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이승현

by 이광

밥그릇

이승현

사발은


제 스스로 따뜻할 순 없으나


모진 비바람 이겨낸 밥알을 품고 나면


막노동

주린 뱃속도

훈훈하게 덥힌다


밥그릇은 한 사람 몫의 밥을 담습니다. 제 밥그릇 제가 챙기라는 말이 있듯 밥그릇은 자기 몫을 비유하기도 합니다. 또한 과거 끼니를 잇기 급급하던 시절 밥은 삶의 우선 과제였습니다. 따라서 밥그릇은 생계 수단을 의미했고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습니다. 작품 속의 밥그릇은 요즘 식당에서 흔히 보는 철제가 아닌 사발이군요. 사발에 고봉으로 담아주던 밥은 이제 옛 모습이 되어가지만, 따뜻한 밥이 주는 훈기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사기그릇은 만지면 감촉이 서늘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밥알을 품고 나면 그 온기로 사발도 따뜻해지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지 않습니다. 이를 ‘모진 비바람 이겨낸 밥알’의 힘으로 받아들인 순간 시인의 가슴에서 한 그릇의 시가 빚어집니다. 막노동으로 허기진 뱃속을 훈훈하게 덥히는 밥그릇 덕에 그 또한 식구들을 위한 밥그릇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되지요. 벼농사 짓는 농부, 주방에서 쌀 씻는 여인, 공사장에서 벽돌 쌓는 인부 등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눈앞에 어른거리며 읽는 이의 마음도 훈훈해집니다.

일반적인 배행과 달리 임의로 행갈이를 하는 것은 작가가 누리는 자유가 아닙니다. 한 행과 한 연을 설정하기 위한 숙고가 따르는 선택인 것이죠. 줄글로 쓰던 고시조와 달리 현대시조는 시어의 의미를 강조하거나 내재한 이미지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의도적 배행이 이루어집니다. 일종의 창조적 변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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