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카고 동네런

7년 만에 다시 찾은 시카고, 러닝으로 기억한다.

by 마쏜

2025.05.29


출장으로 다시 찾은 시카고.

정확히 7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였지만,

기억과는 달리 어딘가 낯설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맞은 바람은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고,

낮은 회색빛 하늘 아래,

거리와 빌딩은 어깨를 웅크린 채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와 중

도착 그다음 날 아침 시티런을 신청했다.

GetYourGuide에서 우연히 발견한,

‘달리며 도시를 읽는 프로그램.’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몸으로 이 도시를 먼저 느껴보고 싶었다.

차가운 첫인상을 뛰어넘어, 이 도시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7년 전에는 러닝을 전혀 하지 않았으니..)


아침 7시,

Apple Michigan Avenue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했고

이른 시카고 거리에 모인 사람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모두 나처럼 학회 참석차 방문한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곧 가이드와 인사를 나눴다.


그녀의 이름은 몰리.

시카고에서 태어나 자란,

그리고 지금도 시카고를 달리고 있는 프로 마라토너였다.

도시를 사랑하는 러너, 그보다 더 든든한 가이드는 없을 것이다.


달리기는 부드럽게 시작됐다.

상쾌한 속도와 간단한 자기소개,

그리고 도시는 조금씩 우리를 허락해 주는 듯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Tribune Tower.

한눈에 보기에도 멋진 고딕 양식의 건물이었지만,

몰리는 우리를 멈춰 세웠다.

“자세히 보면,

벽면에는 전 세계에서 가져온 돌들이 박혀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자,

정말로 다양한 표면과 질감의 돌들이 보였다.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만리장성, 파르테논 신전,

심지어 9·11 이후의 WTC 잔해 조각까지.

총 149개의 돌이,

시카고 중심의 벽 속에 새겨져 있었다.

단지 장식이 아니었다.

도시는 그 자체로 기억의 박물관이었고,

그 건물은 세계가 모인 장소였다.

“시카고는,

단지 미국의 도시가 아니에요.

세계를 품고 있는 도시죠.”

몰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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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Navy Pier를 향해 달렸다.

몰리는 달리며 숨을 고르듯 말했다.

“여긴 원래 Municipal Pier였어요.

1916년에 다니엘 천험의 계획으로 시작됐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군인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의미로

'Navy Pier'라는 이름을 갖게 됐죠.”

그곳은 한때 군사 훈련소였고,

전쟁 중엔 해군들이 머물던 공간이었으며,

지금은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박물관과 극장이 들어선 문화의 공간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흐르는 공간.

그 위를 우리는 가볍게 뛰어갔다.

나는 그 길을 밟고 있는 내 러닝화가

전쟁터의 군화를 지나 평화로 향하는 누군가의 걸음과

겹쳐지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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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로항을 따라 한참을 달리다가

버킹엄 분수대 앞에 멈춰 섰을 때,

몰리는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 말했다.

“어릴 적 여름이면,

여기 분수에 신발만 벗고 뛰어들곤 했어요.”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에

그 시절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스쳤고,

우리 모두는 웃었다.

도시는 그렇게,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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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구간.

시카고 미술관을 지나 거대한 은빛 곡선이 반짝이는 Cloud Gate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 조형물에 비친 우리를 바라봤다.

누구는 손을 올리고, 누구는 사진을 찍고, 나는 조용히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약간은 지쳤지만, 왠지 모르게 단단해진 얼굴. 그리고 편안해진 호흡.


9K

시카고의 심장을 한 바퀴 도는 거리.

도시는 그렇게, 내 안에 들어왔다.

출발 전의 낯섦은 결승점 즈음엔 편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엔 이 도시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어쩌면, 이 도시가 먼저 나를 받아준 것 같았다.

길 위에 땀을 흘리고 숨을 쉬며 두려움 없이 달렸을 뿐인데

도시는 그렇게 내 동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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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 간다면,

시티런을 꼭 해보시길.

그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도시와 나 사이의

두께를 없애는 아주 강력한 방식이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을,

‘내가 뛰어본 도시’로 바꾸는 경험.


그날의 시카고의 시티런은, 이방인이었던 나를 동네 사람으로 바꿔주었다.
마쏜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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