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잠으로 인해 비행기를 놓쳐본 경험이 있다.
인천국제공항에 비행기 탑승 1시간 전에 도착해, 그 어떤 시도도 해보지 못한 채 시간과 돈을 모두 잃었던, 아마 내 생애 가장 멍청했던 순간이리라.
그 후로는 무조건 비행기 탑승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의 첫 시작부터 비행기를 놓친다는 건 꽤 큰 정신적 피해를 수반한다는 걸 알기에, 이번에는 충분히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그럼에도 마치 지각이라도 한 듯, 캐리어를 끌며 빗속을 빠르게 걸었다.
다행히 악몽은 재연되지 않았다.
여유롭게 수화물을 부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스타벅스 북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유자 민트 티'를 주문했다. 탑승까지 두 시간이 남아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완독했는데, 뒤로 갈수록 눈물바다였다. 지하철에서 흘린 눈물방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다.) 책에 몰두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탑승 시작을 알리는 방송에 화들짝 놀라 부리나케 게이트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무사히 탑승했지만, 예상치 못한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용카드를 가져오지 않아 7시간 가까운 비행시간 동안 강제 금식을 해야 했던 것이다. 적어도 물 한 잔쯤은 제공되리라 믿었던 상식조차 깨졌다. 물 한 병을 사려면 2천 원이 필요했지만, 통장에는 생수 5만 병을 살 수 있는 돈이 있어도 하늘 위에서는 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목타는 7시간'을 견뎌야 했다.
다음부터는 기내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를 꼭 챙기거나,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후 생수 세 병쯤은 사서 탑승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체내 수분 부족으로 인해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듯한 느낌에 반쯤 미쳐갈 즈음, 비행기는 드디어 덴파사르 공항에 착륙했다.
발리 땅에 첫발을 디딘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는 탐험가처럼 생명수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면세점에서 생수를 사 정신없이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들이켰고, 수화물을 찾아 미리 예약해둔 택시를 타러 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는 서투르지만 자신감 있는 한국어로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품고, 짱구 해변 근처에 위치한 숙소로 향하는 차에 올랐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운전대 앞에 전시된 롤스로이스 고스트 모형 자동차였다.
“롤스로이스 고스트가 기사님의 드림카인가봐요?”
내 물음에 그는 자신의 야망과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늘 "좋은 남자가 되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며,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다고 했다.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답게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런 여행객들과 조금이라도 소통하기 위해 틈틈이 언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언젠가 그는 정말로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몰고 다닐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생애 처음 만난 택시 기사와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그에게 안전하고 신속하게 데려다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독채 빌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