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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도 퇴고가 필요한가?

치킨인가? 얄리인가?

by 유호현 작가

오래전, 친구의 어린 아들이 옥상에 병아리 세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이름을 지어줬다.


"페리카X" "BHX" "교X"


그 치킨... 아니 병아리들의 운명은 내 동심을 지키기 위해 한동안 묻지 않았다.

녀석들은 계생(鷄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맛있는 이름으로 살았을까? 아니면 '날아라 병아리'의 얄리가 되었을까?

나중에 내 친구 자녀들 중 가장 예의 바르고 훌륭하게 큰 녀석이다. 정이 많은 아이는 병아리 세 마리 중 적어도 한 마리를 개명해주었다고 한다.

치즈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시간에 익어가는 풍미를 닮으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뿌링X"


과거 내 친구 중에 노래를 가수처럼 잘하고 타율 높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잘 띄우는 녀석이 있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돈 문제가 얽히면 얌체가 되었다.

일례로, 술자리에서 공식적으로는 더치페이를 한다. 그런데 집이 머니깐 대리비를 달라면서 다시 그 돈을 빼간다. 보통 총무 노릇을 하던 나한테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그럼 내가 그 녀석 돈을 몰래 내주는 셈이 된다. 문제는 매번이라는 것.


더 이상 호구가 되기 싫었다.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는데, 어느 날 누나가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아! 그 얌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누나가 웃으며 조언했다.


"누가 널 예전 모습으로만 평생을 기억하면 억울하지 않겠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난 오랜만에 그 이름을 듣고 예전의 흥겨운 분위기가 그리웠다.

그래서 전화했더니 당장 보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잘 아는 부추전 맛집에서 막걸리나 한잔 하자면서 말이다.

오늘은 본인이 산다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지금은 가격이 올랐지만, 부추전을 실컷 먹고도 2만 원 조금 넘게 나왔다.

계산하기 위해 그 친구가 100만 원 수표를 꺼냈다. 당시 카드 단말기도 없던 재래시장 전집에서 말이다. 사장님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거스름 돈을 어디서 구하라고..."

"어? 그래요? 내가 사야 되는데? 호현아 어떡하지?"


겨우 2만 원 정도 먹고 100만 원을 내밀 수 있는 그 넉살에 감탄했다.

보답의 의미로, 미리 준비해 간 명함을 내밀었다. 그 뒤에는 수기로 적은 내 계좌번호가 오늘만 특별히 기재되어 있었다.


"내가 낼게. 대신 여기로 바로 송금해 줄래?"

"... 어?"


토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계산하고, 우린 사이좋게 ATM기까지 걸어갔다.

친구는 드디어 자신이 후대할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는지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쉬웠는지 강권했다.


"2차 가자!"

"급한 일이 생겼어."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자야 한다는 급한 일이 생겨버렸다. 나는 어깨를 두드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이후 아쉽게도 그 친구 결혼식에 참석 못했다.

안 불러줘서.


과거에는 중요한 편지에 인장을 찍었다. 인장은 문서에 발신자의 신분을 증명하고 수정이 불가능하도록 봉인하는 도구이다.

난 인간관계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을 적고, 성급하게 인장을 찍어버리지는 않았나 자문해 보게 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미성숙했던 내가 섣불리 규정한 관계들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벼리고 쪼고 다듬듯이 퇴고해야 할 수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니 퇴고는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물게도 일필휘지여서 뜯은 인장이 아깝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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