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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의 흔적

오늘까지 이어지는 아프리카 경제의 불균형

by 강행구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는 아프리카를 단순한 정치적 지배만이 아닌,
아프리카의 경제 구조 자체를 뒤흔든 거대한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경제는 오랜 세월 공동체 중심의 자급농업과 물물교환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식민 통치는 이 전통적인 질서를 무너뜨리고,
유럽 중심의 세계 경제 체제 속으로 강제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었다.


현금 작물 경제의 등장 — 공동체를 무너뜨린 단일 농업

식민 통치자들은 아프리카의 토양을 유럽 산업의 ‘공장 뒤뜰’로 만들고자 했다.
이로 인해 코코아·커피·면화·고무·사탕수수 같은 현금 작물(cash crop) 재배가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작물의 교체만이 아닌,

아프리카의 생활 방식 전체를 바꿔 놓은 혁명적 전환이었다.

공동체 단위의 자급농업은 사라지고, 식량 작물 재배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대신 유럽 기업과 식민 정부가 주도한 수출용 농장이 대륙 곳곳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식량 생산이 줄자 기근과 영양 부족이 만성화되었고,
한 가지 작물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세계 시장 가격의 변동에 취약한 경제를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카카오, 커피 가격이 흔들리면 코트디부아르·에티오피아와 같이 카카오와 커피 생산을 하는 농민들은 생계가 휘청인다.
이것이 바로 식민 경제가 남긴 유산이다.


자원의 저주 — 금, 다이아몬드, 구리 그리고...

유럽 열강의 관심은 땅 위의 작물뿐만 아니라, 땅속의 보물에도 향했다.

금, 다이아몬드, 구리, 주석, 보크사이트…
아프리카 대륙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광물 자원을 품고 있었지만,
그 부는 아프리카인의 손에 머물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원은 가공되지 않은 원재료 상태로 채굴되어 유럽으로 반출되었다.
식민 정부는 현지의 산업화를 의도적으로 억제했고,
공장에서 일자리를 만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지금도 원자재를 수출하고, 완제품을 수입하는 구조적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원 수탈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었다.
광산 개발은 환경 파괴와 강제노동, 공동체 붕괴를 동반했고,
많은 지역에서 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Resource Curse)가 되었다.


철도와 도로 — 발전의 상징이 아닌 수탈의 통로

식민지 시절의 인프라 건설도 표면적으로는 “근대화”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철도, 도로, 항만은 현지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길은 내륙의 자원지에서 항구까지, 오직 수출만을 위한 일직선 구조로 건설되었다.

세네갈의 다카르–니제르 철도

케냐–우간다 철도

콩고의 수출항 연결 철도망

이 노선들은 ‘개발의 길’이 아니라 ‘수탈의 통로’였다.
아프리카 내부의 지역 간 연결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이후 독립한 국가들은 이런 단선형 인프라로 인해 내륙 중심의 균형 발전이 불가능한

구조적 제약을 떠안게 되었다.


세금과 강제노동 —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착취

식민 정부는 세금 제도를 통해 아프리카인의 노동력을 조직적으로 통제했다.

‘두세(head tax)’와 ‘노동세’는 이름만 세금이었지,
현금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곧 노동 그 자체로 납부하라는 강요였다.
이것이 바로 강제노동 체제의 본질이었다.

벨기에령 콩고에서는 고무 채취량이 기준에 못 미치면 사람들의 손을 자르는 잔혹한 처벌이

자행되었고, 프랑스 식민지에서는 ‘코르베(corvée)’라는 강제노동 제도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젊은 노동자들이 도시와 광산으로 떠나자 농촌의 노동력은 고갈되고,

공동체 질서와 가족 구조는 붕괴되었다.


이중 경제의 그림자

식민 경제는 사회 전체를 ‘두 개의 세계’로 갈라놓았다.
유럽인과 일부 아프리카 현지 엘리트가 사는 도시는 전기·철도·병원·학교가 있었지만,
아프리카인 대다수가 사는 지역은 철저히 방치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이중 경제 구조(Dual Economy)’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도시-농촌, 부유층-빈곤층 간의 격차의 뿌리가 되었다.


식민 경제의 유산 — 지금도 계속되는 불균형의 사슬

식민 경제는 과거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날 아프리카가 직면한 경제적 불안정, 무역 왜곡, 산업화 지연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여전히 원자재 수출 의존, 낮은 제조업 비중, 외채와 원조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식민 통치는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경제 질서 ― “수출만을 위한 경제” ― 는
여전히 대륙을 조용히 조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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