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유선철
실비를 맞고 가거나
바람에 실려 가거나
나는 늘
문밖에 있고
그는 또
빗장을 건다
하얀 밤 눈부신 개명改名
가볍다, 절반의 무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뭔가 이루려는 자의 구도자적 과정 같은 게 눈앞에서 맴돕니다. 초장 전구와 후구의 ‘가거나’는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말합니다. 중장 전구 ‘나는 늘//문밖에 있고’에서 큰 변화는 일어날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순탄한 여건도 아닙니다. 실비가 훼방을 놓고 바람의 간섭은 시도 때도 없습니다. 또한 문밖의 시간은 문 안쪽에서 누릴 수 있는 평온을 바라지 못합니다.
빗장을 걸어 잠그는 그라는 존재는 나를 통제하는 조직에 대한 의인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의 통제에 반발하는 정서를 보이지 않고 있군요. 자신이 지금껏 문밖에서 감당해온 수련 행위가 애초엔 비자발적이었을지 모르나 종장을 보면 결국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눈부신 개명’이라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고 ‘절반의 무게’란 결과에도 만족하는 모습입니다. 개명이라는 자기 갱신에 이르는 길은 적어도 절반은 덜어내는 내적 변화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안식이 주어지지 않는 문밖의 수행을 전제합니다,
시원시원한 행갈이를 아낌없이 내어놓는 배려로 받아들이며 찬찬히 음미합니다. 종장 후구의 음보에 눈길이 가네요. ‘가볍다’를 뒤로 보내면 음수율이 맞고 외형상의 완결미도 자연스레 보일 텐데 작가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 수가 끝나는 느낌보다 새로운 시작에 더 무게를 두려 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