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자유, 다름과 틀림

by 심연

진리란, 사람을 자유롭게 해야지 갇히게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요한복음 8:32


하지만 어떤 경우엔, ‘진리’라는 말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틀림을 규정하고, 그 틀림을 통제하는 도구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진리를 믿는 순간,

그 반대에 있는 모든 것은 틀렸다”는 태도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다른 종교는 틀렸다고 단언했다.

그 말이 단지 신념이라기보단, 누군가를 향한 ‘닫힌 확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묻는다.

“그럼 너는 다른 종교를 얼마나 알아봤어?”

친구는 “어느 정도는”이라 답했다.

나는 그 말에 “좋아, 네 신념은 존중해”라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정말 열린 마음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남았다.


그래도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히 모르기에, 일단 인정하자고.


진리를 안다는 사람보다,

다른 진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상대의 말을 끝까지들어주는 사람이 나는 더 진실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왜 어떤 신앙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말을 이렇게도 강조하고 싶어할까?

그건 정말 성경 논리로 입증된 ‘절대 진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믿음이 흔들릴까 두려운 마음에서 나오는 본능일까?


기독교의 진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요한복음 14:6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 사도행전 4:12


이 말은 예수 외의 길은 틀렸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니 그 믿음 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다른 길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틀린 것’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신념이 아니라 존재 기반을 지키기 위한 ‘안전벨트’처럼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나도 성경 말씀을 좋아한다.

위로도 받고, 통찰도 있다.

하지만 말씀 안에서만 ‘정답’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씀은 누군가에겐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다른 건 ‘다른 것’일 뿐이지,

꼭 ‘틀린 것’이 되어야 하나?”


나는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그 신은 더 크고, 더 넓고, 더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말씀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독점하거나 오해하는 태도에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나는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고,

그 ‘틀림’을 다시 ‘다름’으로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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