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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를 사랑한 프랑수아

아프리카에서의 특별한 인연

by 강행구

부영사님, 태권도를 할 줄 아십니까?”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에서의 어느 저녁,

나의 불어 연습을 도와주던 가사 도우미 프랑수아가 갑자기 물었다. 태권도? 이곳에서?

나는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에서 태권도는 기본으로 배우니까, 나도 좀 하지.”

그러자 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지금 태권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곧 검은 띠 심사를 앞두고 있어서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집 가사 도우미가 태권도를? 검정 띠 심사를?

아프리카의 중심 도시 아비장에서, 그 이야기는 조금은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한 남자, 프랑수아

프랑수아는 부르키나파소 출신 이주 노동자였다.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어린 아내와 함께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으로 건너온 그에게,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사에 성실했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이 분명했다.


사실, 처음 그를 전임자로부터 소개받았을 때, ‘젊은 남성 도우미라니...’ 하는 약간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함께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우리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는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라, 한 명의 가족이자 친구였고,

어쩌면 아프리카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이었다.


태권도라는 뜻밖의 인연

태권도를 배우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말했다.

“길을 가다 불량배를 만났는데, 도장에서 배운 기술로 위기를 넘겼어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그의 눈빛은 단단했다.

자신감이 생겼고, 그 자신감이 삶의 태도까지 바꿨다고 했다.

“그럼 심사는 언제야?”
“일주일 뒤입니다.”
“도복은 준비됐어?”
“… 아니요. 빌려 입을 예정이에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이듬날, 나는 대사관 창고를 뒤져 여유분 도복을 찾아냈고, 프랑수아에게 건넸다.

도복을 건네받은 그는 감격에 겨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진짜 무도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검정 띠 심사, 그리고 태극 마크의 의미

며칠 뒤 아침, 나는 조심스레 프랑수아에게 물었다.

“어땠어, 심사는 잘 봤어?”
“네! 초단을 땄습니다!”
“새 도복 입고 갔지? 사람들 반응은?”
“모두 어디서 도복을 구했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모시고 있는 마스터가 주신 거라고 하니까, 다들 놀라워했어요.

특히 도복에 박힌 태극 마크에 시선이 쏠렸어요!”

그는 매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순간, 나도 덩달아 뿌듯해졌다.

한 벌의 도복이 그에게는 ‘존중’이고, ‘신뢰’였으며,

그 자체가 한국과의 특별한 연결 고리였던 것이다.


아프리카 곳곳에 뿌리내린 태권도

프랑수아처럼 태권도를 배우는 이들이 이곳 아프리카에는 꽤 많다.

오랫동안 우리 정부는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태권도 사범을 파견해 왔다.

덕분에 수도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도 태권도장이 운영되고 있고,

현지인들은 태권도를 ‘강하고 멋진 무술’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성룡이나 이소룡 같은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무술 영화가 아프리카에 방영되며

만들어진 문화적 영향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영화 속 무술이 곧 태권도라고 생각하고 도장을 찾는다.

그러나 그런 오해조차 결국 ‘태권도’의 문을 두드리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나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우리 집 도우미? 아니, 든든한 가족이자 경호원!

프랑수아는 여전히 우리 집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족이자, 경호원이자, 삶의 동료다.

그의 검정 띠는 단지 무술 자격증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상징이다.

그리고 나는 확신한다.

태극 마크가 새겨진 도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멋진 영감을 줄 것이다.


아프리카, 태권도를 품다

요즘 아프리카에서는 태권도가 단순한 무술을 넘어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주목받는 종목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올림픽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종목으로 분류되면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체계적인 육성과 투자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코트디부아르의 셰이크 살라 시세(Cheick Sallah Cissé)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 태권도 80kg급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프리카 역사상 첫 태권도 금메달리스트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세네갈의 파피 셰리프(Phappe Cherif) 선수도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뛰어난 경기력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네갈은 태권도 사범 파견과 현지 체육 인프라 지원을 바탕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선수 발굴과 지원 시스템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많은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태권도는 단지 무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바꾸는 통로이자 글로벌 무대에 설 수 있는 꿈의 발판이 되고 있다.

프랑수아처럼 태권도를 배우며 삶의 자신감을 키워가는 청년들이

아프리카 전역에 수천 명 이상 존재한다.

이들의 성장 속에는 한국의 문화외교와 태권도 정신이 깊이 녹아 있다.

태극마크가 새겨진 도복은 단순한 복장을 넘어서,

꿈과 희망, 그리고 도전의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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