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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이라는 정원사(공모전)

어미보다 한 살 더 먹어

by 유호현 작가

인생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린 과일밭이고, 삶은 메아리가 울리는 산이며 생애는 파도치는 바다다.


내가 써온 글들은 온전히 나의 경험이며, 그 기억들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누군가를 향해 던진 말. 무지개 반사처럼 돌아온 원망과 울음은 메아리처럼 아련하게 때론 쩌렁쩌렁 울린다.

그리고 그 바다. 나만 볼 수 있는 감정이 출렁이다가 때론 파도가 되고 아주 가끔은 쓰나미가 되어 나를 삼킨다.


창작은 나만 그릴 수 있는 풍경화를 세상이란 미술관에 전시하는 일이다.

아들의 여름 하복을 사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던 엄마의 표정. 하복 때문에 선도부에게 걸려 수치를 겪은 일을 엄마에게 알리지 않은 어린 아들.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의사의 꿈을 포기한 누나가 반지하집 계단에 앉아 혼자 울고 있던 모습.

이 감정들은 내가 엄마보다 한 살 많아진 지금까지 오랜 시간 배합한 나만의 물감이다. 난 그 물감으로 내 풍경을 채색했다.

표절은 그 풍경을 훔쳐가는 일이다. 뉴욕시 현대미술관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저작권은 작가가 죽은 뒤에도 그 풍경화를 70년 동안 돌봐주는 정원사다.

이 얼마나 멋지고 고마운 존재인가?


작가는 한 번 산다.

작품은 두 번 산다. 작가의 생애 내내, 작가의 사후에도 여전히.

작품이 두 번째 삶을 살아낼 때 죽은 작가는 다시 그 풍경 속으로 살아있는 걸음을 내딛는다.

저작권은 그 풍경이 훼손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준다. 죽은 작가의 풍경을 여전히 세심하게 돌보며 그 걸음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세상은 종종 죽은 이의 작품을 잊는다.

그러나 저작권은 잊지 않는다.

그가 남긴 붓질 하나, 색깔의 조합, 여백의 묘미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손길을 기억하고 존중하고 다시 불러준다.

저작권은 단순한 법이 아니라 사라진 이를 다시 '풍경'으로 초대하는 가장 조용한 초대장이다.

죽은 후에도 그러하다면.

하물며...




[어미보다 한 살 더 먹어]


화가: 유호현


먹을 수 없는 은행잎이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배고프다는 내 새끼 목소리

어미 마음에 쩌렁쩌렁


해줄 수 없는 마음에

어미 눈물 출렁출렁


이제는 내가 어미보다 한 살 더 먹어


맛있는 포도송이 보면

눈물이 주렁주렁


배고팠다고 말한 내 목소리 기억나

미안함에 쩌렁쩌렁


이제 사죄할 수도 없어

내 마음 출렁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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