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11월 : 제2차 스탈린그라드 전투

승리 없는 영광, 영광 없는 승리

by 전략 문학

(이 글은 '대체역사' 항목에 포함됩니다.)

(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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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3년의 장

제6장. 제2차 스탈린그라드 전투 : 승리 없는 영광, 영광 없는 승리


프롤로그 :

진흙과 피를 넘어,

다시금 어머니 조국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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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11월 15일.

강철을 삼키는 검은 진흙, 서 러시아의 겨울 전장.


라스푸티차의 진흙 바닷속에서도 붉은 군대는 멈추지 않았다.


서부 전선군, 브랸스크 전선군, 제1 벨로루시 전선군.

총 3개 전선군.

100만의 병력. 2,500대의 전차. 15,000문의 야포.


붉은 강철과 인간의 파도,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 비.


수천의 전차가 진흙 위를 짓이기며 나아가고,

야포의 굉음 속에서 보병은 끊임없이 전진하며

독일군이 간신히 틀어막고 있던 중부 돌출부는

그 파도에 갉히듯, 서서히 허물어져갔다.


중부 집단군은 발터 모리츠 모델의 지휘 아래

‘방어의 귀재’란 명성에 기대어

진흙과 구릉지대를 활용한 지연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서부 전선군이 스몰렌스크와 로슬라블을 탈환하며,

중부 축선을 무너뜨렸다.

브랸스크 전선군은 데시나 강을 넘었고,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은 오룔에 진입했다.


독일의 중부는 무너졌고,

스탈린의 시선은 다시 그 도시를 향했다.

그 이름이 전설이 된, 스탈린그라드.


아스트라한을 점령한 독일군이 북상한다는 정보에

소련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스몰렌스크 탈환의 선봉이던 제4근위전차군이

곧바로 스탈린그라드 인근으로 이동 명령을 받았다.

재편성도, 정비도 없었다.


라스푸티차조차도 그들을 막아서지 못했다.


남서전선군의 잔여 병력과 인근 기동예비까지 동원되어,

볼가 전역으로 향했다.


최우선도시, 요새도시, 영웅도시.

그 모든 이름들이 다시금 주어지며,

스탈린그라드는 또 한 번 요새가 되어가고 있었다.


본편 : 나아가는 자, 지키는 자


43년 11월 20일.

겨울보다 차가운 살기 속의 남부집단군 사령부, 자포리제.


“스몰렌스크. 로슬라블. 브랸스크. 오룔.

하나도 못 지켰다. 전부 뚫렸다고 보고받았다.

중부전선—그 자체가 사라졌어. 당신은, 아는가?”

수화기 너머, 히틀러의 목소리가 던져졌다.


“총통 각하, 저는 남부집단군 사령관입니다.

중부는 모델 상급대장의 책임 하에 있었습니다.”

만슈타인은 조용하게 대답했다.


“아, 그런가? 당신 남부집단군이었나?

쿠르스크 작전의 조정권은 누가 요청했었지?

로스토프 반격 안은 누가 제출했었나?

아스트라한 방면 기갑 증파는 누구의 서명 아래 이루어졌지?

당신이 받아간 권한은 이제 와서 남부로 퉁 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신은 끽해야 당신의 전선만 본다.

하지만 나는 대륙을 본다!


잠시 침묵.


“대륙이나 지도 전체를 본다는 분들은,

도시 하나 둘쯤은 잃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습니다.

남부에서의 진격은 중부가 버틴다는 전제 위에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남부는ㅡ계획대로 움직였습니다.”

만슈타인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좋다.

그럼 스탈린그라드에 들어가라.

그 도시를 점령해.

이번에는 깃발이라도 꽂아야 하지 않겠나.”

히틀러는 숨을 들이쉬고, 낮게 말을 이었다.


만슈타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불가능합니다.”


“그래? 병력이 없나?

아니면, 의지가 없는 건가?”


“그 도시는 더 이상 전략적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도시를 포위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기다리는 그들을, 도시 밖으로 끌어낼 것입니다.

나온다면 싸울 거고, 나오지 않는다면 더 좋습니다.”


히틀러는 수화기를 쥔 채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당장 베를린으로 오라.

지금이 어떤 시점인지 모른다면, 내가 직접 설명하지.”


만슈타인의 응답은 짧았다.

“현재 기갑군은 스탈린그라드 남부 수로 차단 작전 중입니다.

작전 종료 후 출발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허가했을 때 가능하다.

내가 오라면, 와야 한다.”


“작전이 먼저입니다, 총통 각하.

군이 이미 출발했습니다.”


다시 침묵.


“... 그래, 그래... 좋다.

하지만 명심하라.

작전이 끝나고 나면—

책임, 당신이 져야 할 것이다.

히틀러는 더는 말하지 않고,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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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11월 25일.

싸라기눈이 날리는 황량한 볼가의 문, 하라발리.


제39기갑군단은 얼마 남지 않은 NKVD 내무군을 밀어내고

도시를 장악했다.

스탈린그라드로 향하던 스텝 출신 소련 청년들,

그들은 아직 총도 받지 못한 채, 열차 째로 포로가 되었다.

그 후, 아흐툽스코예로 북상하던 기갑군단은

소대, 중대단위로 접근하는 소련 기갑부대를 여럿 격파했다.


“예, 보고 드린 그대로입니다.

노획한 문서와 차체 표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우한 적은 제4근위전차군 소속으로 판단됩니다.”

제39기갑군단장 프리츠 후베는 무전기 너머로 보고를 이어갔다.


“제4근위전차군?

그 부대는 중부에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빠르게 남부로 재배치됐다는 건가?

특별한 점은?”

보고를 받은 바이어라인은 되물었다.


"적 전차는 소대, 중대 단위로 분산 접근합니다.

현재까지의 교전은 일방적 우세입니다.

대부분 조우전 단계에서 손쉽게 제압하고 있습니다.

추가로, 하라발리에선 열차에 실린 전차 수십 대를 노획했습니다."


"라스푸티차를 뚫고 이 정도 속도로 내려올 순 없지.

그냥 급히 던져 넣은 모양새야.

집중되지 못한 기갑전력은 시체다.

계획된 대로 아흐툽스코예까지 진출하라."

전방 보고는 간결하게 종료되었다.


비슷한 시간,

말라붙은 수로 사이의 일롭랴, 남서전선군 사령부.


“죽든 살든 막으라면 막아야지.

하지만 전차군은 장난감도, 장작도 아닙니다.

소모 한계점, 정확한 투입 지점, 철수 시기—

그 정도 조정은 가능해야 합니다.”

제4근위전차군 사령관, 드미트리 레류셴코 대장이 말했다.


그는 지쳐 있었다. 그의 부대도 마찬가지였다.

라스푸티차를 뚫고 스몰렌스크까지 진군한 후,

곧바로 남부로 전환 투입.

전차군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했고,

광대한 서 러시아 전장에서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도시는 시간이다. 시간은 병력이고, 병력은 전선 전체다.

그걸 모를 리 없잖나.

병력을 도시에 쑤셔 넣기만 해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남서전선군 사령관, 로디온 말리놉스키 대장이 중얼거렸다.

그의 어조는 반쯤 체념에 가까웠다.


“나는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스타브카의 명령은 이미 하달됐고,

나는 그 이행 여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전 병력은 스탈린그라드 방어에 집중하십시오.

제4근위전차군은 도착 즉시 지연 전에 돌입해야 합니다.”

스타브카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가 냉정히 말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석상 같았고, 차가운 겨울 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사령부를 나온 그는 스타브카로 복귀하기 위해 수송기에 탑승했다.


수송기가 일롭랴를 떠났다.

지평선 위로 싸라기눈이 흩날렸다.


바실레프스키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4근위전차군의 전차들은 아직 선로 위에 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격파될 것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손이 서명하고 통보한 문서가,

얼마나 많은 강철과 피를 불태울지를.


“레류셴코도, 말리놉스키도...

명령의 무게를 나 이상으로 느끼고 있었겠지.

그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지쳤을 뿐이다.”

바실렙스키는 누구에게 들으라고가 아닌,

자신에게 들려주듯 말했다.


43년 11월 30일.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의 스탈린그라드 제1역.


혼란이 가득했다.


기차, 사이렌, 확성기, 외침.

온갖 소음이 역을 뒤덮었다.


“시베리아 제91소총사단!

중앙 우랄 17근위소총사단!

탑승 열차 도착 완료!”


"제91소총사단! 제91소총사단!

어서 하차하라, 집결하라!!"


“시베리아 놈들은 좀 빠져!

근위사단 먼저! 중앙 우랄 17사단 하차 완료하라!”

5분 내로 하차하고, 집결!"


수만 명의 군인들이 서로 뒤섞인 채 부대를 찾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각 부대의 지휘관이 도착 보고 중이었다.


"당신들... 푸하하, 아. 죄송하오.

어디서 왔소?? 시베리아?"

인사참모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왔습니다.

지금 온 건 1,200명, 더 오고 있습니다."

소총은커녕 군복도 입고 있지 않은 공장장이 대답했다.


"아... 그래그래... 대충 2천 명.

좋아. 부대명칭 제35노동자 적위대. 멋있지 않소?

이제 당신들은 14번 방어구역으로 가시오."


"전투 장비는 어디서 받습니까?"


"가서 찾아보시오. 다음."


인사참모는 그에게는 시선도 안 주고 부대 동원명부를 살펴봤다.

다음은... 62, 95, 241사단 잔여병력?

좋아. '제99혼성대'. 이번엔 이거다.

그는 웃었다. 웃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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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12월 5일.

차가운 눈이 휘날리는 아흐툽스코예 외곽.


쓰러진 소련 장교의 시체에서 수거한 문건을

읽던 독일 장교들이 갸우뚱했다.


한 명이 담배를 비벼 끄며 중얼거렸다.

"‘전차군단’이라는 부대에 전차는 없고... 뭘 믿고 달려든 거지?"


"제14전차군단이라고? 방금 처리한 부대는 전차가 없었는데?"


“도대체 이런 놈들은 어디서 끌어오는 거야…?

민병대? 기병? 정비병까지?

총은 없고 깃발만 들고 들어오는 놈들도 있잖아.”


아흐툽스코예 진출 2일 차.

스탈린그라드 방면에서 줄지어 오던 소련 전차들이 자취를 감췄다.

독일군은 북상 경로를 따라 격파된 차량을 하나씩 확인하며,

그들의 전차 손실을 역산해 나갔다.


추산 약 250대.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차가 아니었다.

볼가 강을 따라 이어진 수로 보급망—

중부 러시아의 생명선은, 전차보다 먼저 파괴되었다.


전투는 끝났다. 아니, 더 이상 쏟아질 적이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싸라기눈을 흩뿌렸고,

마지막 열차의 잔해에서는 아직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지막 수로선 파괴 완료. 전차 9대 확인. 적 병력 없음.”

전방 정찰조의 보고가 돌아왔다.


“좋아. 철수 시작.”

지휘차 안에서 후베가 짧게 명령했다.


병력은 두 구역으로 나뉘어 움직였다.

한쪽은 철수 라인을 확보했고,

다른 쪽은 차량, 포, 탄약의 분산 철수.


도로변에 멈춰 선 소련 전차들에는 폭약이 부착됐다.

저 멀리 보이는 스탈린그라드를 뒤로 한 채, 독일군은 철수했다.


이기는 철수였다. 그러나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분석 : 승리 없는 영광, 영광 없는 승리


1. 작전 구상과 초기 배치

소련

스몰렌스크-로슬라블-오룔 축선을 따라 서부 전선군과 제1 벨로루시 전선군이 돌파에 성공하자,

스탈린은 이를 전략적 전환점으로 간주하고 스탈린그라드 재 요새화를 지시했다.

스타브카는 아스트라한 북상 루트를 통해 독일군이 다시금 스탈린그라드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 작전을 구상했다. 주요 의도는 다음과 같다.

제4근위전차군을 중부에서 남부로 신속히 이동시켜 아흐툽스코예 축선 상에서 지연전 시도.

남서전선군의 잔여 병력 및 기동 예비를 스탈린그라드 도심 방어에 집중 배치.

방어의 핵심은 전차 전력의 분산배치와 시가전을 통해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는 라스푸티차의 진흙 지형, 급조된 병력 이동, 장비 보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애초부터 완비된 방어 작전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전차군은 도달 전에 분산되었고, 스탈린그라드에 도착한 병력은

편제조차 갖추지 못한 부대가 대부분이었다.

독일

독일은 쿠르스크 이후 남부 전략 주도권을 회복한 상황에서,

만슈타인의 구상에 따라 남부 전격 작전에 착수했다.

작전적 목표는 도시 점령이 아닌 스탈린그라드 외곽 차단 작전,

즉 볼가 수로망의 파괴와 적 주력의 분산 고착화였다.

작전 핵심은 다음과 같다.

제39기갑군단을 주축으로 하라발리-아흐툽스코예 축선 돌파

스탈린그라드 남부 및 동부에서 접근하는 소련 보급선 및 전차 이동 루트 차단

도시 내부에 적 병력을 몰아넣은 뒤, 포위 대신 보급 봉쇄 및 국지적 소모전 유도

독일은 기갑군단 중심의 속도전을 지향했으며, 가능한 한 전차를 집중 운용해

적의 분산된 기갑을 각개격파 하고자 했다.

이는 독일 기갑운용의 전형적인 사상에 부합하는 전술이었으며,

도시 점령 대신 선택적 격멸전과 기동성 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2. 교전 양상

소련

소련은 전형적인 기계화 지연전의 구도를 구축하려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미완성 전선의 응급 봉합에 가까웠다.

제4근위전차군은 라스푸티차를 거쳐 스몰렌스크-브랸스크 축선에서 바로 남부로 이동했기 때문에,

보급과 정비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열차 단위로 분산 도달하였다.

전차들은 소대, 중대 단위로 투입되었으며, 도로 및 철도망의 부족으로 인해 통합 운용이 불가능했다.

이는 독일 기갑군단의 집중 운용에 완전히 대응하지 못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소련 측은 분산·소모된 병력의 투입, 혼란스러운 명령 체계,

도착 즉시 전투 투입되는 전차군이라는 비효율적 구조 속에서 전면적 격파를 당하였다.

독일

독일군은 짧고 집중적인 기갑 작전을 수행하였다.

제39기갑군단이 하라발리에서 적 열차단위 기갑을 먼저 격파하면서 기세를 장악했고,

이어진 아흐툽스코예 진출까지 일방적인 전술적 우위를 유지했다.

소대·중대 단위로 접근하는 소련 전차들을 유기적으로 격파, 심지어 일부 전차는 노획된 채 파괴당했다.

전선 전반에서 독일군은 전차 약 250대 격파, 수로망 파괴, 병참선 차단 등의 성과를 확보했다.

특히 독일군은 소련 병력이 집결하기 전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였으며,

병력의 "소진"이 아닌 "각개격파"를 통해 작전적 성과를 끌어냈다.


전체 전투는 결정적 교전 없이 이루어진 전술적 격파의 연속이었다.

소련은 준비되지 않은 채 밀려들었고, 독일은 그 틈을 정확히 짚어냈다.


3. BDA(Battle Damage Assessment)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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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군은 제4근위전차군과 남서전선군의 예비 병력 상당수를 스탈린그라드 방면에 투입했지만,

집결 이전 격파, 지휘두절, 보급단절이라는 3중 붕괴 구조 속에서 사실상 전선 단위로 해체되었다.

독일군은 단기간 내 목표 달성 후 철수를 수행함으로써, 병력 보존 + 전략 효과 확보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두었음.


4. 작전적 효과

볼가 수로망의 물리적 마비

독일군의 목표는 스탈린그라드의 재점령이 아니라, 볼가 강을 따라 이어지는 중부 러시아 수로망의 마비였다.

아흐툽스코예 및 하라발리 구간을 중심으로 운하, 선로, 교량 및 물자 집결지 파괴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남 러시아의 공급망 연결을 장기적으로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전 종료 시점까지 소련군은 이 수로선에 대한 복구나 대체 수단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이후 남부 전략 예비의 기동이 현저히 지연되었다.

제4근위전차군의 소모 및 전력 상실

중부전선 돌파 후 긴급 투입된 제4근위전차군은 라스푸티차와 장거리 기동에 따른 소모,

집결 실패, 산개 투입으로 기계화 부대로서의 조직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사실상 해당 전차군은 스탈린그라드 도착 이전에 대부분 분산 격파되어,

기동 예비로서의 능력에 회복 불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소련군 지휘체계의 붕괴 및 동원 실패

전투는 단순한 전선 충돌이 아니라 지휘체계 파괴와 동원 해체를 동반한 구조적 붕괴였다.

남서전선군 예비 병력 등은 사단 단위 집결도 없이 전투에 투입되었고,

다수는 장비 없이 도시 외곽이나 수송 중 상황에서 격멸되었다.

이는 스타브카 명령 - 전선군 집행 - 사단 단위 편성이라는 기본 구조 자체가

남부전선에서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독일군의 선택적 작전 방식 입증

독일군은 아흐툽스코예 작전에서 도시 점령이나 포위전이 아닌,

목표 중심의 전략 타격–이탈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

이는 기존의 총력전 소모 방식이 아닌, ‘목표를 달성하였는가’라는 군사적 기준만을 근거로

철수를 단행하는 방식으로, 기계화 부대 보존 + 전략 효과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 성공하였다.


에필로그 : 빛과 어둠


43년 12월 15일,

매서운 강설 속의 붉은 광장, 모스크바.


소련 국가가 웅장하게 연주되었다.

보드카와 빵이 돌려지고, 청년들은 웃으며 깃발을 흔들었다.

무대 위, 훈장을 가슴에 단 병사가 한 손엔 부대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무대에 올라온 어린 소녀에게 건넸다.

소녀는 깃발을 꼭 끌어안았다.


라디오에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영웅도시 스탈린그라드는 또다시 방어에 성공했다!

우리의 결의, 우리의 단결, 우리의 희생이…

그 무엇도 넘지 못하는 장벽이 되었노라!”


말리놉스키도, 레류셴코도 그 연단에 서 있었다.

그들의 눈 밑은 퀭했고, 군복은 오래된 진흙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웃어야 했다.


스타브카의 보고서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볼가 남부 방어 성공.

적의 주요 전차 기동은 격파됨.

파시스트는 스탈린그라드에 진입조차 못함.

스탈린그라드는 지켜짐.’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지켜낸 것이 도시였는지, 혹은 허상이었는지.

돌아오지 않은 전차,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

그들만이 그 진실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다.


43년 12월 15일.

무거운 안개와 회색빛의 차가운 눈발 속의 장교 숙소, 베를린 근교.


방은 조용했다.

철모도, 작전 지도도, 참모들도 없었다.

단지, 한 장의 서류만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 상급대장,

해임 조치.

현재 직위 : 남부집단군 총사령관.

이후 직위 : 예비역.

해임 사유 : 전략 판단 미흡 및 최고지도자에 대한 협조 부족.

해임 일시 : 1943년 12월 15일

후임자 : 요하네스 프리스너 상급대장.

서명자 : 아돌프 히틀러.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말없이 외투를 챙겨 들고, 천천히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며 만슈타인은 생각했다.


‘곧 크리스마스군...

케이크라도 하나 살까.

아직 그런 사치스러운 걸 파는 가게가 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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