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구기지 않기
『구겨진 종이 이야기』중에서
종이를 한 번 구기면, 아무리 펴도 예전처럼 매끄럽지 않다.
말도 그렇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구기고, 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은 채 흔적이 남는다.
문득 어릴 때 아들이 등을 돌리며 내뱉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말은, 어쩌면 아이 마음 한켠에 남겨진 구김 하나가 문득 흘러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출근길 주차장에서 만난 치과 선생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셨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요!”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내내 생각했다.
‘와... 저렇게 활짝 웃으며 인사해 주니 기분이 정말 좋아지네.’
진심이 느껴지는 한마디가, 마음 한켠에 햇살 한 줌을 내려놓고 갔다. 선생님도 오늘 하루, 부디 평안하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이렇게 우리는 말을 주고받을 때, 단어 자체를 넘어서 상대의 감정과 에너지를 함께 느끼게 된다.
시간을 되돌려 생각해 보면, 나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첫 번째 선생님이었다.
처음 말을 배우던 시기엔 예의 바른 인사말과 기본적인 표현들을 가르쳤다.
“안녕하세요, 배꼽 인사해야지.”
“미안하다고 해야지.”
조금 더 자라서는 관계 속에서 말이 지녀야 할 태도를 강조했다.
“친구 험담을 하면 안 돼.”
“거짓말을 하면 안 돼.”
그리고 제법 어른이 되어 나와 눈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는 목소리에 마음의 무게를 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말로 남에게 상처 주지 말아라.”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그렇게 아이를 가르쳤고, ‘말’을 잘 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말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돌이켜보면, 언어는 자연스레 익혔을 뿐, ‘소통’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본 적은 없었다. 표현하는 법은 알려줄 수 있었지만, 마음에 닿는 울림까지 전해 줄 만큼은 준비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이의 첫 선생님이 되기엔, 나는 참 서툴고 부족했다.
이런 생각에 닿았을 때, 문득 부끄러워졌다.
젊은 날의 나는, 말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
가끔 언쟁이 오간 뒤엔 종종 이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가 말을 하지 못했다면, 아니면 상대가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함부로 내뱉은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마음을 할퀴고 지나갈 때, 차라리 침묵이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그럼 누구한테 말하겠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에게 이해를 요구했고, 감정을 강요했다. 그건 옳지 않았다.
떠오르는 기억들 앞에서,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특히 감정이 격해져 제어하지 못했던 어느 순간, 이성을 잃었고, 상처를 주는 날카로운 말임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마음에 금이 간 채, 뒤늦게야 후회했던 기억들. 조금만 더 천천히 말하고 한 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대를 먼저 헤아리고, 문제의 본질에 차분히 마주했더라면, 아프게 돌아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을 지나며, 상처와 후회는 나를 깎고 다듬어 주었다.
이제는 세월이라는 사포에 조금씩 닳아, 한결 부드러워졌다. 삶의 굴곡은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일깨워주었고, 독서는 감정과 생각을 더 정제된 언어로 바라보게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여유가 피어났다.
조금씩 달라진 마음은, 내가 머무는 공간 속에서도 스며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감기 환자가 주로 찾는 병원이다. 몸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찾다 보니 예민해진 마음이 목소리에 묻어나고, 때로는 경계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표정이 어둡고 말투에 가시가 돋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으로 굳어지고, 대화는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날카로운 말을 해도, 찹쌀떡처럼 말랑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부드러움은 차가운 마음을 녹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으로 바꾸며, 거친 공기마저 온기로 바꾸는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먼저 눈을 맞추고, 마음을 담아 미소 지으면 날 선 분들도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작지만 긍정적인 경험이 쌓이며,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아픈 몸은 원장님이 고치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어르신, 약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식사도 꼭 하시고요.”
“얼른 나아서 주말에 엄마 아빠랑 신나게 놀아야지?”
“길이 미끄러워요. 넘어지지 않게 천천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다 좋아졌다니 참 다행이에요.”
마음이 머무르고 말의 온도가 달라지자, 환자들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진심이 담긴 한마디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약 처방과 함께 ‘마음 처방’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말은 전염된다.
따뜻한 말이 퍼지기 시작하자, 나도, 상대도, 우리 모두가 점점 달라졌다. 병원은 서서히 변했고, 머무는 공간엔 평온함이 스며들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우리 간호사 선생님들도 어느새 “참 이쁘네.”라는 말을 듣는다. 그 말에는 단순한 외모가 아닌, 진심과 정성이 담겨 있다.
문을 나서던 분들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인사를 건넨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스치듯 건네는 짧은 인사 속엔,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 담겨 있다.
말보다 더 깊은 위로와 힘이 담긴 웃음 소리가 병원 안에 퍼진다. 그렇게 정이 오가고 마음이 쉬어 가는 다정한 공간이 된다.
말에는 힘이 있어, 사람을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합니다.
그만큼 강한 힘을 지녔기에, 우리는 매 순간 어떤 말을 선택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목소리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부드럽고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
현실에선 아직도, 가끔씩 한계를 넘어서 억지를 부리거나 자신의 입장만 앞세워 화를 내며 주변을 지치게 만드는 분들을 만납니다.
“화를 담은 말은 독이 든 음식과 같아서, 내가 그것을 먹지 않으면 독에 물들지 않는다.”
어느 현자가 전하는 이 깨달음은, 누군가가 화라는 재료로 감정을 차려낼 때 냉정을 잃지 않고 휘말리지 않는다면, 그 독을 먹지 않고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스스로 정화해 보려 애쓰지만, 아무리 겪어도 머리로 익숙해지는 만큼 마음으로는 좀처럼 쉬워지지 않습니다.
늘 마음은, 머리보다 한 걸음 늦습니다.
그럴 때면 호흡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이 순간이 전하려는 가르침은 무엇인지, 나는 이 일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되고 싶은지를.
... 다시,
더 나은 말을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담담하게 마음을 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