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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바보의 카메라

by 유호현 작가

아내가 처음으로 글을 썼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빠는 나의 봄이었다."


처갓집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아내의 어린 시절 모습이 가장 궁금했다. 그리고 열 권의 앨범과 더불어 족히 500장은 넘을 사진들을 보며 압도당했다. 당시엔 사진관에 필름을 맡기고 사진 현상을 해야 했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돈, 시간, 정성이다. 세상에 저런 아빠도 있구나란 생각에 걱정되기도, 기대되기도 했다.


장인어른은 일명 '사위 테스트'란 것을 했다. 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던 동서는 몰래 스포일러를 해주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커다란 굴비를 얼마나 살뜰하게 발라먹는가이다. 벌써 연습을 여러 번 하고 온 나는 뼈까지 씹어 먹으려다 장인어른에게 제지당했다.

두 번째는 목욕탕 같이 가기다. 홍시를 같이 따고 나서 목욕이나 하고 가자며 아주 자연스럽게 시도하셨다. 예비 사위의 몸에 싸움으로 인한 상처나 문신의 정도 등을 몰래 본다고 한다. 목욕탕을 다녀온 뒤, 내 몸이 깨끗하다면서 흡족해하셨다고 한다.


"내 사랑하는 딸이네. 나보다 더 사랑해 주게."

결혼을 승낙받을 때 세 번이나 강조하던 장인어른의 그 음성도 잊히지가 않는다.

딸을 바라보던 장인어른의 눈빛은 내게도 봄볕이었다.


2019년 장인어른의 카메라는 멈췄다. 그러나 이제 아내가 셔터를 누른다.

글을 쓰는 키보드 소리가 꼭 셔터 소리 같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딸을 바라보던 장인어른의 눈빛이 이제 아내의 문장에서 살아난다.

필름이 멈춰도 글은 찍힌다.

기억에서 현상되고 마음에서 인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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