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지크 1943 부록

AKO 기갑군의 편재 / 독일의 정치분열 등

by 전략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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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3년의 장

엔드지크 1943 부록


구성

1. AKO 기갑군의 전투서열과 그 의의

2. 독일의 정치분열

3. 저자의 글


1. AKO 기갑군의 전투서열과 그 의의


사령관 : 프리츠 바이어라인

참모장 : 발터 네링


예하 기갑군단


제3기갑군단

군단장 : 하소 폰 만토이펠

15기갑사단 : 아프리카 군단 출신. 전투 경험 풍부

5기갑사단 : 서부전선 → 동부전선 전환 부대

60차량화보병사단 : 아프리카 군단 출신. 전투 경험 풍부


제39기갑군단

군단장 : 프리츠 후베

21기갑사단 : 아프리카 군단 출신. 전투 경험 풍부

3기갑사단 : 동부전선 핵심 기갑사단

29기계화보병사단 : 빠른 기동, 도로 의존성 있음, 도시전 경험


기갑군 직할 전투 부대


503 중전차대대

s.Pz.Abt. 503 (Schwere Panzer-Abteilung 503)

주력 장비 : Panzerkampfwagen VI '티거'


525 중구축전차대대

s.Pz.Jg.Abt. 525 (Schwere Panzerjäger-Abteilung 525)

주력 장비 : Sd.Kfz. 164 '나스호른'


군 직할 포병대 (AKO Armeeartillerie)


중포병대대 (s.Art.Abt.)

군단/군급 화력 지원, 벙커 파괴

주력 장비 : 15cm sFH


중장거리 포병대대 (s.Art.Abt. mot. E)

후방 사격 지원, 적 포병제압

주력 장비 : 17cm K, 21cm Mrs


로켓포 대대 (Werfer.Abt)

심리 타격, 진지 및 보병 제압, 집중사격

주력 장비 : 150mm~210mm 네벨베르퍼


기갑군 직할 지원 부대


전투근무지원대대

병참, 보급, 수송, 정비, 의료, 탄약 및 연료 공급


통신대대

유선/무선 통신 유지 및 암호/해독


군사경찰대대

후방 질서 및 교통통제, 탈영 방지


공병연대

도하작전, 지뢰 제거/매설, 참호 구축, 장애물 설치/철거

2개 대대 : 기갑군단별 배속

1개 대대 : 기갑군 직할 예비


방공연대

항공기 방어(제한된 대전차 임무 병행 가능)

88mm Flak 36/37 및 자주대공포 운용

2개 자주대공포 대대 : 기갑군단별 배속

1개 중대공포 대대 : 종심 방공


정찰대대 (Aufklärungs-Abt.)

광역 기동 / 종심 작전 지원

후방전선 정보 수집

사령부 기동부대 정찰 정보 수집

Sd.Kfz 계열 정찰차량 및 오토바이 병력 구성

작전지역 전방 감시, 적 배치 탐색, 전차전 선제 위치 확보


완편 기준 인원 및 장비 수량

병력 : 약 140,000명

전차 : 약 1,200대

장갑차 및 병력수송차량 : 약 1,000대

자주포 및 견인포 : 약 700문(네벨베르퍼 포함)

자주대공포 및 견인자주포 : 약 150문



1-1. '엔드지크'의 역사 속 AKO 기갑군의 의의


AKO 기갑군. 아프리카 군단의 기적적인 철수(운디네 작전) 이후 재편된 독일의 신규 기갑군.

중전차대대를 선두에 세운 두 개의 정예 기갑군을 주축으로 한 부대.

이는 단순한 '전술적 숫자 보강'을 넘어, 독자적 작전권을 가진 '전략적 전력'으로 기능한다.

이 기갑집단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1. 전략적 차원의 결정타 수단 등장

당시 독일은 '동시다발적 전선 대응 불가'라는 병목에 직면해 있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갑부대를 쪼개서 운용하고 있었다.

AKO는 이 병목을 하나의 독립 기갑집단군급 해결책으로 보완한다.

이는 전선 주도권을 다시 독일이 장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그 능력은 본편의 '1~2장 : 쿠르스크 전투와 롤란드 작전'에서 증명되었다.


2. 사단 단위 분산 운용이 아닌 ‘기갑 집중’ 복원

현실의 42년~43년 전환기 독일군은 기갑 전력을 전역 곳곳에 사단 단위로 분산 배치했다.

반면, AKO 같은 구성은 사단들을 군단급 이상 단위로 집결시킨, 완편 기갑집단이다.

이는 전쟁 초기의 전격전(Blietzkrieg) 개념, 즉 돌파 → 종심 기동 → 포위 및 섬멸의

작전적 연계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 능력은 본편의 '4장 : 로스토프 전투'에서 증명되었다.


3. 아프리카 전선 경험의 전환

아프리카 군단 출신 사단(15, 21, 60)은 장기 작전과 열악한 보급 상황에서의

복합병종 전투에 숙련된 베테랑 부대다.

이들은 새로운 전장에서 회피 · 기동 · 포위 · 차단 · 기습을 유기적으로 수행 가능히며

특히 사막전 → 동부전선 전환은 고정전선이 아닌 기동전 기반 작전구조 복원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


4. 작전 지속력과 종심타격의 가능성 확보

AKO 기갑집단은 단순 타격대가 아니라 독립된 공병, 정찰, 방공, 중포병, 전투근무지원대를 포함하며

'독자 작전권을 가진 기갑작전 집단'으로써 기능한다.

이는 군단급 기갑군이 스스로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종심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능력은 본편의 '6장 : 제2차 스탈린그라드 전투' 에서 증명되었다.


이로 인해 독일은 ‘후기 기동전 시대의 전략적 시간’을 연장하였으며

쿠르스크 전투 등의 전략적 붕괴점을 지연 또는 차단하였다.

이는 기갑군의 창설이 '작전 수준의 승리'를 넘어서

전역 수준의 판을 다시 짤 수 있는 카드를 독일이 쥐게 된 이유이다.


1-2. 현실 역사 속 독일의 기갑군(Panzerwaffe)의 몰락


현실 역사에서 나치 독일 국방군의 군단 이상급 기갑 공세는

1943년 7월의 쿠르스크 전투 이후 사실상 없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입은 손실과 양면전선(러시아, 이탈리아) 등으로 인한 주도권의 지속적 상실은

독일 국방군을 방어 위주의 전략을 구성토록 강요하였으며

이 흐름 속에서 기갑부대는 점점 더 기동방어, 소규모 반격 또는 돌파구 차단 임무에 집중되었다.


특히 1944년의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독일 국방군의 주목적은 전선 유지와 후퇴 지연이었으며

기갑부대는 더욱 방어적 성격으로만 운용되었다.


이와 함께, 기갑 집중 운용 자체도 구조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쿠르스크 이후에도 기갑군단과 기갑군은 편재상으로는 존재했지만,

점차 사단 단위로 쪼개져 파편적으로 운용되며 독자적인 공세 능력은 약화되었다.

연료 부족, 항공 우세 상실, 보급선 붕괴, 숙련 병력 손실은 대규모 기갑집중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쿠르스크 전투 이후 독일 기갑군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전장을 바꾸는 무적의 전차군단'이 아닌 '패배를 지연시키는 철제 관'의 행렬에 불과했다

나치 독일 멸망의 순간까지 독일 기갑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그것은 단일 교전, 혹은 소규모 전술적 국면에서의 수준이었고

전략적인 국면은커녕 작전적인 국면에서의 전환도 일으킬 수 없었다


2. 독일의 정치 분열


44년 1월 10일.

회색 눈과 회색 안갯속의 베를린, 총통 관저.


히틀러는 거칠게 펜을 내려놓았다.

괴링은 그 소리를 듣고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장식된 군복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공군은 어디에 있었나, 괴링.'

고개를 들지 않고, 히틀러가 말했다.


'총통 각하, 저는 언제나 있었지요.

제 남자들이 하늘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니, 싸우려고 애썼습니다.'

괴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 미소는 총통 관저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적의 폭격기는 뉘른베르크까지 들어왔다.

쾰른은 회색 잿더미가 됐다.

시칠리아에서는 병사들이 3일 동안 보급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군.'


침묵.


'괴링. 자네는 내 친구였다.

제국의 기둥이었고, 전쟁의 시작에선 누구보다 용감했지.'

히틀러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저는 지금도 준비되어 있습—'


'이제는 내려올 때다.'

히틀러가 조용히, 단호하게 말했다.


'…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군총사령관직을 내려놓게.

내가 새로운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각 전역의 항공군은 이제 군사지휘부와 통합될 것이다.'


'하지만 저는… 제국원수입니다. 총통 각하께서 임명하신 후계자이며—'

그의 표정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자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것이다.

제국의 명예를 지키게. 스스로 물러나라.

이건 처벌이 아니라 구조다.

후계자 역에 집중하게.'


괴링은 입을 열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히틀러는 시선을 돌리고 손을 내저었다.


'자네는 아직도 총통의 친구로 남을 수 있다, 괴링.

하지만 더는 이 공군의 지휘자는 아니다.'


조용한 침묵.

괴링은 경례도 하지 않고, 천천히 돌아서며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히틀러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으로 그의 손이 떨렸다.


엔드지크 1943에서의 독일군의 승리의 이면에서는

독일 본토에서의 정치적 구조 개편과 분열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독일 공군(Luftwaffe)의 최고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정치력 상실이었다.

제국원수. 공군총사령관. 아돌프 히틀러가 임명하고 법령으로 선포된 나치 독일의 공식적인 이인자.

그의 몰락은, 너무도 단순하고 피할 수 없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제공권 장악의 실패'

동부에서의 승리와는 무관하게 유럽에서는 서구 연합군의 전략폭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일 공군은 결국 이를 저지하지 못했고, 피해는 누적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시칠리아와 안치오에서의 전투에서도 독일 공군은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동시다발적인 제공권 상실에 대한 보고와 고발이 이어졌으며,

그 보고와 고발은 괴링의 '잃어버린' 하늘 아래에서 이제는 부정당할 수 없었다.

결국 괴링은 후계자 직위를 유지한 채 명예직으로 좌천되었다.


제국 원수가 이렇게 조용히 사라질 것인가?

마지막 선택은, 이제 오직 그 자신만의 몫이었다.


3. 저자의 글


'엔드지크'는 역사에서 잊히거나 묻힌 가능성을 붙잡아 늘려보는 작업입니다.

1943년이라는 해는 전쟁의 중심이었지만,

동시에 패배와 승리가 아직 공존할 수 있던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독일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동시에 어쩌면 다시 일어설 수도 있었던 곳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가 이 이야기를 쓴 이유는 그들이 이겼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긴 뒤에도, 인간은 무너질 수 있다',

'체제가 승리해도, 개인은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괴링은 실각했고, 만슈타인은 해임되었습니다.

전차는 전진했고, 그 뒤 도시들은 잿더미가 되어 흩어졌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전쟁의 서사 속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엔드지크 1943'은 여기서 끝납니다.

여기서 잠시 정리의 시간을 가진 뒤에

'엔드지크 1944'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 글은 저자가 처음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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