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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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지크] 시리즈
제1부 철혈의 지배
1944년의 장
제2장. 페르시아 전투 : 소탐대실
44년 1월 20일.
냉기를 머금은 습기 속의 런던, 대영제국 전시내각 지하 벙커(Churchill War Rooms)
“총리… 오늘은 날씨가 지독하군요. 런던 위도와 벙커 속의 냉기가 서로 경쟁하는 듯합니다.”
대영제국군 참모총장 ,엘런 브룩 원수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대영제국 총리 겸 국방장관 처칠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에는 불 붙지 않은 시가가, 왼손에는 종잇조각이 느슨하게 쥐어져 있었다.
시선은 책상 위 어딘가, 보이지 않는 먼 점을 더듬고 있었다.
“날씨는 언제나 지독했네, 브룩. 요즘은…”
그가 잠시 멈췄다.
“…더 그렇지.”
목소리는 낮았고, 바닥으로 깊게 떨어졌다. 방 안의 공기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안치오에서 잃은 것은 사단 하나뿐만이 아닙니다. 명예와 동맹에 대한 믿음도 함께였죠.”
브룩은 말없이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처칠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 것은 상단의 소련 국기와 붉은 군대 심볼이었다.
그 아래, 러시아어와 영어로 병기된 제목이 박혀 있었다.
‘페르시아 지역에서의 연합 공세 작전 건의’
“이건 런던 주재 소련 무관이 보내온 제안입니다.
타브리즈 회랑을 타고… 카프카스로 가자는군요.”
“이란과 중동은 대영제국의 영역이네, 브룩. 그런데 그들이 흙발로 밀려 들어왔군.”
“그래서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겁니다.
병력은 중동군과 카프카스에서 철수한 소련 잔여 전력으로 충분합니다.
증원은 필요 없습니다.”
“카프카스에서 볼썽사납게 도망친 볼셰비키를 앞장세운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아니, 성공 여부와 상관없네.
동쪽 놈들을 이 땅에서 치울 수 있을까?”
“떠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목표에 그들을 이용하면 됩니다.”
“그렇군. 독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단 낫지. 하지만…”
“총리. 저희는 안치오에서—”
처칠의 격노가 회의실을 폭풍처럼 강타했다.
“그 안치오라는 말 좀 그만 하게!”
침묵.
“그래서… 저희는 협력을 다각화해야 합니다.”
브룩은 단어를 신중히 골랐다.
“…알겠네. 해 보게. 하지만 손해는 보지 않도록 하게.
볼셰비키를 총알받이로 세우고, 우리는 구경만 해도 좋네.
가능하면… 상징성 있는 승리나 점령을 챙기게.
그리고 하나 더— 자네가 말한 대로 증원은 없네. 우리는 더 큰 일을 준비하고 있잖나.”
44년 2월 1일.
햇빛에 바랜 모래빛과 건조한 바람 속의 카이로, 대영제국군 중동 사령부.
Operation Caspian Relief.
그럴싸한 제목의 표지 아래에는
‘중동군 병력과 소련 잔여 병력의 합동 타브리즈 공세’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대영제국군 중동 사령관 버나드 패짓 대장은 서류를 한 장, 두 장 적당히 넘겨봤다.
“자네들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서류를 전달받은 영국군 제8군 사령관 올리버 리스 중장은 문서를 읽으며 속으로 숫자를 셋다.
패퇴한 동맹국 군대.
언어, 문화 불일치.
증원 없음.
피해 최소화.
결정적 순간에만 개입.
윗선의 주문이 행간마다 묻어 있었다.
입술이 한 번 얇게 굳었다가, 숨을 내쉴 때 짧게 튀어나왔다.
책상 위 모래먼지가 미세하게 흩날렸다.
“……이런 미친 소리를.”
“응? 뭐라고 했나?”
“아, 아닙니다. 다만… 병력 구성과 보급로에서 무리한 요소가 많이 보입니다.”
“앨런 경은 이걸 반드시 해달라고 하더군. 당연히 해줘야 하지 않겠나?
요근래 작전 구역에 볼셰비키가 들어오는 바람에 잠자리가 뒤숭숭하더니. 잘되었지 않은가.
늦어도 3월 경에는 실시할 수 있도록 하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 속에서, 올리버 중장은 우선순위부터 정하려고 생각했다.
‘일단… 러시아어 할 줄 아는 녀석들부터 찾아봐야겠지.’
44년 3월 1일.
문명의 충돌 속의 타브리즈, TF 코카서스 사령부.
런던에서 오간 이야기처럼 소련군을 앞세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혼성 편성 같은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부대 명칭을 정하는 것 조차도 어려웠다.
처음 영국이 제안한 명칭은 Caucasus Expeditionary Force.
원정군 명명 전통을 살린 이 명칭을 소련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련이 이후 제기한 명칭은 Кавказский фронт.(Caucasus Front)
영국은 당연히 무시했다.
결국 서로가 다른 명칭으로 이 연합군을 명명하기로 했다.
영국 측은 PACFORCE, Persia and Caucasus Force.
소련 측은 КСГ, Кавказская союзная группа.(Caucasus Allied Group)
연합군이라기보다는 영국군과 소련군, 각자의 축선으로 전진하는 기묘한 모양새가 되었다.
44년 3월 5일.
눈 녹은 진흙과 차가운 바람 속 트빌리시, 카프카스 집단군 사령부.
“요즘 전차들은 참 믿음직스럽게도 생겼군. 티거라 했나? 6호 전차…”
진흙과 녹은 눈물이 바퀴를 타고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내가 프랑스에서 굴린 건 1호부터 4호까지였지.”
카프카스 집단군 사령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상급대장은
트빌리시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 41년 프랑스 전역의 금속 숨결을 떠올리듯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서의 상급대장님의 지휘는 저희 세대에선 이미 전설입니다.”
AKO 기갑집단 예하 제3기갑군단장 하소 폰 만토이펠 중장이 고개를 숙였다.
“정말 잘 와주었네. 시기적절하게 말이야.
자네도 들었겠지만, 놀랍게도 영국이 이쪽으로 온다네. 붉은 군대 패잔병과 함께.”
“참으로 이례적인 조합입니다. 영국과 소련이라니요… 그만큼 절박한 걸까요?”
“절박한 자들이 저렇게 움직이지는 않지. 절박하다기보다는… 두서가 없다네.
각설하고. 자네의 기갑군단의 목표는 여기부터 타브리즈까지 늘어선 연합군 행렬을 공격하는걸세.
최대한 빠르고 깊게. 41년 프랑스. 베웠지?”
“물론입니다, 상급대장님. 그 속도를 이번에도 재현하겠습니다.
더 명령하실 게 있습니까?”
“기갑부대의 지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임무형 지휘와 현장에서의 판단이지.
그대에게 전체적인 부분을 위임하겠네. 나는 저지선의 선정이나 보급체계 등 조직관리에 집중할테니.”
많은 말이 필요없었다.
44년 3월 10일.
예레반 외곽, 카프카스 집단군 제1참호선.
연합군은 타브리즈에서 예레반까지의 먼 거리를 전투 없이 주파했지만
행렬의 틈은 벌어지고 보급열차는 후방에서 뒤처졌다.
그들이 예레반 외곽에 도달했을 때,
카프카스 집단군은 이미 고지와 요충지에서 철저히 준비한 채 방어태세에 돌입한 상태였다.
“놈들의 방어선에 집중 타격을 가한 뒤, 종심 깊숙이 파고들어야 하오.
나치 놈들의 기동방어를 알고는 있소?
병력과 장비를 한 점에 점처럼 모아서 단숨에 뚫고 나가 종심을 관통하는 것.
이게 놈들을 깨는 유일한 길이오.”
카프카스 전선군 사령관 티율레네프 대장은 손가락으로 지도 위 한 점을 쾅쾅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투는 숨을 몰아쉬듯 빠르고, 표정은 언제라도 출발할 듯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
“아니, 아니오. 그랬다간 엄청난 피해만 입을 게 분명하오.
방어진지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단계적인 점령과, 지속적인 공세를 위한 보급로 확보지.
이 방식이 맞소.”
코카서스 원정전투단 사령관 올리버 리스 중장은 말끝을 천천히 눌러 담으며 반박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고, 손끝은 지도 위 보급선과 도로망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교리도, 편성도, 편제도, 언어도, 문화도 달랐다.
잠시 동안 무의미한 대화가 오고갔다.
결국 견디다 못한 티율레네프가 외쳤다.
“겁쟁이, 겁쟁이같으니라고! 우리가 하는걸 보시오! 그리고 보고 베우란말이오!”
그가 소리치고 떠난 뒤, 리스가 말했다.
“아니, 통역 필요 없어. 뭐라는지 알 것 같으니까. 지원 준비해.”
카프카스 집단군 제1참호선 5번 구역 전방 3km 지점.
“1분 뒤 저 위치로 카튜샤 사격하라! 5분 간 발사하라!”
소련 포병 장교가 외쳤다. 인근에는 독일군 박격포탄이 낙하하고 있었다.
“지금 장전된 탄이 전부입니다, 30초면 다 쏩니다, 장교님.”
“그럼 30초 간 발사해!”
영국군 연락장교가 휘청거리며 뛰어왔다.
그는 어수룩한 러시아어로 외쳤다.
“당신… 포병… 이곳은… 최전방! 뒤로!”
“Сука!”
소련 포병 장교가 영국 연락장교에게 욕설을 하며 밀쳤다.
그와 동시에.
쾅!
3번째 박격포 탄이 정확하게 낙하했고,
불꽃과 폭풍, 금속 파편이 흩날리며 그들을 휩쓸어버렸다.
적 제1 참호선으로부터 500m 거리, КСГ 공격 대기지점.
정치장교가 빗발치는 기관총탄에 아랑곳 하지않고 공격 대기 참호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진하라, 동지들! 우ㄹ-!”
흉부에 3발의 기관총탄을 맞은 그가 쓰러졌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소련군 병사들이 참호에서 벌떼처럼 일어나며 외쳤다.
“Ура! Ура! Ура-а-а!!”
얼마 뒤, 기관총의 폭풍이 인간의 파도를 잠재웠다.
“저게 다 뭐하는 짓인가? 이게 정녕 인간이 할 짓인가?”
영국군 연락장교가 텅 빈 공격 대기 참호에서 앞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1 참호선으로부터 700m 거리, PACFORCE 공격 대기지점.
소련군이 먼지와 피를 뒤집어쓴 채 돌격하던 그 시각, 영국군은 아직 무전기를 붙잡고 있었다.
“5중대, 진출 지연 사유 보고하라. …포격 2분 후 전진, 반복한다. 2분 후 전진.”
장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참호 위로 날아드는 포탄이 툭툭 땅을 찍었다.
머리 위로 영국군 박격포 소대가 차례대로 사격을 가했다.
포탄은 정확히 사전 계산된 표적 좌표로 날아갔다.
“전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사 한 명이 수류탄을 손바닥 위에 굴리며 말했다.
“아마 나흐치반 즈음에 있지 않을까? 줄파는 지났다고 들었어.”
무전기를 들고 뭔가 말하던 소대장이 적당히 말했다.
“소대장님, 저는 시칠리아에서도 나치와 싸웠는데 말입니다.
그때는 전차가 없으면 공격하지 않았어요. 저기 저 소련놈들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그건… 그렇군. 죽을때 죽더라도 저렇게 죽고싶진 않으니까.”
줄파, 연합군 공동사령부.
“소련측이 제공한 정보는 완전히 틀렸습니다. 적들은 선제적으로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현 수준의 병력과 장비로는 돌파가 제한됩니다.”
리스 중장이 드디어 카이로와 연결된 전화기에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 방면의 독일군은 급편된 집단군, 아니, 실제 규모로는 2선 군단급 부대라고 했잖은가?
어째서 돌파가 힘들지?”
카이로의 패짓 대장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
“말씀드렸었잖습니까.
저희 중동 방면군은 43년에는 실전도 없었고, 보급에서도 후순위라 장비상태도 좋지않다고.
현 상황에서는 돌파가 제한됩니다.
전술상의 급격한 개선이나 증원 없이는 피해만 계속 쌓일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피해가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 군이 전투대비태세가 미흡한건 자네의 책임도 크겠군…
각설하고, MI6의 첩보에 따르면 독일군 기갑부대 일부가 증원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네.
볼셰비키 친구들에게 전선을 맡기고 방어태세로 전환하게.
이 방면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네, 리스. 주력은 유럽이지않나.”
“사령관님, 말처럼 쉽지많은 않습니다…”
“나도 알고 있네.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있잖은가?
철수 준비가 완료되면 보고하게.”
전화가 끊히기 전, 카이로의 사령부 근처 모스크에서 외치는 기도문이 들렸다.
리스는 신에게라도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마저도, 카이로에 기거하는 듯 했다.
카프카스 집단군 제1참호선 5번 구역.
집요한 사격이 이어졌다. 결국 기관총반이 전멸했다.
기관총 총좌가 제압되기 무섭게 방어선이 돌파되고, 참호라인을 따라 근접전이 시작되었다.
포탄과 박격포탄이 간헐적으로 낙하하고 있었지만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역이 제압되었고, 근처의 독일군은 죽거나 도망쳤다.
소련군 중대장이 무전기의 수화기를 잡고 외쳤다.
“제89소총병 사단,
타만 아르메니아 소총병 사단의 390연대가 가장 먼저 파시스트 참호를 점령했다!
소련 만세, 아르메니아 SSR 만세!”
병사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둔탁한 기계음에 금새 묻혔다.
"나치 전차다!!! 나치놈들의 전차가 왔다ㅡ!!"
"침착하라, 참호로! 대전차전 준비하라!! 대전차 수류탄을ㅡ"
추가적인 지시를 하려던 중대장이 잠시 멈췄다.
한 대, 두 대… 열 대……
검은 강철의 벽이 전진해 오고 있었다.
중대장은 지시를 내리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3기갑군단의 선봉이 도착했다.
예레반, 제3기갑군단 임시지휘소.
"줄파까지 단숨에 관통하라. 적어도 나흐치반까지는 멈추지 않는다.
잔적 소탕은 카프카스 집단군에 맡기고, 멈추지말고 전진하며 싸워라.
이 지역에 우리의 맞수는 없다. 주도권을 절대 내주지마라."
제3기갑군단장 하소 폰 만토이펠 중장이 명령을 내렸다.
기갑 쐐기(Panzer Keil) 대형으로 전투에 진입한 제15기갑사단이
단숨에 소련군 공격 대기 참호를 관통했다.
공격의 제2제파로 집결중이던 제89소총병 사단이 통째로 파괴되었다.
첫 돌파에서 단숨에 사단 지휘부가 공격받았고,
사단은 대응하지 못했다.
전차의 궤도 아래에서 많은 것이 으스러졌다.
그 다음 희생양은 대전차 태세로 재방열 중이던 영국군 혼성포병 여단이었다.
그들은 포를 버리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용기만으로는 전차를 막을 수 없었다.
기갑부대는 조직되지 않은 저항을 무너뜨리며 계속 나아갔다.
예레반과 나흐치반, 줄파의 사이에서 도로와 철도로 이동 중이던
영연방 인도 제국 사단들이 그다음 타겟이 되었다.
흘러내리는 황토 속의 나흐치반, 연합 전방지휘소.
소련군이 전방에서 대부분 소진되는 동안 영국군은 사태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적들은 기갑부대를 앞세워서 이미 예레반 포위망을 파괴했습니다! 멈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주둔하다가 이동해 온 영연방 제16보병여단장 로맥스 준장이 보고했다.
그는 제8, 제10 인도 제국 사단의 전술협조도 담당하고 있었다.
"나흐치반의 계곡을 따라 대전차 방어선을 형성하라. 줄파까지 통과시켜선 안된다, 명심해라!"
통신기의 반대편에서는 줄파의 지휘소에 있는 리스 중장이 외쳤다.
"제8 인도 사단 지휘부입니다! 작전구역으로 이동 중 적 전차 식별! 전방 구역이 무너진…"
"상황을… 상황을 보고하라! 전차부대와 조우? 그 이후는! 응답하라, 응답해!"
"فوجی عملے کو لے جانے والی ٹرین پر حملہ ہوا ہے!!"
"보고는 영어로 하라! 장교를 연결해!"
"مدد، مدد کی درخواست ہے! حکم دیجئے!"
줄파의 사령부와 교신을 마친 로맥스 준장이 참모에게 물었다.
"또 무슨 일인가? 계곡을 따라 대전차 방어선을 형성하라.
제대로 된 대전차포가 부족하니 야포를 대전차 태세로 배치해야겠군.
제8, 10인도 사단을 전방에 배치하고, 제16보병여단을 예비대로 확보한다."
"여단장님, 그 인도 사단들이 공격받은 것 같습니다."
"뭐?"
줄파, 연합군 공동사령부.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소. 독일군 기갑부대가 이렇게 빨리 증원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소."
리스 중장이 말했다. 그는 대화 상대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전달하듯 말했다.
"…영국군은 우리가 앞서나가 싸우는 동안에 뭘 했는가?
나흐치반에 처박혀서 쉬고 있었나? 영용한 붉은 군대와 함께 싸우기는커녕, 쉬다가 몰살당했나?"
티율레네프 대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좋다. 늦을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럼 왜 방어태세도 갖추지 않았나?"
"병력을 재배치하고 분산하여 방어진지를 갖출 수 없는 상황이었소.
그리고 중동 지역의 부대들은 대부분 치안 및 호송 부대로 대전차화기도 부족했소."
"대전차화기가 없으면 소총병 육박전을 가했어야지!
그걸 그냥 서서 죽나! 싸우는 방법조차 잊었나!"
"아, 그렇소? 그게 당신들 방법이었지? 나도 잘 들었었소.
그 영용하신 붉은군대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Сука! Блядь! Империалистический сукин сын!"
"그만하시오, 이제. 살아남은 자들은 다음 싸움을 생각해야하오. 철수합시다.“
리스 중장은 침착하게 대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손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 패배를 만회할 것인가?
선혈로 붉게 물드는 아라스 강, 교량 인근.
줄지어 몰려든 연합군 패잔병들은 강변으로 몰려갔다.
고장난 야포 견인 차량이 다리를 막아섰고, 뒤에서는 독일군 전차와 장갑차가 무자비하게 밀려오고 있었다.
"Уйди, убери это! Убирайся!"
"کیوں نہیں بڑھ رہے ہو!"
"그냥 끌어내! 끌어내라고!"
병사들이 다같이, 함께 외쳤다.
언어는 달랐지만, 모두의 목소리는 한 가지 의미였다.
비켜라, 살고 싶다.
누군가 외쳤다.
"전차다ㅡ!"
장갑차를 내세운 기갑수색대대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기관포의 연발음이 강변에 쏟아졌다.
탄환이 모래와 사람을 동시에 후려치자 병사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그들 뒤로 달아나던 이들은 더 이상 멈추지 않았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어떤 병사들은 장비를 벗어던지고 강물로 몸을 던졌다.
차가운 물살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강 한복판에서 몸부림치던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질렀지만 날아온 탄환이 물기둥을 일으키며
그를 강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강은 도피처가 아니었다. 강은 무덤이었다.
아라스 강물은 점점 더 붉게 변해갔다.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것은 군복과 철모, 총검뿐만 아니라
목숨을 지키려다 산산조각 난 인간 군상들이었다.
다리 위는 여전히 막혀 있었고, 도로 위엔 불붙은 차량과 쓰러진 시체가 겹겹이 쌓였다.
포탄 파편이 교량 위와 강가를 동시에 갈기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는 도망이 아닌 떼죽음 속으로 내던져졌다.
남은 자들은 체념한 채 죽어갔다.
대부분은 소총조차 집어던지고 손을 든 채 무릎꿇고 앉아있었다.
부글거리는 핏빛 거품과 함께, 아라스 강의 대도살은 끝났다.
강물은 계속 흘렀다.
하지만 그 위를 떠내려간 것은 물이 아니라, 핏빛 패배 그 자체였다.
타브리즈까지 가는 길에는 아무런 연합군 잔존세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연합군
연합군은 페르시아–코카서스 공세(가칭 Operation Caspian Relief) 를 통해
독일군의 남하 차단과 보급로 확보를 노렸다. 그러나 기본 구상부터 허점이 많았다.
목표 : 타브리즈 회랑 확보 → 카프카스 및 중동 보급선 안전화.
전술 : 소련 잔여 병력을 전위로 내세우고, 영국군 및 인도 사단은 방어·보급 보호를 담당.
가정 : 독일군은 방어적일 것이며, 기갑 증원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
하지만 전제부터 어긋나 있었다.
전위로 투입된 소련군은 이미 전투력 저하, 보급 부족 상태였고
영국군은 ‘희생 최소화’를 우선시하여 공격 의지가 약했다.
인도 사단은 치안·호송 경험 중심, 기갑전 대비가 사실상 전무했다.
그리고 언어와 지휘체계 불일치로 초기부터 지속하여 혼선이 발생했다.
연합군의 구상은 정치적 불신과 작전 조율 실패라는 미숙한 연합작전의 결함이 계속하여 나타났다.
추축군
추축군은 기동 방어와 전격전을 결합한 전형적인 대응을 준비했다.
카프카스 집단군 : 요충지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편성
제3기갑군단 : 종심 돌파
목표 : 연합군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 집중 기갑 돌파로 종심을 관통 → 보급선 파괴 및 타브리즈 고립
전술 : Panzerkeil(기갑 쐐기)로 전위 소련군 분쇄 → 영국군 지원 병력 각개격파 →
보급선(나흐치반–줄파–아라스 강) 타격 → 타브리즈 노획 및 파괴
이는 전형적인 전격전 교리였으며, 특히 점령이 아니라 파괴를 목표로 한 점에서 실행 부담이 줄었다.
연합군은 표면적으로는 예레반까지 무혈 전진에 성공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준비가 완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소련군 전위는 지속적인 돌격으로 첫 참호선을 점령했으나, 곧 기갑 돌파에 궤멸하였다.
영국군은 방어진지 배치 지연, 무전 혼선, 대전차화기 부족으로 역시 효과적인 대응에 실패했다.
인도 사단들은 열차 이동 중 기갑부대와 조우하여 각개격파 당했다.
화력·병력의 절대량이 아니라, 지휘·통제의 불완전성이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연합군은 교전 이전에 내부 구조의 결함으로 붕괴했다.
추축군은 전격전 교범 그대로 움직였다.
카프카스 집단군이 전선을 고착시킨 상태에서 기갑부대가 방어력이 취약한 부분(소련군 제89사단)을
돌파하여 종심 깊숙이 관통, 전개도 하지 못한 인도 사단과 영국 포병대를 각개격파 하였다.
이후의 전개는 전면전이라기보다는 소탕에 가까웠다.
기갑부대의 속도와 파괴력 앞에서 연합군은 진형을 갖추기도 전에 분해되었다.
※ 영연방 3개 사단(인도군 3개 사단 및 영국군 여단)과
재편성되지 못한 소련군 소총사단 10개가 완전손실 되었다.
페르시아 회랑 완전 파괴
타브리즈와 페르시아 회랑의 붕괴는 단순한 전투 패배를 넘어 연합군 보급 체계 자체를 마비시켰다.
수십만 톤의 랜드리스 물자가 불타 사라지면서, 중동과 소련을 잇는 유일한 축선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영국의 중동 영향력 감소
영국의 중동군은 증원 능력을 상실했고, 지역 내에서의 영향력도 크게 약화되었다.
인도군과 영연방 부대가 대규모로 희생된 사실은 정치적·심리적 충격으로 이어져,
제국 권위와 동맹 신뢰를 동시에 흔들었다.
정치적 파장
소련은 영국이 의도적으로 소련군을 희생양로 내세우고, 결정적 순간에 방기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영국군 지휘부가 전면 공세에 미온적이었고, 각종 지원에서도 소련군을 방치했다는 점은 의심을 키웠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양국의 이념적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이후 협력 전망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국은 처음부터 작전을 소극적으로 평가했지만, 결과가 참패로 귀결되자 영국의 전략적 무능을 문제 삼았다.
특히 랜드리스 물자가 무더기로 소실되어 의회에서 ‘영국이 미국 자원을 낭비했다’는 비판으로 번졌다.
미국은 이후 중동 전선 지원에 냉담해졌고,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유럽과 태평양으로 더 집중하게 되었다.
총평
타브리즈 전투는 단순한 전술 실패가 아니라 연합군 전체의 구조적 붕괴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군사적으로는 PACFORCE와 소련 잔여 병력이 궤멸하며, 중동 방면 영국군은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정치적으로는 소련과의 불신, 미국의 실망이 겹치며 영국은 동맹 내 신뢰를 크게 상실했다.
결국 이 작전은 군사적 참패이자,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진 대실패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타브리즈 외곽의 거대한 창고 단지.
지평선까지 이어진 산더미 같은 곡물 자루, 통조림 상자, 가공육,
기름통, 군화, 무전기, 의약품 상자가 줄지어 쌓여 있었다.
렌드리스. 정식 명칭 무기대여법. 그 모든 것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곡물과 가공육? 이 구역은 전부 파괴하라.”
독일군 장교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서류를 낭독하듯 담담했고, 눈빛에는 어떠한 감흥도 없었다.
병사 하나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반짝이는 통조림과 연유 깡통이 가득했다. 그는 순간 어린아이처럼 중얼거렸다.
“운반만 된다면… 이건 금덩이나 다름없습니다. 저 많은 걸 그냥…?”
“애석하게도 적재할 수단이 없다. 연료, 차량, 통신장비, 의약품만 확보한다. 나머지는 전부 불태워.”
명령은 반복되지 않았다. 설명도 필요 없었다.
곧 불길이 창고마다 치솟았다.
처음엔 작은 불꽃이었지만, 곡물 더미가 타면서 폭발하듯 불길이 번졌고, 고기와 기름이 녹아내리며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가죽은 지글거렸고, 고무는 녹아내렸으며, 통조림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씩 폭발했다.
수십만 톤의 물자가 타들어가며 내뿜는 냄새는 도시 전체를 뒤덮었다.
하늘은 지독하게 검은 빛으로 물들었고, 바람은 타버린 곡식과 고무의 악취를 멀리 퍼뜨렸다.
타브리즈는 불길에 휩싸인 채 거대한 장작더미처럼 타올랐다.
그것은 희망과 약속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병사들은 불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몇몇은 신음처럼 '루즈벨트 배급'이라는 말을 흘렸지만, 이내 명령대로 다시 움직였다.
그들에게는 아쉬움도, 죄책감도 허락되지 않았다.
타브리즈는 재가 되었다.
잿더미만 남았다.
불길은 침묵조차도 삼켜버렸다.
트빌리시로 돌아가는 차량에서 은박지가 버려졌다.
몰래 챙겨온 초콜릿 한 조각이 운전병의 위장 속으로 들어가며 50만 톤의 물자는 완벽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