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도미노
이른 점심 식사. 우리 부부는 늘 '아점 먹자'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브런치' 먹자고 한다.
올해 결혼기념일에는 메인 식사로 브런치를 먹었다. 결기 저녁 만찬의 룰이 처음으로 깨진 것이다.
아래 사진은 대구 아눅 베이커스.
늘 배고픈 저녁때 허겁지겁 먹던 식사와는 달랐다.
아보카도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와인처럼 한참을 머금었다. 녹진하게 퍼지는 고소함. 아보카도가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아내가 올리브유가 발라진 산미 있는 빵을 고소한 양송이 수프에 찍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따듯한 빵의 밀향과 양송이 특유의 은은한 향이 하나의 목소리처럼 조용히 섞여 있었다.
크로와상의 껍질은 어찌나 바삭하고 맛있는지 그 껍질만 맛동산 봉지에 담아 판다면 5만 원이라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우리의 결기 첫 브런치는 대성공이었다.
입 밖으로 말해본 적 없던 '브런치'라는 단어가 브런치 작가가 됨으로써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선물 받아도 안 먹었던 아보카도에 반하게 되고, 빵도 이제 올리브유에 찍어 먹게 될 것 같다.
무의미했던 것들이 점점 의미가 되어가는 그 순간들이 마치 도미노 같다.
내 아내의 이름은 '오미*'이다. 실명을 모두 밝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 때문에 마지막 글자는 *으로 남겨둔다.
아내 덕분에, 총각 때는 아무 관심이 없던 오미자차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가 되었다.
심지어 나는 코로나도 오미크론에 걸렸다.
오미자차가 좋아서 문경에 아내와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먹은 무지개 송어회는 놀라울 정도의 맛이었다. 그 감동은 자연스레 대구 '왕탁'으로 이어졌다. 오미자 막걸리 포함 다양한 술과 무지 맛있는 안주들. 그곳이 대구인으로서의 내 자부심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제일 먼저 데려가는 곳이 왕탁이다. 친구들은 분위기 좋고, 음식도 최고라며 칭찬한다.
처음엔 아무 의미 없던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하나씩 포개지는 도미노 조각처럼, 그 조각들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풍경을 완성해 주었다.
의미 있는 것들은 처음부터 고유의 색을 지닌 채 태어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의미란 태어날 때부터 색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했는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 모든 연쇄 속에서 서서히 채색되어 가는 것이다.
도미노 조각은 마치 물감 통 같다. 조각이 포개질 때마다 색이 흘러나와 다음 조각을 물들이고, 또 그다음을 물들인다.
그렇게 색깔이 겹치고 흘러, 결국 하나의 그림이 된다.
앞으로 어떤 도미노 조각이 포개질까?
무의미했던 것들이 어떤 색으로 물들어 나만의 이름과 풍경이 될까?
그 궁금함을 기대하며 오늘도 아내와 나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한 잔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