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12월 : 안치오 상륙 작전

영미의 분열

by 전략 문학

(이 글은 '대체역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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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3년의 장

제7장. 안치오 상륙작전 : 영미의 분열


프롤로그 : OVER THERE

공백 지도.png

43년 12월 25일.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랑비가 내리는 안치오 해안선.


"춥다…

지금 몇 도야…?"


"7도라는데?"


"이건 절대 영상 7도 아니야. 너무 시려."


상륙정 안의 병사들은 축축한 손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중얼거렸다.

물기는 바닥에서 올라왔고, 바람은 틈을 타 옷 속으로 들어왔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중대장님, 정말 아무도 없죠?”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확신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래, 최소한... 마지막에 내가 받은 브리핑에선 그랬다.

그리고 곧 해안인데 조용한 걸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바다는 조용했고,

모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은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것을 ‘성공’이라 불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정상’이라 말하진 않았다.


한 시간 전.

바르네갯급 항공지원함 비스케인(AVP-11) 내부.


공기 중엔 무전기의 잡음이 떠다녔고, 지도 위의 화살표는 그대로였다.

전선은 고요했고, 파도는 매섭지 않았다.


미 제6군단장 존 루카스 소장은 조용히 숨을 내쉬며

보고서 종이 한 장을 넘겼다.


“이거, 영국 측에도 같은 정보 공유된 건가?”


작전통제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장님.

영국 제1사단 사령부와는 15분 전 동기화 완료됐습니다.”


“그래. 그렇군.”


루카스는 문서 바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두 번, 세 번. 그 안의 정보가 달라질 일도 없건만,

그는 한참을 들여다봤다.


“상급부대… 제5군에서 추가 지시는 없나?”


“없습니다.

클라크 장군은 현재 작전 시간표 유지 방침을 재확인했습니다.”


“알렉산더의 본부는?”


“마찬가지입니다. ‘경계 유지, 계획대로’.”


루카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은 다시 지도 위의 교두보 확대선을 훑었다.

선은 자신 있게 뻗어 있었지만,

그 선이 현실이 되는 장면은 아무도 아직 보지 못했다.


“… 다행히 그들도 같은 판단을 내렸군.”


작전통제 장교는 말없이 다음 보고서를 넘겼다.

지휘함은 흔들렸고, 조명은 붉게 빛났고,

바다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

무장상선 통신지휘함 HMS 불로로(F82) 내부.


영국 제1사단장 핸리 스토크스 소장은 반쯤 식은 홍차를 내려다봤다.

흙빛 바다와 흐린 하늘. 날씨는 지중해처럼 부드럽고,

분위기는 영불 해엽처럼 무거웠다.


“상륙 전 확인 사항.

제6군단의 전방 수색 자산은… 우리와 공유되었나?”


통신장교는 주저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건 전부 ‘미 제6군단 전용’이라고…”


“그렇군. 우리는 같은 바다 위에 있으나, 여전히 들러리라는 거지.”


그는 다시금 작전지도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미국 애들은 공격을 잘하지.

… 다만, 끝내질 못할 때가 문제야.”


역시 같은 시간.

시야를 가리는 초목이 자라난 티볼리 남쪽 고지대.


흙과 자갈이 뒤엉킨 비탈에선 아무런 말도 없었다.

단지 방열된 포신이 소리 없이 고개를 들고 있었고,

탄약은 이미 제 위치에 들어가 있었다.


어디선가, 무전기의 짧은 신호음이 지나갔다.

병사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고, 아무도 명령을 반복하지 않았다.

단지, 모두가 예정된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쌍의 망원경이 수평선에 불빛을 포착했다.

해안선 앞, 낮은 실루엣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표적은 이미 좌표 위에 있었다.


'공격까지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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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 불타는 모래사장


43년 12월 25일. 상륙 후 30분.

혼돈과 혼란 속의 안치오 해변


모래 위엔 질서가 없었다.

병사들은 상륙정에서 내린 방향대로 흩어졌고,

누가 먼저였는지, 어느 부대였는지 따지지 않았다.

방어진지는 없었다. 참호도, 말뚝도, 심지어 모래주머니도 없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5중대는 오른쪽이야! 오른쪽—”


“그게 어딘데?! 뭐 기준 오른쪽??”


지형도 없고, 표식도 없었다.


지도에는 교두보 선이 그려져 있었지만,

지금 이 해안 위엔,

그 선에 해당하는 자리는 없었다.


무전통신 혼선은 계속 이어졌다.

연합 무전망에, 서로 다른 두 개의 ‘4중대’가

동시에 자신들의 위치를 보고했다.


하나는 남쪽 방파제를 기준 삼았고,

다른 하나는 북쪽 둔덕을 기준 삼았다.


둘 다 ‘중앙 진지 확보 완료’라고 했지만,

그 중앙은 서로 900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다.

무전통신 혼선과 혼돈 속에서, 부대들은 '적당히' 주저앉았다.


그때, 해안선 어딘가에서 기관총이 짧게 울렸다.

탄착 지점은 없었다.

그냥 허공을 향해,

누군가 무언가를 먼저 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제1 제파 상륙 완료'


한 시간 뒤.

같은 곳. 더해진 혼돈.


대전차포 부대는 하역을 마쳤다.

그러나 목표 지점은 아무도 모른다.

좌표를 묻는 무전에, 지휘함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전기 다시 연결했나?”


“응답 없음.

… 모두 전파 간섭이래.

그 말, 오늘만 세 번째야.”


'제2 제파 상륙 완료'


30분 뒤.

같은 곳. 더해지는 혼돈.


선도 전차 한 대가

모래사장을 벗어나려다 측면 궤도가 늪지에 빠졌다.


기계음이 울렸고,

탑승자는 “탈출!”이라고 외쳤다.


포탑이 회전하지 못했고,

뒤따르던 차량은 진입 자체를 포기하고 후진했다.

그 뒤를 따르던 탄약 트럭은 물러나다 측면을 충돌했고,

물자는 땅에 쏟아졌다.


탄약정은 물에 젖었다.

포는 땅을 구르며 쓰러졌고,

전차는 무력하게 궤도만 헛돌았다.


바다 위엔 네 번째 제파가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지만,

해안에선 누구도 그들을 반기지 않았다.


'제3 제파 상륙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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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

바르네갯급 항공지원함 비스케인(AVP-11) 내부.


무전기는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상륙부대의 위치보고는 대부분 어긋나 있었고,

포병대의 좌표 요청은 대상이 사라진 지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제3보병사단 1연대, 현재 위치 다시 보고하라.”


“… 해변, 동쪽, 어딘가입니다.

차량은 뒤섞였고, 인원 편성 재확인 불가.

연대 CP는 아직 미설치. 반복, CP는 미설치 상태.”


작전장교는 루카스 소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소장님, 이 상태론 제4 제파 하선이 불가합니다.

현재 차량과 인원이 해안선에 막혀 있습니다.

교두보와 지역 도로의 연결도 확인 불가합니다.”


루카스는 다시 지도를 바라봤다.

붉은 선이 깔끔하게 교차하던 전술도면.

그러나 머릿속엔 흙탕과 파편과 연기만이 떠올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워게임을 몇 번이나 했었는데.

그때는 문제없이 상륙했었다고.


“영국 측은?”


“잘 확인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사단 대부분이 상륙을 완료한 것 같습니다.”


아냐. 그래선 안 돼. 우리만 늦으면 안 된다고.


“알렉산더에게 교두보 현황 보고는?”


“이미 송신했습니다. 아직 회신 없음.”


루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선 하나를 펜으로 다시 덧그었다.

그러나 그것은 종이 위에서만 더 선명해졌다.


비슷한 시간.

무장상선 통신지휘함 HMS 불로로(F82) 내부.


“보병연대는 예상 위치 도착.

전차 1개 소대는 제2포대 측면 방호 위치에 배치 중입니다.”


통신병의 보고에 스토크스 소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공격이 시작되면 2개 대대가 우회한다.

미군 쪽에서 혼란 발생 시, 우리는 자체선 확보만 유지해.

— 지금 이 구역에선, 우리가 주인이다.”

목소리는 느긋했지만, 눈길은 미국 측 해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 뒤.

4 제파 하선 여부를 둘러싼 참모 간 조율은 이어졌지만,

실무자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결정권은 두 지휘관에게 넘어갔다.


“루카스 소장, 여긴 불로로.

제1사단, 상륙 완료.

주요 진지는 이미 점령되었고, 후속하는 전차도 자산 배치 중.

문제라도 있나?”

무전기를 타고, 영국 특유의 여유가 섞인 목소리가 흘렀다.


“… 여긴 비스케인.

제3사단과 45사단의 선두 부대는 상륙했지만,

도로 확보가 불가능하다.

물자 전개는 막혔고, 편성이 무너지고 있다.”

루카스의 목소리는 침통하고 건조했다.


“상륙은 동일 조건일 텐데,

우린 문제없이 전개했다.

해변의 문제인가, 아니면— 지휘의 문제인가?”


“그쪽 병력은 절반 수준일 뿐이야.

그리고 애초에 작전계획은 우리 쪽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잖나.”


“그건 작전계획일 뿐이고,

지금 중요한 건 교두보의 실상일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두보는 무너진다.”


“… 그렇다면, 지금 하선 중인 제4 제파는?”


“그들이 설 자리는 있나?

없다면, 더는 부르지 말게.

괜한 혼란만 늘어난다.”


“아니, 그렇다고 바다 위에 방치해 두는 건 안 되잖나...”


바로 그때.

두 지휘관의 이어폰에서 동시에 날 선 보고가 울렸다.


“여기는 제3사단 2대대— 북동측 고지!

포격! 반복, 포격 개시!

적이 움직인다!!

지시를, 명령을!!”


“1사단 HQ입니다!

안치오 방면에서 적 접근 및 포격 감지!

식별 결과— 이탈리아군입니다!”


협조회의는 곧바로 종료되었다.


같은 시간.

화염과 피로 물드는 안치오의 해변.


포탄은 고지에서 날아왔다.

강철이 뚫고 들어왔고, 연기와 불꽃이 해변을 덮었다.

모래는 튀었고, 병사들은 웅크렸다.


무전기는 비명을 토했다.

“탄약고! 직격탄— 화염, 응급천막까지 번졌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기계음과 비명, 충돌음이 이어졌다.

탄약 트럭은 후진하다 벽을 들이받았고, 포는 쓰러졌고,

장비는 모래 속으로 묻혔다.


“지휘소는?!”


“연대 CP, 포격으로 일부 철수. 무전 두절!”


“그럼 누구한테 명령받아야 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루카스는 작전 지도 위의 선을 바라봤다.

분명 선은 그려져 있었지만, 실제론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그어 넣은 화살표 위에, 포탄이, 불길이, 무전기의 잡음이 덮쳐왔다.


“소장님, 후방 도로선도 조우했습니다.

이탈리아군입니다. 차량 열두 대 이상, 포병 포함.”


“… 전선, 유지 가능한가?”


“이 상태로는 못합니다. 편성도 무너졌고, 화력 지원도 끊겼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네??”


“아냐, 아니야.”


잠시 정적.


그는 작전참모의 눈을 보지 못했다.

답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아래에서, 지도가 구겨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영국 제1사단 방어선, 서측 둔덕.


“적 박격포 포착. 좌측 고지 너머.”


“포대 정렬. 제1포반은 전방 우측 교차사격.”


“2소대, 참호 이탈 금지. 명령 전까지 대기.”


스토크스는 짧게 외쳤다.

“계획대로 2개 대대가 우회한다.

미군 쪽이 밀릴 경우, 우리만이라도 선을 유지해라.”


포성이 메아리쳤고, 부대들은 절차에 따라, 훈련된 방식으로 움직였다.


“거리 800, 목표 적 전차, 6파운더, 철갑탄, 사격!


대전차포의 포신이 짧게 숨을 토했고,

추축군 전차 한 대가 연기를 품으며 옆으로 기울었다.


통신장교가 무전을 수신했다.

“미 제3사단 측 요청. 포병 지원 가능한가 묻습니다."


그는 낮게 말했다.

“지금도 날리고 있다고 전해줘. 시야 안에 있으면.”


밤이 되자 주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맹공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군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구식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병사들이었지만,

야간과 혼란 속 근접전에서 그들은 위협적인 적이었다.


결국 미 제45사단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넓게 전개되어 있던 사단은 주간공격에 이미 절단되어 있었고,

야간이 되자 고립된 채 줄줄이 투항했다.


영 제1사단은 거점을 사수했다.

주간에도, 야간에도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돌파구는

더 이상 틀어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혼란 속에서 수습은 불가능했다.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쯤,

미 제3사단이 포위당할 위기에 처하자 상황이 급변하였다.


“제3사단 7연대— 사단 본부와의 연결 두절!

남측 도로 차단! 차량 손실 60%! 탄약 고갈 임박!”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보고된 건 중대나 대대가 아니라,

사단 전체가 적의 포위망에 갇혀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회기동도 불가합니다! 서측 고지는 이미 적 수중—”


보고가 끊겼다.

무전기에는 잡음조차 남지 않았다.


루카스는 수화기를 들었다.

이건 자신의 재량을 아득히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보고는 짧고 간결했다.

“제45사단 포위. 제3사단 고립 위기.

해안 도로와 항만 모두 기능 상실.

이 상태로는 교두보 유지 불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한참의 정적 끝에, 회신이 왔다.


“루카스 소장, 제5군은 작전 전환을 승인한다.

교두보 철수를 개시하라.

— 가능한 병력과 장비는 모두 회수하되,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인원은… 방어선 확보에 전념토록.”


잠시 후, 무전 끝에 덧붙여진 말이 들려왔다.


“그리고… 국방성 지침을 재확인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국 국민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할 것.’

—그게 상부의 뜻이다.”


루카스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겠습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이 작전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단 한순간도.


얼마 뒤. 짧은 통신이 영국군에 도착했다.


“불로로, 여긴 비스케인.

미 제6군단은 교두보 철수를 개시한다.

가능한 한 정오 이전 철수 완료 예정.

영 제1사단 측 교두보 방어 여부는 귀 사단 판단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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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

무장상선 통신지휘함 HMS 불로로(F82) 내부.


“철수…?”

스토크스 소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이지? 미군이, 철수?”


통신장교가 종이를 내밀었다.

'미 제6군단, 12월 26일 정오 이전 교두보 철수 개시.'


“우리한텐… 통보도, 협의도 없었잖나.”


참모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결심은 선 것 같습니다. 제3사단도 포위 위기고,

제45사단은 연락두절입니다.”


스토크스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버 해협에서 우린 프랑스군과 함께 철수했다.

그때도, 제대로 된 통보는 없었지…”


잠시 후, 그는 결연히 무전기를 집었다.


“모든 연대에 전파하라.

지금부터, 철수 준비를 시작한다.

하지만— 최대한 늦춘다.

우리 병사들은 아직 진지에 있다.

그리고 놈들이 아직, 오고 있다.”


이탈리아군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상륙정에 포탄이 박히고, 사람들의 외침은 포격 소리에 묻혔다.


“적 좌측 돌파! 3중대 전멸!”


“연대 본부가… 소멸!”


포로가 늘어났고, 차량은 파괴됐고, 무전기는 침묵했다.

영국 제1사단은 고립되었고, 지원은 없었다.

해안엔 미군 수송선이 이미 떠난 뒤였다.

승선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물자는 버려졌다.

… 부상병이나 포위당한 자들도 버려졌다.


“스토크스 소장님!

남은 전력, 해안까지 철수 완료.

하지만 사단 편제는… 완전히 붕괴됐습니다.”


스토크스는 무전기를 들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영 제1사단, 철수 완료.

교두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적막한 해안을 바라봤다.

불타는 모래 위엔 자신들의 발자국만 남았고,

바다는 이미 모든 걸 잊은 듯, 조용했다.


스토크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부하 장교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음부턴… 양키 놈들한테 같은 배에 태워달라고 해.

적어도, 떠나는 건 같이 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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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분열의 해안가


1. 작전 구상과 초기 배치

연합군

연합군의 안치오 상륙작전(Operation Shingle)은 본래 이탈리아 전선 교착 돌파를 목표로 했다.

연합군 최고지휘부, 특히 영국의 알렉산더 장군과 미 제5군 클라크 중장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수립했다.

목표 : 로마 남쪽 방어선으로 우회하여 추축군을 후방에서 위협 → 중앙 이탈리아의 추축군 철수 유도.

방법 : 전면전보다는 해상기동을 통한 기습 상륙으로 ‘돌출된 교두보 형성’

가정 : 독일군의 반응은 느릴 것이며, 이탈리아군은 약화되어 있을 것


이 전략은 속도와 기습을 핵심 가치로 삼았다. 그러나 실행계획은 다수의 허점을 품고 있었다.

상륙 병력은 제한적 (미국 제3사단, 제45사단, 영국 제1사단)

상륙 이후의 도로 돌파 및 고지 점령 계획이 불명확

상륙 후 상황 평가 간 적의 반격을 가정하지 않음

미국 측은 작전 전부터 회의적이었으며, ‘신속한 공세 확대’ 대신 방어적 태세를 선호함


연합군의 초기 구상은 전술적 기습을 통해 전략적 전환을 유도하려는 시도였지만,

공세의지 부족과 지휘부 간 조율 실패가 출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추축군

추축군은 방어에 있어 신속하게 대응했다.

독일군 : 티볼리 고지대와 내륙 도로 요지를 중심으로 병력과 포병을 전진 배치

이탈리아군 : 상륙 직후와 야간의 혼란을 노린 육박전 시도

연합군의 혼란을 틈타 예비대 없이 초전부터 전면 투입을 감행


이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교두보가 질서를 갖추고 확대되기 전에, 혼란 속에서 공격.’


결과적으로 이는 고전적인 '상륙 저지' 교범에 부합하는 구성으로,

연합군의 전개 지연과 무전 혼선

병력 배치 실패 (특히 미 제45사단의 분산과 초기 와해)

야간 공격에 대한 대비 부족

등의 허점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2. 교전 양상

안치오 해안에 도착한 연합군은 형식적으로는 '무혈 상륙'에 성공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교두보의 기본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한 상태였다.

주간에는 간헐적 포격과 정찰 수준이었던 추축군의 공격은

야간이 되자 양상 자체가 바뀌었다.

이탈리아군 보병 돌격대가 근접 타격 시도

미 제45사단은 이미 전개 중이던 편제의 양익이 갈라지며 각개격파

지휘통신 단절로 인해 투항과 패주가 반복되고, 그 결과 순식간에 돌파가 이뤄짐

야간 교전의 특성상 연합군 화력 우위는 거의 발휘되지 못함

작전은 추축군의 공격이 아니라, 연합군의 불완전한 구조에 의해 먼저 무너졌고,

전투는 ‘벌어지기 전에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3. BDA(Battle Damage Assessment) 요약

BDA 한글.png

※ 단기간의 전투로 연합군 3개 사단(미 제45사단, 제3사단 / 영 제1사단)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총사상자는 약 25,000명에 달했고, 이 중 절반 이상은 실종 또는 포로로 확인되었다.

이는 서부전선 기준으로 결정적 참패에 해당하며, 작전 기간 대비 연합군 최악의 손실로 평가된다.

추축군은 작전에는 성공했지만, 지휘·통제 체계는 명백히 분리되어 있었다.

포병 지원, 공세 방향, 심지어 적 위치에 대한 인식조차 각기 달랐다.

이탈리아군은 돌파 이후 과열된 추격전으로 병력을 소모했고,

독일군은 이를 억제하지 않고 사실상 방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상륙을 격퇴하고 전선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전술적 차원에서의 승리였으나,

지휘·통제·협조의 측면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내포한 불완전한 성과였다.


4. 작전적 효과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상륙 저지

안치오 상륙을 통한 연합군의 중부 이탈리아 돌파 시도는 완전히 좌절되었으며,

이는 이탈리아 전역 전체 작전 일정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했다.

작전 당시 연합군은 로마 진입을 위한 선제 교두보 확보를 목표로 했으나,

실질적으로 다시 시칠리아로 철수하는 결과를 맞았다.

연합군 내 갈등 심화

교두보 철수 과정에서 발생한 미·영 간 갈등은

단순한 전술·전략 협조 실패를 넘어서 동맹 내 구조적 균열을 드러냈다.

특히 미군의 단독 철수 결정과 그에 따른 영국군의 고립은

양국 지휘부 간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으며, 이는 정치적 책임 공방으로 비화되었다.

추축군의 방어선 유지 및 사기 고양

추축군은 지휘·통제 체계가 분리된 상황에서도 연합군 상륙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이탈리아군 입장에서는 독일군의 지원이 절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영토에서 주도적으로 싸운 첫 번째 전과’로서,

패전 일변도의 흐름 속에 등장한 상징적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본토 사수의 서막이자, 국가적 자존심 회복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독일군은 이번 작전을 통해 전선 재편 및 후속 공세 준비를 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였다.

지중해 전선의 균형 회복

연합군의 주도권은 일정 기간 흔들리게 되었으며,

추축군은 연합군의 즉각적인 재상륙 가능성이 희박한 틈을 타

이탈리아 내 전략 거점을 보강할 수 있게 되었다.

시칠리아는 여전히 연합군이 점령 중이나,

더 이상 ‘이탈리아의 문’이 아닌, ‘이탈리아 앞의 고립된 섬’에 불과하게 되었다.

심리적·정치적 충격

미국에서는 “미국인 우선 철수 지침”에 따른 비군사적 판단의 개입이 논란이 되었고,

영국에서는 1사단의 고립과 희생에 대한 책임론이 여론화되었다.

이는 향후 연합군 공동 작전에서 정치적 조율과 독립적 판단 간 균형 문제를

공식 의제로 삼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총평

안치오 상륙 작전은 작전 실패 자체만으로도 큰 타격이었지만,

더 큰 파장은 내부 균열과 연합 전략의 신뢰 상실이었다.

이 패배는 연합군에게 군사적 좌절만이 아닌, 동맹이라는 신념에 큰 균열을 남겼다.


에필로그 : 남겨지지 못한 이야기들


44년 1월 1일.

시칠리아 팔레르모, 연합군 지중해 사령부.


한때 같은 상륙정에 올랐던 이들이,

이제 서로를 향해 눈길조차 피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험한 눈빛과 고성이 오갔다.


미군은 "계획대로만 움직였더라면"을 말했고,

영국군은 "애초에 계획을 공유하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서로의 말은 서로에게 닿지 않았다.


루카스 소장은 침묵을 지켰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그날의 수화기 감촉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작전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순간부터,

어떤 말도, 어떤 항변도 무의미해졌다.


스토크스 소장은 말할 힘조차 잃었다.

불타는 모래사장, 버려진 병사들,

그들은 자신을 부르지도, 비난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뿐이었다.


회의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 진행되었다.

알렉산더는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는 아무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걸.


조용한 회의실엔 결론도, 책임도, 사과도 없었다.


이탈리아 해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모래 위의 발자국은 파도에 지워졌고,

수습되지 못한 이야기들만 바람에 흩날렸다.


영국 제1사단 일부 병력이

미군 수송선에 승선을 시도했으나,

하선 명령과 무장 해제를 강요당했다는 증언.


‘정원 초과’라는 통보.

그리고 헌병의 총구 아래 강제로 밀려난 병사들.


버려진 부상병과 낙오자들.


그 장면을 본 이들은 말하지 않았다.

들었다는 이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해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일부는 그날 루카스 소장이 내린 철수 명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명령을 따랐다.

— 왜냐고? 그건 상부가 내린 지침이었으니까.

‘미국 시민을 우선 살려라.’ 그것이 전부였지.”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고개를 저었고,

또 누군가는 조용히 잔을 비웠다.


그들은 같은 바다를 건넜지만,

도착한 세계는 서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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