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는 이야기, 마음으로 조율하는 일
나는 병원의 청각사다.
보청기를 상담하고, 환자가 잘 적응할 때까지 소리를 정교하게 맞추는 일을 한다.
가족 중에도 청각장애와 난청으로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이 계셔서, 환자 한 분 한 분의 불편을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보듬으려 애쓴다.
일반 보청기 전문점은 어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이 주로 찾지만, 병원을 방문하는 분들은 이미 청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오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청기 적응이 쉽지 않고, 그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곧 마음의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세상과 단절되어 상처가 쌓인 분들은 낯선 장치나 새로운 설명 앞에서 곧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귀로 하는 소통이 막히다 보니, 진심을 전하는 일도, 설명을 이해받는 일도 생각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힘들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긴 나만의 작은 노하우가 있다.
상담실에 들어선 첫 순간, 내가 주목하는 건 청력 수치만이 아니다.
착용할 분의 조급함과 기대감의 정도,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내고 비교하는지, 그리고 손이나 귀, 목에 액세서리 하나 없는 깔끔한 스타일인지를 유심히 본다. 청력보다 먼저,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상담은 소리를 맞추는 일인 동시에,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야 낯설고 긴 적응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덜 외롭게 함께 걸어갈 수 있으니까.
성격이 급하고 욕심이 앞서는 분들은 대개 이렇게 시작한다.
“친구는 이런 모양으로 했대요. 내 건 더 좋은 거 맞죠?”
자신의 난청 정도나 상태보다는 늘 비교에 집중하고,
“이 정도 가격이면 바로 잘 들리는 거죠?”
기계가 마법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는다.
이렇게 막연한 기대감과 욕심이 큰 경우 오히려 적응을 더디게 하고, 서로를 지치게 한다.
또, 액세서리 하나 없는 분은 몸에 닿는 이물감에 민감하기도 하다.
보청기의 가벼운 접촉조차 불편해하시며, 착용 자체를 힘겨워한다. 나 역시 시계 외에는 몸에 닿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예민한 분이시라면 기계가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장치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담할 때는 늘 세 가지를 꼭 먼저 말씀드린다.
첫째, 보청기는 천천히 소리크기를 조절해야 해서, 6개월에서 1년까지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 안경을 처음 쓸 때 콧잔등이 불편한 것처럼, 보청기도 낯선 장치가 주는 어색함이 있다.
셋째, 보청기는 소리를 키워줄 뿐, 그것을 ‘언어’로 해석하는 건 귀가 아닌 뇌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오랜 시간 난청을 겪은 경우라면 이미 언어 처리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소리는 들려도 대화는 여전히 막히게 된다.
이쯤 되면 많은 분들이 묻는다.
“그럼 왜 껴야 하죠?”
나는 이렇게 답한다.
"보청기는 뇌를 깨우는 장치입니다. 소리를 꾸준히 접하면, 남아 있는 언어 변별력을 유지할 수 있고 적응 기간을 잘 거치면 인식 능력도 개선됩니다. 무엇보다 노인성 난청은 치매 위험을 높이는데, 소리 자극은 뇌세포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세요."
이 일을 한 지 9년 차.
수백 명의 상담과 관찰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간단하다.
처음엔 거부하던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엔 보청기를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처럼 여기게 된다는 점. 익숙해지면, 안경처럼 없어선 안 될 만큼 효과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예외는 정말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처음부터 '잘 들려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은 분들일수록 훨씬 빠르고 편안하게 적응한다는 것이다.
같은 난청, 같은 보청기.
달라지는 건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느냐’는 과정의 차이다.
욕심이 앞선 분들은 늘 불편과 불만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기대를 비운 분들은 그 시간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마음의 여유를 지킨다.
길게는 1년.
누군가는 잘 안 들린다며 괴로워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잘 들릴 날을 믿으며 웃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결국 필수품이 된다는 같은 결과에 도달하지만, 보청기가 삶의 일부가 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남는다.
마음이 지나온 여정, 그 안에서 느낀 삶의 온도는 각자의 태도만큼이나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이 작은 기계 하나에도 이토록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하물며 복잡한 인생의 많은 문제들 앞에서는 어떨까요?
욕심은 때때로 더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지만, 넘어서면 나와 남을 괴롭히는 집착이 되기도 합니다.
삶에서 스스로를 가장 무겁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귀를 열기 위한 상담이, 결국 마음을 여는 시간이 됩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저 역시 제 안의 조급함과 기대, 욕심의 그림자들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조금 더 빨리 잘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부끄럽게 마주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속 저울 위에 덜어내야 할 무게가 무엇인지 점검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하루하루 내려놓는 연습, 기대치를 낮추는 마음가짐, 그 모든 것을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봅니다.
우리도 어쩌면, 보청기를 처음 착용하는 분들처럼 인생의 낯선 소리에 천천히 마음을 맞춰가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