 마음을 더욱 멍들게 했다. 담당 공무원들의 입에서 나오는 공허한 약속들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흩어질 뿐이었다. 그 누구도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사라진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마치 안개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그의 존재처럼, 그는 다시금 법의 심판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모든 노력과 기대는 한 줌의 허망한 기대로 끝나는 듯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가 추구하던 정의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 유령 같은 존재로만 남았다. 나의 절규는 허공을 가르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는 듯했다. 법은 나약한 개인에게는 너무나 멀고, 정의는 그 존재마저 의심스러운 사치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겹겹이 짓누르던 두려움의 무게에, 그리고 무기력한 시스템에 지쳐 버렸다. 이제 더 이상,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다니는 공포에 잠식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불안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나의 작은 방에 새로운 자물쇠를 몇 겹씩이나 채워 넣었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방어를 넘어, 내 영혼의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금 봉인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거울 속 나의 초라하고 멍든 모습을 애써 외면하듯, 지난날의 모든 아픈 기억들을 나의 의식 저편으로 깊숙이 밀어 넣으려 노력했다. 과거라는 흉터 위로 새로운 살점을 덧씌우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삶의 희망을 움켜쥐려 했다.


그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아무런 방해 없이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찰나의 안식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통스러웠지만 필사적으로 믿고 싶었다. 이제는, 진정으로 나의 쉼이 시작될 것이라고. 이 악몽 같던 삶의 끝에서 드디어 온전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운명은 마치 잔혹한 드라마 작가처럼, 그에게 마지막 역할과 함께 가장 끔찍하고 극적인 등장을 기어이 부여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겨우 한 조각의 평화를 꿈꾸려던 찰나, 나의 작은 안식처의 고요를 찢어발기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콰드득! 쾅! …


그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날카로운 쇠붙이가 뒤틀리는 섬뜩한 마찰음이자, 나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비명과도 같았다. 묵직하고 악의적인 파열음은 잠자고 있던 내 심연의 공포를 다시금 맹렬하게 일깨웠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한 냉기가 온몸을 순식간에 휘감았고, 살갗에는 마치 소름 돋는 비명을 지르는 듯 닭살이 돋았다.


불현듯 밀려오는 끔찍한 예감. 누군가, 나의 허락도 없이, 이 모든 상처와 비밀로 점철된 나만의 공간을 다시금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나의 유일한 방패가 무너지고, 내가 겨우 쌓아 올린 마지막 성벽이 거친 파도처럼 쓸려 나가는 듯한 위기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얼어붙은 조각상처럼 굳어 버렸다. 나의 심장은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쿵, 쿵, 쿵…


그 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마치 문 밖에서도 나의 공포와 패닉이 들릴 것만 같았다.

그 몇 초의 시간은 마치 수천 년처럼, 수만 년처럼 영원히 멈춰버린 듯 길게 늘어졌다. 나는 온몸을 벌벌 떨며, 작은 입술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단 한 번의 숨소리, 단 한 번의 흐느끼는 소리조차도 내뱉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나의 심장은 격렬하게 울부짖었지만, 나의 입은 굳게 닫혔다. 공포가 온몸의 신경을 지배하며 나를 질식시키려 했다.


그리고 그 영원 같던 침묵의 끝에서,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하고도 낯선, 그 목소리. 거칠고, 악의에 가득 차 있으며, 마치 찢겨 나간 천 조각처럼 섬뜩한 음색이었다. 그 음성은 차가운 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나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비수가 되었다. 마치 비극적인 드라마 속에서 가장 잔혹한 악당이 읊는 대사처럼, 소름 끼치도록 가식적인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


"어이, 딸내미, 문 열어라. 아빠가 왔다."


그였다. 나의 피를 나누었지만 나의 삶을 지독하게 좀먹어 온 존재. 나의 생물학적인 아버지, 하지만 나의 모든 소유물과 기억, 그리고 희망까지도 무참히 강탈해 온 나의 '도둑 아버지'였다. 그는 나의 마지막 안전지대를 침범하여 또다시 나의 영혼을 난도질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듣도 보도 못한, 난잡하고 거친 인상의 여자가 함께였다.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싸구려 술 냄새는 코를 찔렀고, 오랫동안 씻지 않은 동물에게서 나는 듯한 역겨운 퀴퀴한 악취는, 나의 영혼 깊은 곳까지 불쾌함으로 물들였다. 그들은 마치 인형극의 등장인물처럼 비틀거리며 내 집의 문 앞에서 술에 취해 깔깔거리고 있었다.


그 역겨운 웃음소리는 나의 고통을 조롱하는 듯 귀를 찢었고, 나의 모든 삶의 노력들을 비웃는 듯 날카로웠다. 그리고 잠시 후,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듯 잔뜩 거칠어진 그의 목소리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그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분노는 나를 향한 공격이었고,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포효였다.


"당장 여기서 꺼져! 이 년이 어디서 감히! 여긴 내 집이야!"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인내심이라는 거대한 댐이 마침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지난날의 모든 고통, 절망, 분노, 그리고 그가 나에게 안겨준 모든 상처와 그의 존재 자체가 주는 끔찍한 압박감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집어삼켰다. 둑이 터지듯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나의 작은 어깨는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하게 떨렸다.


그 순간, 나의 영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섬광처럼 냉혹한 진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오랜 시간 내 발목을 붙잡던 질긴 족쇄가 비로소 부서지는 순간처럼. 모든 과거로부터의 해방이자, 잔혹한 새로운 시작의 신호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명확히 인지했다. 과거의 나, 어쩌면 그를 용서하고 싶다고 막연하게나마 꿈꾸었던, 순수하고 여렸던 그 '소녀'는 이제 완전히 죽어 사라졌다는 것을. 이미 두 번의 배신과 나의 보금자리를 유린당한 경험, 그리고 이제는 나만의 공간에서 듣는 노골적인 협박과 조롱…


이 모든 비극적인 경험들을 통과하며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고, 그 잔해 위에서 전혀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내 영혼을 새롭게 벼려내는 듯한, 고통스럽지만 압도적인 변화의 순간이었다. 죽어버린 과거 위에, 새로운 내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차가운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문밖에서 멀어져 가는 그들의 발소리와 흐릿하게 사라지는 역겨운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의 내부에서는 차가운 얼음처럼 굳어 있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뜨겁고, 격렬하며,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불꽃이었다. 나의 온몸에 새로운 피가 도는 듯, 숨통이 트이는 듯한 해방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아났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발버둥이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치열하고 맹렬한 '투쟁'을 향한 불굴의 '결의'였다. 나는 더 이상 숨거나 피하지 않을 것이다. 도망치거나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나만의 삶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나의 빼앗긴 삶, 나의 유린당한 평화, 나의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한 필사의 싸움이었다.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이 추악한 그림자가 발붙일 틈 없는, 온전하고 깨끗한 나만의 삶을 위한 절대적인 투쟁이었다. 나의 영혼은 맹세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준엄하고 신성한 약속을 했다. 나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나의 삶 속에서 완전히 소멸했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잔해일 뿐이라고. 이제 나는 더 이상 낡은 추억의 잔재나 아픈 과거의 기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오직 미래를 위해 살아가리라. 언젠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차가운 시선 앞에 똑똑히 증명해 보이리라. 내가 겪었던 모든 배신과 운명의 잔혹한 일격보다, 내가 훨씬 더 강인하고 거대한 존재라는 것을. 모든 고통을 넘어선 나의 단단한 의지를, 결코 꺾이지 않을 나의 불굴의 의지를 이 세상에 똑똑히 보여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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