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전의 나는 약을 먹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감기약도 먹지 않았다. 40대 초반,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고 어쩔 수 없이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어야 할지 망설이던 갈림길에서 팻말 같은 단어를 봤다.
약의 제조사, 유한양행.
그 이름 하나로 마음이 놓였다.
케첩이나 마요네즈를 살 때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냥 오뚜기면 끝이다.
착한 기업, 오래된 회사.
이 세상을 하나의 집에 비유한다면, 고풍스럽고 멋들어진 앤티크 가구 같다.
어제 아내와 노포에 식사를 하러 갔다. 오래된 간판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숟가락이 눈길을 끌었다.
수많은 스크래치가 보였다. 만약 개업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식당에서 이런 숟가락을 보았다면 찝찝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을 맛 하나로 자리를 지켜온 노포는 스크래치조차 앤티크처럼 보이게 했다. 저 많은 선들이 노포의 필체 같다.
친구 아들 중에 어린 시절을 유난히 힘들게 보낸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눈물이 많았다. 그런데 중학생 때 자격증 공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너무 기특해서 고기를 사주며 비결을 물었다. 아이는 웃음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했다.
"제가 살려고 한거에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시련이 분명 스크래치를 남겼을 것이다. 시련을 대하는 아이의 태도는 그 스크래치를 앤티크로 만들었다.
20대 초반의 그 아이는 공손하고 친절하다. 어린 나이 답지 않게 어른들의 대화를 잘 경청하고 웃어주며 진심 어린 칭찬을 한다.
몇 달 전, 외할아버지와 사별한 아이는 큰 결심을 했다. 혼자 남은 외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몇 달 동안 외가에서 지내고 있다. 그건 46세인 나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그 아이를 보면 20대 초반의 청년이 아니라 50이 넘은 중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빨리 어른이 된 아이의 필체에는 노포의 향기가 난다.
그 삶은 시련이 새긴 앤티크다.
마음은 아픈데 참 대견하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