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이 되는데 족히 이십 년은 넘게 걸리는 일.

부부, 다름에서 닮음으로

by 수아롬


스티커를 자국이 남지 않게 천천히 떼는 일을, 나는 잘하지 못한다.

중간쯤 찢어지기 시작하면 금세 인내심을 잃고, 결국 확 잡아 뜯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남편은 느리고 더디더라도, 오래 걸리는 일에 강한 사람이다. 자국 하나 남기지 않으려는 그 조심스러움이 나와는 참 다르다.

그는 늘 그런 손길로 나를 감쌌다.

조심스레 스티커를 떼어내듯, 자국도 흠집도 남지 않게 애쓰며. 아낌과 기다림으로 오랜 시간 곁을 지켜주었다.


젊은 날, 덜컹거리던 시절엔, "결혼기념일이 기념할 날인가"라고 외쳤었습니다.

남편은 요령도 눈치도 어설퍼, 그 답답함에 지칠 때가 많았지요.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야 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한결같은 모습을 봐도 짜증도 화도 나지 않아요.

그냥 웃게 돼요. 참, 이상하죠?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마주한 지금은 압니다. 그 우직한 느림이, 결국 우리 사이를 단단하게 했음을, 그리고 함께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를요.


품어주고, 오래도록 바라봐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꾸준히 내게 다가와, 조용히 내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주어서 더 고맙습니다.

소중한 마음을 담아 중년의 결혼기념일에 전해봅니다.

닮아가는 우리, 그 이야기를 꺼내며.

사랑합니다.



나는 자장, 남편은 짬뽕.

나는 번개탄, 남편은 숯불.

나는 수채화, 남편은 수묵화.

나는 정해진 길이 편하고, 남편은 새로운 길을 경험해 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잘 웃는 사람이고, 남편은 내 웃음을 보며 따라 웃는 사람이다.


성격도 생각도, 맛의 취향까지 흰색과 검정처럼, 처음엔 참 달랐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어긋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리기까지는, 시간과 조율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다.


남편은 타인에게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 좌우명처럼 늘 하던 말.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서 상대를 이해해주려 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욕심이 많았다. 최선을 다해 더 좋은 것,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어서 성공을 향해 앞서 달리는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타인에게 자로 잰 듯했다.

“내가 이렇게 했으면, 상대도 이 정도는 배려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관계의 저울이 기울면 억울함이 몰려왔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가족에게 원하는 바람은 적었다.

없는 대로, 그대로의 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소박하고 잔잔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결이 다른 둘이 만났고, 받아들이며, 천천히 닮아갔다.

서툴렀던 마음은 신뢰로 깊어졌고, 다름은 배움이 되었으며, 결국 단단한 사랑이 되었다.

파도가 몰려오듯 오해가 덮칠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걸 지켜낸 건 '변함없이 아끼는 마음’ 하나였다.


이제는 서로의 색이 스며드는 경계 어딘가에 여백 한 칸을 들였다.

흰빛과 검은빛 중간 즈음, 회색빛 공간에서 숨을 고르고 마음이 쉬어간다. 닮아 있는 다름을 품은 채, 딱 좋은 여유를 두고 평온하게 머문다.


조율이 끝난 남편과 나는 환상의 ‘원 플러스 원’이 되었다.

어려움을 해결할 때는 영화 속 합체라도 한 것처럼, 능력치가 무한대로 커져 슈퍼 히어로가 된다. 우스갯소리로 “잘하면 지구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할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붙어 다니면 안 싸우세요? 지겹지 않아요?”

나는 웃으며 답한다.

아니요, 제일 편한 사람이에요. 가장 오래된 친구죠.”

물론, 한때는 다투기도 했고, 미워할 때도 있었다. 가깝다는 이유로 더 쉽게 상처 주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뒤틀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내가 길을 잃거나 마음이 흐트러질 때, 무의식이 제일 먼저 찾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어 숨결처럼 곁에 머문다.


이젠 같은 책을 읽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면서 더 깊어졌다.

책장을 나란히 넘기고 눈길이 머무는 곳도 어느새 겹쳐진다. 그렇게 마주 보며 웃고 손을 잡고 걸으며, 지칠 땐 등을 맡길 수 있는 단단한 아군이 되어 있다.


이 삶이 참, 고맙다.

두근거림 하나로도 하루가 반짝이던 날들을 지나, 주름마저 고요한 중년이 된 지금, 언제나처럼 남편을 존경한다.

우주 최강 인품에 성실함과 사람을 향한 바른 마음까지 맑고 깊은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의 곁에 머무는 지금이, 내 인생의 로또다.


그런 귀함은, 작고 은은한 연애편지가 되어 도시락 속에 담긴다.

오늘도 어김없이, 흥얼거리며 따뜻한 밥을 짓고, 마음 반찬을 정성스레 담는다.

출근 가방 안엔 늘 나의 하루가 살포시 들고, 소리 없는 사랑이 그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따라간다.

따뜻한 손을 잡고, 오늘을 함께 걷는다.


매일 그대와, 도란도란 둘이서

매일 그대와 얘기하고파

함께 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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