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먼 곳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우린 식사를 마치고 서로를 껴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잘 살아라. 언젠가 다시 만나면 떳떳한 모습으로 보자."
스스로 장엄하다고 여겼는지 손끝이 덜덜 떨렸고, 친구는 눈물까지 흘렸다.
그런데 30분도 안 되어, 공중화장실에서 그 친구와 마주쳤다. 언젠가 만나면 떳떳하자던 우리는 눈길을 피하며 손을 씻었다.
'마지막 인사를 조금만 덜 진지하게 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서로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 눈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정말 마지막 인사였다.
그 짧은 민망함조차 오래 남았다.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 그렇게 길게 따라왔다.
신혼 때 내당동 아파트에서 12년을 살았다. 옆집에는 노부부가 살았다. 우리는 특별한 교류 없이 인사만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삿날, 벨을 눌러 마지막으로 인사드리자 놀란 얼굴로 우리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냥 안 가고 일부러 인사해 줘서 고마워요."
그 말에 마음이 저릿했다. 어쩌면 다시는 못 뵐 분들이었는데, 그날은 누구보다 친근하고 아련했다.
노부부의 집은 아홉 시만 넘으면 도서관처럼 고요했다. 벽 너머의 고요에 스며든 사려 깊음은 강렬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그 고요는 우리 집 거실까지 번져왔다. 우리는 TV볼륨을 낮추고 슬리퍼를 신고 다니며, 보이지 않는 이웃을 늘 곁에 두고 살았다.
그러고 보면 벽간 고요는 보이지 않는 초대장이었다.
마주칠 때면 늘 미소 속에 짧은 인사가 오갔다. 길어야 5초. 하지만 그 짧음이 차곡차곡 돌탑처럼 쌓였다.
그날의 인사는 끝이 아니라, 돌탑 위에 올려진 마지막 조약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