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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옹달맛샘

by 유호현 작가

축구에는 여러 포지션이 있다. 수비와 패스, 드리블이 화려해도 골을 넣어야 이긴다.

김밥에도 여러 가지 재료가 있다. 계란, 햄, 시금치, 오이, 단무지, 우엉 등이 아무리 화려해도 김과 밥이 골을 넣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쌀집을 하는 친구가 있다.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거래처 한 곳을 소개해 줬다.

[맛샘김밥]이라는 노포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밥의 기본은 좋은 쌀이고 이 집은 밥이 맛있다."


김밥은 주문이 들어가면 바로 만든다. 살짝 불향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새콤한 뒷맛이 남는다. 이 집은 김밥에 들어간 재료들이 다 맛있다. 하지만 쫀득쫀득한 밥이 자신이 주인공임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옆에서 60대쯤 되어 보이는 여자 손님이 말했다.


"몸이 안 좋을 땐 이 집에 와요. 엄마가 말아준 김밥 같아서요."


안쪽에서 한 커플이 먹는 김치볶음밥을 보며 저건 비싸겠지 싶었다.

4000원이라니. 저것이 정녕 2025년의 메뉴판인가? 거기다 핵심 재료들이 모두 국내산!

사장님에게 물었다.


"왜 맛샘김밥이라 지으셨나요?"

"맛이 샘솟으라고요."


동그란 김이 샘의 경계고 그 안의 재료들은 맛의 샘이란 뜻인가? 그런 의미로 길게 덧붙여보았다.

사장님은 선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맛이 샘솟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지었어요."


그 말이 간결하면서 따뜻하게 와닿았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정직한 맛은 거리에 가려지지 않는다. 불편함도 감수한다.

멀리 있어도 그 맑음이 보인다. 맛이 샘솟고 있으니 안 보일 수가 없다.

옹달맛샘이다.


사람의 매력은 김밥 재료처럼 다양하다. 말 잘하는 사람, 조직력이 좋은 사람, 유머러스한 사람, 친절한 사람, 겸손한 사람.

시간이 지나고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장인어른은 동정심 많고 선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네."


내게 한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사위란 생각을 잊고 살았다. 동서도 자신을 형이라 부르라 한다.


이제 떠나신 지 여섯 해가 넘었다. 나는 여전히 그분을 찾는다. 이야기로, 사진으로, 글로, 회상으로.

멀리 갔어도 그 선함이 보인다. 선함이 샘처럼 솟는다.

그럴 때면 온갖 감정들이 차례대로 떠오른다.

결국 그리움이 골을 넣는다.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세리머니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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