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백, 질문과 설명

by 심연

믿는 자가 존재하려면, 믿지 않는 자도 존재해야 한다.

흰색이 의미를 갖기 위해선, 검정이 먼저 있어야 하듯이.


누군가 믿음의 확신을 말할 수 있다면,

나 같은 의심과 질문의 존재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흑의 자리에서, 묻고 살아간다.

절대자를 믿는다는 건,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양립과 균형 속에서 인류는 신앙과 과학 모두에서 자라왔다. 신앙과 과학, 믿음과 무신론, 설명과 질문은 함께있어야 한다.

서로를 자극하고, 서로를 정화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현실을 살아간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은 단 하나의 가능성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으로 ‘전도’를 한다.


왜 그렇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건 정말 성경의 논리로 입증된 ‘진리’인가?

아니면, 자신의 믿음을 보호하려는 본능인가?


진리를 믿는다는 건, 그 진리 안에 ‘머무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때로, 현실을 다채롭고 유연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묻고, 반문한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의 믿음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라.

나는 지금도,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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