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만난 날

Vancouver Pride Festival - 밴쿠버 프라이드 축제

by Ella

어느 해, 제가 근무했던 지역 X중학교에서 여성성이 강한 남학생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쟤는 좀 이상해”라고 말하며 저에게 전했습니다.
“저런 모습 보면 부모 속은 어떨까?” 하고 수군거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일이 제 아이에게 닥친다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죄를 지은 것도,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만든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그저 마음이 다른 성일 뿐이고, 그 아이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게 바로 부모의 역할 아닐까요?


만약 부모가 먼저 손가락질한다면,


그 아이는 어느 세상에서도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제인이가 만 6세 무렵, 우리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습니다.
그곳은 짙게 화장한 트랜스젠더, 목소리가 특이한 트랜스젠더, 화려한 치마 입은 트랜스젠더들을 길에서 자주 마주쳤습니다.


(*태국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가며, 사람들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때도 저는 제인이에게 편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 편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거야.”

저의 설명이 두리뭉실 했지만, 제인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밴쿠버에서 또 다른 ‘다름’을 마주했습니다.
8월 첫째 주 Vancouver Pride Festival이 열렸습니다.


저는 운전을 하다 길을 잘못 들었고, 그렇게 우연히 축제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StanleyParkVan.com


팬티만 입고 활보하는 남자들, 반짝이 화장을 한 어른들, 무서운 모습으로 분장한 여성들….


그 낯선 풍경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고, 한동안 말없이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축제는 특정 집단만의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벤쿠버 지역의 축제이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기도 하죠.

마크 카니 총리 참석 / 사진출처:THE CANADIAN PRESS/Ethan Cairns

이 축제만이 아니라 벤쿠버 곳곳에는 남녀 공용 화장실이 있었고, 성별이 나뉘어진 화장실 문앞에는 반드시’Trans People Welcome' 의 안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이곳 문화가 분명히 더 포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인이의 성 개념은 어디쯤일까?’


발달심리학자 콜버그 이론에 따르면, 만 6~7세 아이들은 ‘성 불변성’ 개념을 익혀 성별은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이라 이해한다고 합니다.


제인이도 그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인이에게 물었습니다.
치마 입은 남자는 여자야? 남자야?”


솔직히 말해, 저는 “남자지”라는 답을 기대했습니다.


혹시 “여자야”라고 하면, “그럼 머리 짧은 여자는 남자야?”라고 되물어보려고 했죠.
아이의 성 개념 발달 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인이는 제 기대를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제인이는 “치마 입은 남자는 여자일 수도 있어. 마음이여자라면, 그게 그 사람의 진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콜버그의 이론이고 나발이고,
제인이의 생각이 저를 완전히 놀라게 했습니다.


제인이는 이미 저보다 더 넓고 깊은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세상의 모든 답을 알지 못합니다.

아이가 겪어야 할 세상을 모두 다 겪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정답이라고 설명 해줄 확신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보다 더 넓고 깊은 눈을 가진 아이가 되기를,

그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아직은 제인이에게 성소수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만,

궁금해한다면 언제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려고 합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삶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


겉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사람의 진짜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랍니다.




제인아,

가끔은 예상하지 못한 세상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마음속에 물음표가 생길 때도 있을 거야.


그럴 땐 꼭 엄마에게 물어봐 줄래?

엄마는 언제나 네 편에서 함께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어.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들이 제인이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도록,
엄마가 네 생각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함께 풀어갈게.

어떤 질문도, 어떤 감정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엄마는 언제나 너만의 비밀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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