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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데칼코마니

by 유호현 작가

며칠 전, 꿈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집에 초대받았다. 한국 전쟁이 꿈의 시대적 배경이었다. 고등학생 작가님이 40대인 나에게 "호현아. 들어와."라고 반말을 하셨다. 어머니가 삼국지 이야기해 줄 때 그 바늘이라며 나한테 선물하셨다. 나는 뜬금없이 21세기 문물인 아이폰을 꺼내 바늘을 촬영하며 이번 주 브런치북 소재 하나 건졌다며 좋아했다.


저작권 공모전 때는 이런 꿈도 꿨다. 양 떼 목장에서 양들을 촬영하며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목동 골리앗(?!)이 나타나 나에게 무릿매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돌은 날아오다 갑자기 종이처럼 펼쳐졌고 이런 시가 적혀있었다.

-거인인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은 푹푹 양털이 날린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기대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골리앗에게 질문했다.

"표절이냐? 오마주냐?"

골리앗이 창을 들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글을 쓰기 전에는 꿈속에서 수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지금은 유독 작가로 많이 등장한다. 꿈에서도 제법 글쟁이 티를 낸다.

가끔은 꿈에서 명문장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며 깨어나지만, 깨고 나서 확인하면 별것 아닐 때가 많다. 그래도 꿈에서는 유레카를 연신 외친다.


반대로 평소에 풀리지 않던 문장이 꿈에서 실마리를 얻기도 한다.

얼마 전 꿈에서 낙동강 근처를 라이딩하고 있었는데, 프랑스에 있을 법한 고성이 보였다. 성벽의 틈새에서 다양한 색깔의 물감이 흘러나와 강의 물결과 섞였다. 투명한 강은 도화지가 되어 성의 모습을 모작처럼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데칼코마니라고 외쳤다.

데칼코마니라...데칼코마니라니...

출근하면서 신천 둔치를 내려다보다 아래의 문장에 이르게 되었다.


꿈이 서로를 채색한다.


글에 대한 감각을 훈련할수록 팔레트에는 더 많은 색이 씨앗처럼 쌓인다. 그 씨앗을 사유의 모판에 촘촘하게 심어 때가 되면 논으로 옮겨심는 모내기를 한다.

현실과 꿈이 서로를 찍어낸다. 나는 가끔 문장을 수확하여 사유의 곳간을 채운다.

작가란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하는 색감 농부일지도 모른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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