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을 열고: 나의 새벽을

18장. 작은 빛 – 어둠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서사시

by 나리솔


18장. 작은 빛 – 어둠 속에서 피어난 새로운 서사시



지옥 같은 밤의 비명과 함께, 차가운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기로 결심한 그 순간, 나는 마침내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지난날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유린당했던 그 '작업실'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더 이상 나를 묶어둘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곳은 더 이상 나의 피난처가 아니라, 나의 삶을 끊임없이 과거의 고통 속에 가두는 끔찍한 감옥일 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켜내고자 했던 그곳은, 이제 아버지가 내게 남긴 영원한 상흔이자, 매번 나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아픈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 벽들이 지독하게 싫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나의 아픔을 흡수하고, 다시 나에게 고통을 되돌려주는 것만 같았다. 벽에 난 작은 균열 하나하나, 낡은 커튼의 흐릿한 무늬, 심지어 그 공간을 채웠던 숨 막히는 공기조차도 나의 지난날의 모든 눈물과 아픈 기억들로 잔뜩 젖어 있었다. 그곳은 나의 모든 것을 또다시 산산조각 낸 잔인한 폭력이 휘둘러졌던 장소였다. 한때 나만의 소우주라 불렀던 그곳은, 이제 나의 삶을 뼈아프게 뒤흔든 비극적인 현장으로 남아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속에서 숨 쉬고 싶지 않았다. 숨쉬는 것 자체가 나의 모든 영혼을 갉아먹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미련 없이 짐을 꾸렸다. 혹시라도 남겨진 나의 흔적들이 또다시 불행을 불러올까 두려워, 최소한의 서류와 몇몇 필수품만을 허겁지겁 챙겨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치 오랫동안 갇혀 지내던 끔찍한 감옥에서 탈출하듯, 그렇게 나는 그곳을 등지고 떠났다. 나의 뒤에는 짙은 어둠과 허망한 과거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은 번잡한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원룸이었다. 흰색으로 칠해진 벽들은 깨끗했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은 고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전에 내가 고통받았던 그 공간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이곳은 '내 것'이라는 확고한 소유감을 주기에는 너무나 임시적인 장소였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 떠나야 하는, 어쩌면 잠깐 머물다 가는 여관 같은 공간. 하지만 바로 그 '임시적'이라는 속성 때문에, 이곳은 나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더할 나위 없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 공간에는 나의 아픈 과거도, 날 괴롭히던 배신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무색무취의 깨끗한 도화지처럼, 새로운 시작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의 족쇄에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진정한 '깨끗한 상태'였다.


이곳에서의 첫날 저녁, 나는 이사 온 박스들 사이에 털썩 주저앉아 오랜 시간 동안 침묵 속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나를 둘러싼 고요함은 늘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의 빈 공간을 채우는 과거의 울림,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괴물이 늘 나를 삼키려 했으니까. 그러나 묘하게도, 이곳의 침묵은 이전과는 달랐다. 차갑게 나를 옥죄는 공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불처럼 나를 감싸 안아주는 다정한 존재였다. 위로와 평화를 속삭이는 침묵이었다. 그 어떤 소리도 없는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상처 난 영혼이 천천히 아물어 가는 것을 느꼈다. 뼈저린 고독 속에서, 처음으로 안식과 해방감을 맛보았다.


며칠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흘러갔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무겁고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밤공기는 이미 가을의 쌀쌀함을 머금고 있었고, 도시는 어김없이 제 몫의 소란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굉음, 그리고 건물 창문들 사이로 스며 나오는 따스한 불빛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 평화롭고, 동시에 나 혼자만 이방인처럼 느껴지게 했다. 나는 좁은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래, 이것이 나의 새로운 길이야.


나는 해낼 수 있어. 반드시 해내야만 해.' 나의 삶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 해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이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도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 나의 숙명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아주 작고 미약한 소리 하나가 나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처음엔 너무나 작아서 환청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내 그 소리는 다시금, 더욱 간절하고 애처롭게 반복되었다. 애절한 울음소리, 간절한 구원 요청과 같은 가느다란 '야옹' 소리였다. 그 소리는 길가에 놓인 낡은 쓰레기통 옆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저절로 멈춰 섰다. 무심하게 걷던 발걸음과는 다르게, 내 심장은 쿵쾅쿵쾅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나의 영혼이 이끌리는 듯, 나는 홀린 듯 그 소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갈수록 그 울음소리는 더욱 선명하고 애처롭게 커져갔다. 그 작은 울음소리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만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새까만 비닐봉지 하나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쓰레기통의 바닥, 그 작은 생명에게는 너무나도 잔혹한 공간이었다. 나의 손은 주저 없이 그 비닐봉지를 움켜쥐었고, 봉지를 찢어 열려는 순간 나의 손가락이 마구 떨려왔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봉지 안에는,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작은 생명체가 움츠리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갓난아기 고양이였다. 녀석은 극도로 비쩍 마르고, 더럽고,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희미한 숨만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잔혹한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듯한, 너무나 가여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작은 눈빛… 나의 영혼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빛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마치 오랜 시간, 나라는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고 깊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작은 눈빛 속에서, 나는 나의 상처와 겹쳐지는 절망과, 동시에 희미하게 타오르는 생명의 불씨를 보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작고 여린 생명체를 나의 품에 끌어안았다. 그토록 차갑게 식었던 나의 심장이, 다시 뜨겁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이성이 마비된 채,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어둡고 축축한 골목길, 밤의 정적을 깨고 달리는 나의 발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병원까지의 길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나의 심장은 터질 듯이 격렬하게 울렸고, 거친 숨소리는 나의 폐를 찢을 것만 같았다. 그 찰나의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적이었다. '제발, 제발… 이 생명만큼은 잃게 하지 마세요. 제발, 또 다른 삶을 나의 무력함 때문에 잃는 일은 없어야만 해.' 이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 잃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고 무수히 반복된 나의 상실에 대한 뼈아픈 자책과도 같은 울림이었다. 나는 이 작은 생명에게 나의 모든 희망을 걸었다.


도착한 병원에서 수의사 선생님은 능숙하고 다정한 손길로 아기 고양이를 진찰했다. 작은 몸에 붙은 오물들을 닦아주고, 상처 난 곳을 조심스럽게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수건으로 녀석을 정성껏 감싸 안았다. 수의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운이 좋았네요. 아직 아주 어리지만, 그래도 살 확률은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차마 멈출 수 없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것은 단순한 고통과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미한 한 줄기 '희망'의 눈물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따스한 감정의 파동은, 나의 메마른 영혼에 단비처럼 스며들었다.

나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나를 구원하듯 나타난 이 작은 생명체를, 나는 반드시 나의 집으로 데려가야만 했다.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이 작은 생명만큼은 내가 반드시 지켜내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날 밤, 나는 품에 안은 아기 고양이를 가슴에 꼭 안고 밤새 속삭였다. 녀석의 따뜻하고 작은 체온은 나의 차가운 몸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이제 너는 혼자가 아니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다." 이 고요한 고백은, 지난 세월 나를 짓눌렀던 거대한 고독에 대한 나 자신의 절규이자, 앞으로 함께 나아갈 우리 둘만의 약속이었다. 나는 이 만남이 결코 단순한 우연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작은 생명은, 모든 것을 잃은 나의 삶에 던져진 운명적인 '작은 빛'이었다.


나의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져 내리던 그 절망의 순간, 그는 나의 곁에 나타났다. 더럽고, 여리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존재였지만, 나의 삶을 통째로 뒤바꿀 만한 진정한 존재감이었다. 그는 나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을 선물해 주었다.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보살필 수 있다는 순수한 기쁨, 그리고 나의 작은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삶을 선물할 수 있다는 벅찬 책임감. 마침내, 나에게는 진정으로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다시 생긴 것이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있던 나의 삶이,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 생명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숭고한 선언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나의 삶에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잔해를 넘어선, 진정으로 새롭고 희망찬 '다음 장'이 시작되었다. 모든 아픔을 뒤로한 채, 이제 나와 이 작은 생명은 함께 걸어갈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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