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내가 정말 존경하는 한 노부부가 있다.
젊은 시절, 그리 부유하지 않았던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조심스럽게 알아가던 시절. 둘은 멀리 떨어져 살았고 매일 보고 싶지만 시외 버스비만으로도 큰 부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얼마의 돈을 따로 떼어두었다.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돈.
디저트 하나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돈.
가끔 꽃 한 송이를 사줄 수 있는 돈.
작은 낭만 한 조각을 위해, 늘 남겨두고 모아두었다고 한다.
그 낭만은 사치가 아니라 조각칼이 되었다.
둘은 사랑의 모양을 천천히 다듬었다.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고,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단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갔다.
동시에, 다정한 인내.
결혼하고, 함께 보내는 계절이 늘어날수록 이 부부는 하나의 선택을 분명히 했다.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에겐 자녀가 삶의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이 부부는 서로를 더 깊이 돌보며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 이후에도 여전히 남겨두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겉옷을 벗은 다음, 그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서로를 안아주고 등을 두드려준다.
피날레처럼, 짧게 입 맞춤 할 여백 한 조각은 그들의 여전한 조각칼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매일을 다듬어 갔고 깎아갔으며 더 매끈하게 만들었다.
그 아내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난 내 남편의 작품이에요."
난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얼마나 오래 깎아야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얼마나 다듬고 감싸고 보듬어야 비로소 그렇게 말하게 되는 걸까?
그래서 자문해 보게 된다.
내 아내는 나의 작품인가?
우리 부부도 사이좋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예쁘게 살아간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꽤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부를 보며 깨달았다. 사랑은 좋은 상태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더 아름다워지는 길이라는 것.
그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해왔음에도, 아직도 서로의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이런 여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텔레이오시스.
그 뜻은 존재가 본래의 목적에 도달하여 완성에 이른 상태.
그러나 그 온전함은 단번에 이뤄지는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다듬고 감싸며 이루어진 정제의 결정체다.
그 부부는 그런 의미에서 서로를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오랜 여정의 끝에서 결국 걸작의 완성을 보고야 말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걸작은 전시관에 있는 게 아니라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일상 속에서 조용히 완성된다.
세상에서 제일 포근한 조각칼은 그렇게 서로를 세기의 걸작으로 만든다.
나도 우리 사랑을 더 다듬고 싶어졌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다정하게,
우리 인생의 서로의 걸작이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