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블록/ 윤경희

by 이광

점자 블록

윤경희


무심코 밟은 바닥이 누군가의 눈이었다

손을 내민 듯한 울퉁불퉁한 촉수였다

틈 사이 갇혀 있었던 누군가의 길이었다


점자 블록은 시각장애인의 보행 안전과 편의를 위해 보도와 건물 통로 등에 설치합니다. 예전부터 보도에 깔려 있었던 거라 눈에 익숙한 노란색 블록은 일반인에겐 그냥 ‘무심코 밟은 바닥’입니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사물은 바쁘게 움직이는 일상에서 관심의 대상 밖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화자 역시 보도블록 위를 무심히 지나던 중이었습니다. 시인이라고 365일을 시인의 눈빛으로 살아가진 않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시인의 눈빛이 빛나며 ‘누군가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평소 예사로 보아오던 사물이 심안이 열리면서 새롭게 다가온 것입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손을 내민 듯한 울퉁불퉁한 촉수’와 자연스러운 연결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순간을 굳이 말하자면 시가 왔다고 하지요. 그리고 시인의 상상력은 ‘틈 사이 갇혀 있었던’ 길의 갑갑함을 체감합니다. 결국 보도블록 사이의 점자 블록은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린 사회적 약자의 갇힌 길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각 장이 종결형 어미로 문장을 끝맺고 있습니다. 꼭 할 말만 하겠다는 절제된 자세를 취합니다. 초장에서 첫걸음을 옮겨놓았고 중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상황이지요. 종장에선 그러한 단계를 뛰어넘습니다, 시야를 넓힌 도약의 보법으로 단시조의 구조적 정형 미학을 아주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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