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9월 : 로스토프 전투

Keil und Kessel(함정과 쐐기)

by 전략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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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시는 건 자유지만, 출처를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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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3년의 장

제4장. 로스토프 전투 : Keil und Kessel(함정과 쐐기)


프롤로그 : 당은 승리를 원한다.


43년 9월 1일, 모스크바 스타프카 회의실

스타프카는 아직도 쿠르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쿠르스크 '작전 종료' 이후 한 달이 넘었지만 지도는 바뀌지 않았다.

호출 명령을 받고 모인 장군들은 지도를 외면한 채 수첩이나 서류를 보거나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얼마 뒤, 정치국의 대표로 니콜라이 불가닌이 들어왔다.

그는 회의실 문을 열고 잠시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벽면에 걸린 큰 지도에 잠시 머물렀다.


“저건... 치우시오. 때 버리시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시선을 돌려 자신을 수행하는 장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지도는 제거되었다.


“동무들, 언제까지 그렇게 침울해 있을 거요.”

불가닌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고, 병력도 있고,

무엇보다… 전선이 있지 않습니까.”


그는 회의 테이블 위에 서류 하나를 꺼내 올렸다.

표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43년 9월 10일. 로스토프 공세 작전계획.

누구도 소리 내 읽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날짜를 봤다.


불가닌은 일부러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쪽을 응시한 채 말을 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들을 일소했지만,

로스토프는 아직 파시스트 압제자의 손아귀에 있소.

동무들도 알다시피, 로스토프는 카프카스, 스탈린그라드의 입구이지요.

우리는 로스토프를 탈환해야 합니다.

나치 놈들이 지쳐 쓰러진 지금이 그때입니다.”


“당은 승리를 원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연필 소리도, 서류 넘기는 소리도 멈췄다.

그날 이후, 쿠르스크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지도가 덧씌워지고, 새로운 작전이 준비되었다.


소련군의 9월 공세는 단순한 측면타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리코프 조공 – 로스토프 주공’으로 설계된,

정치적 설득력과 상징성을 겸비한 ‘양축선 공세’였다.


그들은 이 구상을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승리’로 정당화했다.


문제는—

그들이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스탈린그라드의 포위망을 뚫은 자들이, 아직 남부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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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그들의 뒤를 추격하라


43년 9월 3일, 자포리제. 남부집단군 사령부 작전실.

“며칠 사이 러시아 남부의 소련군이 급격히 움직이고 있소.”

남부집단군 사령관 에리히 만슈타인이 지도를 가리켰다.


“아프베어 보고, 정찰기 기록, 감청 로그…

모두가 같은 결론을 가리키고 있소.”

그는 손에 쥔 작전 브리핑 자료를 툭 치며 말했다.

“소련군은 하리코프와 로스토프, 양방향 공세를 준비 중이라고.”


“하리코프와 로스토프가 그들 손에 들어간다면,

자포리제는 물론 남부집단군 전체가 포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남부집단군 참모장 테오도어 부세 중장이 말했다.


“그들은 기동예비를 쿠르스크에서 모두 소진한 것 아니었습니까?

저희가 족히 1천 대는 되는 전차를 파괴했습니다만.”

AKO 기갑집단 사령관 프리츠 바이어라인이 물었다.


“아니오. 그 정도로 멈출 자들이 아니오.

로스토프 방면에만 해도 근위전차군이 최소 한 개,

기계화 군까지 합하면 둘은 됩니다.”


“잠깐.”

만슈타인이 부세의 말을 끊었다.

“하리코프 방면은?”


“그쪽 정보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원래라면 1, 5근위전차군이지만—

아시다시피 쿠르스크에서 전멸했습니다.”


“하리코프에 투입될 기동부대를 재건했을 가능성은?”

만슈타인이 물었다.


“단언컨대 없습니다.”

부세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피해를 복구하려면 단기 생산만으로는 어림도 없고,

전선 각지의 기계화부대나 전차군단을 긁어모아야 합니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립니다.”


만슈타인은 침묵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양축선 공세라… 스탈린그라드 때와 같은 포위망인가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젓고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전형적인 주공과 조공. 이번엔 구조가 단순하군.”


“그렇다면 조공은 견제로 틀어막고,

주공을 파괴해야겠군요.

… 일이 단순해졌습니다.”

바이어라인이 대답했다.


“로스토프, 타간로크, 미우스 강… 무대는 충분합니다.”

부세가 지도를 손끝으로 짚으며 말했다.


“전리품을 미끼로 던지고,

약점을 일부러 노출한 뒤 그들을 가능한 깊이 끌어들인다.”

그는 이미 전장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듯 말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소련군은 전선이 예정보다 조금만 길어져도

지휘계통이 마비되곤 했지.

우린 로스토프와 타간로크를 열어주고,

미우스 강을 따라 방어선을 형성한다.”


“… 만약 그들이 로스토프나 타간로크에서 멈춘다면?”

부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수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로스토프는 상징성이 큽니다.

총통께서 직접 방문하신 적도 있었고요.”


“고작 도시하나요.”

만슈타인은 단호히 말했다.

“도시 하나와 남부전선 전체의 결정적 승리를 저울질한다면—

이건 감당 가능한 도박이오.”


만슈타인은 다시 지도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모든 것을 지키려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하오.”

그 말은 작전회의의 끝이자, 승부의 시작이었다.


43년 9월 10일, 로스토프.

제2근위전차군은 잔뜩 긴장한 채 시가지로 진입했다.

외곽 방어선은 없었고,

격렬할 것으로 예상되던 시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주민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며칠 전, 독일군이 허겁지겁 도망쳤습니다. 방어도 없이요.”


43년 9월 11일, 타간로크.

제23전차군단은 거리낌 없이 도심을 통과했다.

곳곳에 철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어느 곳에도 저항의 조짐은 없었다.

지휘관들은 무전을 주고받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타간로크 확보 완료. 피해 없음.”

이제, 그들 앞에는 미우스 강이 있었다.


43년 9월 12일, 스타브카 회의실.

“보시오, 당의 영도와 붉은 군대의 전진이 있으면—

성공은 지당한 것이오!”

불가닌의 웃음이 회의장을 메웠다.

“웃으시오! 어서들 웃으시오!

전선이 열렸소!

이제 하리코프도, 크림도, 우크라이나도—!”

그는 테이블 위의 보고서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 순간, 지휘관 몇몇의 눈길이 슬쩍 맞닿았다.

웃고 있었지만, 모두가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모든 게 너무 빨랐다. 너무 조용했다.


“독일군은 왜 물러서는 겁니까…?”

참모 한 명이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로스토프, 타간로크 모두 거저 내줬습니다.

단순한 철수라고 보기엔… 너무 체계적입니다.”


그러자 불가닌이 호탕하게 웃었다.

“동무, 무슨 음모론이오?

그놈들은 쿠르스크에서 다 소진됐소!

지휘체계도 무너졌고, 전차도 고철 더미가 됐고!”


그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탁탁 쳤다.

“전선을 밀고 있는 건 우리요! 이건 해방이오!”


몇몇 장군들이 잠시 눈을 마주쳤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어딘가 모르게 쿠르스크 이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이전을.


“크림과 우크라이나는 누가 해방시켜야 하겠소?”

불가닌은 물어본다기보다, 선언하듯 말했다.

“제2근위전차군이 가장 앞서 있지 않습니까?

그래, 바로 그들이 적당하겠지요.

동무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모진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명령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43년 9월 13일, 미우스 강 동안. 진흙과 흙먼지로 가득한 도하 지점.

제2근위전차군의 두 번째 도하 시도는 또다시 좌절됐다.

도하장비는 부족했고, 그것을 운용할 공병은 없었다.

남전선군 전체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전차는 전차끼리, 보병은 보병끼리만 움직였다.


포병과 공병, 전차와 보병이 서로 얽혀 강가에 집결했지만,

그들을 하나로 묶고, 이끌어줄 ‘전쟁의 손’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휘관의 재촉 아래, 예하부대의 지휘관들은 아군끼리 싸우고 있었다.


“강을 넘으라고 만든 장비를 잔뜩 갖다 놓고는, 뭐? 못하겠다고?”

근위전차군의 장교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태만은 처벌이오! 전시의 태만은— 군법회의감이고!”


공병장교는 참호 밖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고함쳤다.

“반대편에 파시스트 놈들이 버티고 있는데, 무슨 도하요!”

그는 들고 있던 도하지도를 땅에 내팽개쳤다.

“뭐든 하시오! 저 자식들을 치우라고요!”


포탄 한 발이 근처 땅을 후려치고, 말이 끊겼다.

연기와 비명이, 다시 침묵을 삼켰다.


도하 준비가 끝나갈 무렵,

그곳은 독일군의 집중 포격구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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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9월 13일, 술탄-살리.

AKO 기갑집단이 마침내 술탄-살리에 도착했다.

전차엔 모래와 먼지가 검게 들러붙었지만,

이동 중 조율된 명령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지금 위치에서 야전 정비를 실시한다.

새벽 4시, 전차사단은 기갑척탄병사단과 함께 기동대형으로 전개하라.

타나이스 진입 직전, 공격대형으로 전환할 것.

이후 타간로크까지 진격하며 소련군을 미우스 강으로 밀어붙이며 포위한다.

차량화보병연대는 고속으로 남진, 찰티리와 타나이스를 점령하라.

중전차대대는 전차사단과 동행, 나머지는 예비대로 운용한다.”

바이어라인은 단호하게 지시했다.


그때 참모장 발터 네링이 지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타나이스 동측에 고지대가 있습니다.

고대 유적지를 따라 솟아있는 지형입니다.

중구축전차를 그쪽에 배치하면 사선 확보가 용이하겠군요.”

그는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로마인과 함께 싸우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장군.”


“로마인… 이탈리아인들과 함께 싸운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소.”

바이어라인은 잠시 눈썹을 찌푸리다,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좋소. 중구축전차 대대를 그쪽으로 보냅시다.”


그의 말투엔 여운이 남았지만, 판단은 빠르고 단호했다.

네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전투 준비가 시작되었다.


43년 9월 14일,

모두의 시선이 미우스 강을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소련군만이 그랬다.


중전차대대를 앞세운 독일의 기갑사단은 술탄-살리를 출발하고

한 시간째에 찰티리, 두 시간째에 타나이스에 도달했다.
타나이스 북쪽 도로에서 대기하던 소련군 예비인 제23기갑군단은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미우스 강 도하 이후 투입을 기다리던 그들이 기습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독일군이 들이닥쳤다.

독일군은 그들을 휩쓸어버린 후 타간로크로 이동하였다.


노보샤흐틴스크, 타간로크까지 약 100km, 남 전선군 사령부.

참모가 무전기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23전차군단... 응답하지 않습니다. 지휘소가 파괴된 것 같습니다.”

방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남 전선군 사령관 표도르 톨부힌 대장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 제23기갑군단은 움직였나? 마지막 보고는?”


참모가 고개를 저었다.

“독일군과 교전 개시. 이후 지시 대기 중입니다. 아직 명령을 받지 못했...”


톨부힌이 고개를 들었다.

“강 건너까지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23기갑군단과 즉시 통신을 회복하라. 타간로크로 이동 지시.”

그는 마지막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지 않고, 그냥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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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이스의 소식이 타간로크로 도착할 때 즈음 독일군도 타간로크에 도착했다.

도하 준비를 마치고 강안에 밀집한 부대는 기계화 공격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미우스 강 둑 아래,

도하용 뗏목과 보트들이 물가에 늘어선 그 틈에 소련군 보병들이 엎드려 있었다.

아직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장교들은 어서 움직이라며 짜증 섞인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북쪽에서 굉음이 울렸다.

강둑 위에 쳐진 위장막 너머로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았다.

무전병이 교신을 시도했지만, 잡음만 들렸다.

몇 분 뒤, 둑 건너편 도로에서 전차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강둑을 향해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하는 시작되지 않았다. 대신, 도하 준비 중이던 병력은 그 자리에서 전멸했다.


남측은 아조프 해, 서측은 미우스 강, 동측은 독일 기계화 부대.

포위망이 완성되기도 전에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사단들은 배치된 자리에서 그대로 증발했다.

조직적인 반격도, 통신도 없었다.

남 전선군은, 반나절 만에 존재를 잃었다.


다시 남 전선군 사령부.

몇 차례의 절망적인 통신과 명령이 내려졌다.

재조직. 반격. 철수. 탈출.

그러나 전선군 사령부의 의지는, 더 이상 ‘부대’라는 실체를 움직일 수 없었다.


“... 이제 로스토프도 의미가 없군.”

톨부힌은 지도를 접었다.

“사령부는 철수 준비. 남은 기밀 서류는 파기하시오.”


참모가 물었다. “그럼 다음 위치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없습니다. 남 전선군은, 오늘부로 없습니다.”


43년 9월 15일 밤, 모스크바 스타브카 회의실

“말이 되는가! 하루 만에 전선군이 사라졌다고?!”

불가닌이 책상을 내리치며 외쳤다.


“그게... 무전이 모두 두절되었고,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상황이 불명확합니다만...

현재 상황을 종합해 보자면...”

스타브카 참모가 쩔쩔매며 대답했다.


“아니, 로스토프로 철수했겠지!

미우스 강에서 쩔쩔매다가 독일군이 나타났다는 보고에 겁을 먹고

톨부힌이 독단적으로 철수했을 가능성은?”

불가닌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확인된 바로는 제23기갑군단이 첫 교전에서 소멸했습니다.

… 이건 작전 실패가 아니라, 기습입니다. 기습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지만요.”

소련군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가 나섰다.


“하리코프 전선도 위험합니다.

남부에서 공세를 이어가는 건...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조공은 이제 주공이 되었고,

주공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 전선을, 다시 짜야합니다.”

바실렙스키의 말이 단두대처럼 낙하했다.

불가닌조차도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래... 보고, 보고를... 하지만 어떻게?”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무 말 없이 회의실을 나갔다.


정적만 남았다.

회의 종료도, 결정도 없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하나둘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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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 전쟁은 정치의 연속된 행위


1. 작전 구상과 배치

소련군

소련군의 ‘하리코프 조공 – 로스토프 주공’은 전략 구상 자체는 전형적인 양면 작전이었으나,

현실에서는 주공과 조공의 전력 차가 크지 않았고, 각각의 병참, 공병, 포병 지원이 분산되었다.

특히 남 전선군은 도하지점 확보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전차군이 선도하도록 밀어붙였다.

독일군

만슈타인의 ‘전리품 유인론’은 과거 스탈린그라드 이후 제3차 하리코프 공방전의 반복이었다.

독일군은 빈 도시와 열려있는 전선을 제시해, 소련군을 ‘의심 없이 전진하게’ 만들었고,

AKO 기갑집단은 고속으로 우회하여 예비대를 먼저 분쇄하는 데 집중했다.


2. 교전 양상

소련군의 공세는 9월 10일~11일 로스토프와 타간로크 확보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저항이 거의 없었고, 도시 확보 이후 미우스 강까지 신속히 전진했다.

그러나 도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대 간 통합 지휘 미비, 장비 부족,

포병-공병-보병 간의 조율 실패로 심각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

도하지점에 병력이 밀집되던 9월 13일, 독일군은 타나이스-찰티리 회랑을 따라

기갑사단을 고속 투입하여, 예비대로 대기하던 제23기갑군단을 먼저 파괴하였다.

이후 도하 대기 병력을 포격으로 분산 및 와해시키며,

실질적으로 전차와 보병이 따로 전멸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지휘소 상실 및 통신 두절로 인해 남 전선군은 더 이상 전선 단위의 명령 체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는 개별 사단 수준이 아니라, 전선군이라는 군 단위의 파괴를 의미했다.


3. BDA(Battle Damage Assessment)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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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투는 단순한 병력 손실을 넘어, 지휘체계의 와해와 도하집결 부대의 전멸,

그리고 예비전력의 소실까지 겹친, 전략사에서도 손꼽힐 ‘전선 단위 증발’ 사례다.

1941년의 대전과에 필적하며, 그 심리적 충격과 회복 불능의 타격에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4. 작전적 효과

전쟁은 정치의 연속된 행위라는 명제는, 이 전투에서 냉혹한 현실로 되돌아왔다.

스타브카가 로스토프 공세를 결정한 것은 단순한 군사 판단이 아니었다.

불가닌은 지도 위에 '승리의 상징'을 원했고, 당은 스탈린그라드의 영광을 반복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하리코프 조공 – 로스토프 주공’이라는 구상이었고,

그 정치적 설득력은 군사적 타당성을 앞질렀다.

그러나 군은 그 열망을 뒷받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병참은 분산되었고, 도하지점은 확보되지 않았으며, 예비전력은 제때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은 정치의 도구일 수 있지만, 정치는 그 손을 너무 멀리 뻗었다.

로스토프 전투는 단순한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전선 단위의 증발’이라는

전략사적으로도 드문 전과를 달성한 작전이었다.

독일군은 기계화 전력과 지형, 타이밍을 정밀하게 활용해 전투가 아닌 ‘작전 그 자체’를 붕괴시켰다.

이 전투의 효과는 전술적, 작전적, 전략적 층위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전술적 효과

제2근위전차군 및 제23기갑군단 궤멸 : 공세 선봉 붕괴

미우스 강 도하지점에서 포병·공병·기계화 병력 분산 격파

도하장비, 보급수단, 전차 및 보병 간 연계 붕괴 : 개별 병력의 고립과 증발

작전적 효과

남 전선군 해체 : 지휘부를 제외한 전투편제가 소멸

기계화 공세능력 상실 : 미우스 강-우크라이나 남부 축선 소련군의 주도권 완전 상실

하리코프-로스토프 양축 공세 붕괴 : 스타프카 작전구상 전면 재작성

전략적 효과

불가닌의 상징적 작전 실패 : 정치적 목적이 전장의 현실 앞에 무너짐

스타브카 내부 분열 : 톨부힌 책임론, 지휘 방기 논쟁 표면화

‘공세의 피로’ 가시화 : 병참 한계와 기동전 대응력 미비 노출

지휘·조율 능력의 구조적 한계 노출 : 1943년 가을 공세 전체에 제동

서방 측 간접적 영향 : 독일군의 전략적 여유 확보 → 이탈리아 전선 지원 가능


에필로그 : 정확한 값


“결과는?”

만슈타인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참모장 부세는 간결하게 보고했다.

“미우스강 동안 완전 확보. 전차 약 1,000대 파괴. 생존자, 거의 없습니다.”


“남 전선군은?”

“사라졌습니다.”

“하리코프는.”

“공세가 멈췄습니다.”

만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


“정치는 종종 무모한 걸 요구하지.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정확한 값을 받아간다.”


말없이 수첩을 펼쳤다.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며, 그는 단 한 줄을 적었다.

‘남 전선군 –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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