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기까지
사는 건 녹록지 않았다.
작은 아파트로 옮겨
아이와 함께 신혼집을 꾸렸지만,
갓 제대한 남자와
신생아를 안고 있는 여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100일 된 아기를 데리고
18시간 비행 끝에
다시 요르단으로 갔다.
요르단에 새로 한국지사를 연다는
지인의 권유로 옮긴 길이었지만,
지사는 석 달 만에 문을 닫았다.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내 뱃속에
둘째가 생긴 걸 알게 된 건.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나는 나가서 가이드를 했다.
임신한 채로
손님들 앞에 서서
익숙한 목소리로
낯선 땅을 설명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말했다.
“수고했어.”
나는 대답했다.
“고마워, 애 봐줘서.”
그게 다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린 그때
서로에게 참 많이 미안했고,
그만큼 많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마음들이
우리 가족의 시작이 됐다.
같은 상황이라도
무엇을 바라보는지가 삶을 다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