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닮아가는 슬픈 기쁨

by 수아롬


엄마 아빠는 ‘점쟁이’다.

눈이 어두워져도 자식의 근심이 보이고,

귀가 어두워져도 자식의 한숨은 들리나 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자식을 훤히 꿰뚫는다.


엄마 아빠는 '손주 바라기'다.

다 커버렸는데도, 온통 손주 생각뿐이다.

그저 언제 한 번 얼굴 볼 수 있을까,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까...

오매불망, 이런 눈물겨운 짝사랑이 또 있을까.


엄마 아빠는 ‘나의 열렬한 팬클럽’이다.

할 수 있다. 잘했다. 어이구 잘한다~!

나도 이제 곧 오십인데...

팬심이 우주라, 도무지 변치가 않는다.


엄마는 사위의 '김치 자판기'다.

유난히 생김치를 좋아하는 사위를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늘도 배추에, 열무에, 파에,

손끝에서 나오는 소스를 더해 정성껏 버무린다.

그렇게 사위 덕분에 김치 장인이 되셨다.

알고 보니, 레시피의 숨은 재료는 사랑이었다.


엄마는 ‘정의의 사도’다.

바르고 직설적이다.

정직하고 비밀도 잘 지킨다.

세상의 부당함을 못 참고, 정의 앞에선 늘 한 발 앞선다.

혈압 오르니 그러지 말라 해도 참지 않는다.

누구든 부정한 사람은 우리 엄마 눈에 안 띄는 게 좋을 게다.

딸은 이런 엄마를 말려보지만, 한편 그 힘찬 기운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버지는 ‘딸바보’다.

군인이어서 무서운 사람 같았지만,

나는 언제나 “우리 공주”였고, 한없이 여린 존재였다.

초등학생 때까지 무릎 위에 앉히고 비행기 놀이를 하며 밥을 먹여주셨던 그 추억.

불쌍한 내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 “그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먹었었다”고 고백했다.


아버지는, 아마 서러웠을 것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묵묵히 짐을 짊어지고 쉬지 않고 일했지만,

정작 우리가 재잘거리는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었다.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눌 순간들은 바쁘게 스쳐 지나갔고, 그 속에 온전히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아버지 눈에는, 내가 어느새 훌쩍 커버렸을 것이다.

이제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길게 비워졌던 공백 탓에 시시콜콜한 일상을 꺼내놓는 것마저 서툴러졌다.

아마,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조용히 겪고 있는 외로움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버지의 지난 삶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는지,

우리를 얼마나 깊이 아끼셨는지를.


그렇게 엄마 아빠를 닮아 지금 내가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더 닮아간다.

모습도 목소리도 머리에 새치마저도

마음결도,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닮아가고 있다.

네가 내 딸이어서 고맙다고 하시지만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난 내가 정말 행운이다.


보살펴 드리려고 곁에 오시라 했는데,

정작 보살핌을 받는 건 나다.

여전히 나는, 부모님의 품 안에 있다.


당신들이 늙어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가는 시간이 아리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나의 오늘에, 당신의 어제가 스며 있었다는 것을.

슬프도록 기쁜 이 닮음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예언이 되어 준다.


“어제의 당신 모습을 한 나, 잘 살겠지요?”




keyword
이전 09화저는 병원의 청각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