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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밑줄

by 유호현 작가

신천 둔치를 걷다 보면 왜가리와 백로를 자주 본다. 백로는 함께 모여 무리 생활을 하는 반면 왜가리는 혼자일때가 많다. 그런데 오늘은 같이 노니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웬일로 왜가리가 백로와 같이 있네?"

그러자 아내가 멀뚱히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저 흰 새들은 왜가리 새끼야."

나는 설명조로 대답했다.

"저 흰새는 백로야. 저렇게 희기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이 청렴의 상징으로 삼았던 새지."

아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야. 저거 왜가리 새끼야."

"깃털 봐라. 저게 무슨 왜가리 새끼야? 왜가리는 저렇게 잿빛이 도는 회색이고 백로는 완전히 하얗잖아."

"아휴. 병아리 생각해 봐. 병아리도 어릴 때는 노랗지만 커서 완전히 다른 색깔이 되잖아? 저 흰색도 곧 회색이 될 거야."

그 확신에 찬 말투에 나는 순간 설득당할 뻔했다. 나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으며 다른 논리를 펼쳤다.

"그럼 저 목은 어떻게 설명할래? 왜가리는 저렇게 가가멜처럼 움츠리고 있잖아. 백로는 꼿꼿하게 들고 다니고."

"축구 선수들 공 드리블할 때 아래만 보고 다니지? 그래서 거북목이 축구 선수들 직업병이 되기도 한다잖아? 왜가리도 맨날 아래만 보고 다니니깐 저렇게 커브가 무너진 거야. 왜가리목 못 들어봤어? 여보도 일자목 관리 안하면 왜가리목 되는거야."

"살다살다 왜가리목은 첨 들어보네. 그럼 백로는 날치만 잡아먹어서 목이 꼿꼿하나?"

나는 드디어 나무위키에 백로라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내는 배를 잡고 웃었다. 처음부터 장난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백로 설명 칸에 '왜가리과'라는 분류가 있었다. 아내가 승리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것 봐! 왜가리 맞잖아!"

이번엔 나도 같이 웃었다.


같은 풍경, 같은 하루를 보면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밑줄을 그으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잔치국수를 좋아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아내는 오랜 시간 고명을 준비하고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어 잔치국수를 첫 요리로 준비했다. 기대하는 아내에게 아버지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수는 내가 더 잘 끓인다. 나는 간장만 줘도 잘 먹는다."

아내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나도 너무 민망해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버지와 잠깐 이야기하자며 집 앞 벤치로 나갔다.

"아버지. 며느리 첫 요리인데 너무하셨어요. 아무리 간장 국수 좋아해도 그렇지."

아버지는 깜짝 놀라더니 나한테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며느리가 내 밥상 때문에 스트레스받을까 봐 그런 건데."

심지어 며느리가 감동받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나는 먹먹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초점을 잃은 채, 그저 아버지의 손끝이 떨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냥 고맙다고 말할 것을 그랬다.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색으로 해석한다.

그날 우린 같은 문장을 읽었지만 서로 다른 밑줄을 그었다.

하지만 왜가리와 백로가 결국 같은 과에 속하듯,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멀지 않다.

진심은 언제나 같은 문단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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