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접었고, 너는 날았다. – 마지막 회
제인이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자신의 이름 외에는 거의 읽지도 쓰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단어를 나열해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5개월이 지난 지금,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심지어 넷플릭스의 가족 코미디 시트콤 The Thundermans를 보며 깔깔 웃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영어의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현지 초등 2~3학년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때로는 말다툼까지 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제 제인이 친구들은 제인이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합니다. 제인이 역시 친구들과 영어 가사가 대부분인 K-pop을 즐겨 듣다 보니, 가수가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살 꼬맹이의 귀여운 생각이죠.
아직 영어 읽기와 쓰기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어 읽기·쓰기 능력이 더 높아요. 제인이를 돕기 위해 학교의 ELL 선생님(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을 위한 영어교육)이 주 1~2회 수업을 해주시고, 개인적으로 현지인 선생님 과외(사교육)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Dog Man, The Baby-Sitters Club 같은 저학년 영어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자기 이름만 겨우 읽고 온 아이가 이렇게 성장했으니, 정말 대단한 발전이죠.
어릴 때부터 영어권 환경을 접하니 장점이 많습니다. 영어 농담의 뉘앙스나 언어유희를 이해하고, 개그 프로그램의 포인트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발음 덕분에 현지 친구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섞입니다. 캐나다 친구 엄마들은 제인이에게 아시아 악센트가 없어서 한국에서 온 줄 몰랐다고 칭찬해 주곤 합니다. (저 때문에 한국에서 온 것을 들켰네요. ^^)
제인이가 잘 적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성격이 한 몫했습니다. 파워 파워 파워 ESFP인 제인이가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자신이 주목받는 것을 즐겼으니 말입니다.
(3화. From 외톨이 To 아이돌 편 참고)
어느 날 이렇게 말했죠.
“엄마, 이제 캐나다 적응 끝났으니까, 다른 나라에도 가볼까? ”
한국에서의 직장을 쉬고 있어 제인이만 키우면 시간적 여유가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집안일, 요리, 아이 스케줄 챙기기 등 하루가 금세 지나갑니다.
제인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픽업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약 5시간, 주 5일 기준으로 한 주 25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이 생깁니다. 하지만 한국처럼 반찬가게나 식당이 많지 않아 대부분 집에서 조리해야 하고, 도시락과 간식을 챙기는 일만 해도 하루가 채워집니다. 옷 수선이나 세탁도 직접 해야 합니다.
똥손 엄마도 어느 순간 자급자족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집 정리, 장보기, 브런치 글 작성, 주 1회 성인 영어회화 수업 참여, 아이 학교 행사 참여, 아이 방과 후 스케줄 관리까지 챙기다 보면 시간이 훅 지나갑니다. 인기 방과 후 수업은 금세 마감되기 때문에 일정 확인과 조정도 필요합니다. 게다가 학원차가 없는 이곳에는 늘 아이와 함께 이동해야 하고, 배우는 곳들이 흩어져 있어 하루 라이딩 거리만 20km가 넘습니다.
저녁시간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와 학교 이야기를 나누고, 수학 공부와 일기 쓰기를 도와주며 하루가 마무리됩니다.
유학은 아이가 스스로 원해야 합니다.
부모의 결정에 끌려온 경우와 아이가 스스로 원해서 온 경우는 학교 적응 속도부터 크게 차이가 납니다. 아이가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힘들면, 부모도 힘들어요.
최소한 영어 듣기는 가능한 상태로 오면 학교생활이 훨씬 수월합니다. 말하기·읽기·쓰기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또래 관계가 형성되면 친구들에게서 배우는 영어가 많아 금세 잘 말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이 오기 때문에 못한다고 무안 주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주눅 들 걱정도 없습니다.
제가 캐나다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엔 무관심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언제든 도움을 주면서도, 우리의 삶을 존중해 주는 곳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되는 이 편안함 속에서, 저는 진정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딜 가든 지천으로 널린 멋진 자연환경이 제인이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숲과 호수, 강과 바다, 공원까지,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허락한 자연입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을 잠시 내려두고, 제 소중한 아이와 함께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1년 뒤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인이가 더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꽉 채워 행복하게 지낼 생각입니다.
2탄도 기대해 주세요.
나는 접었고, 너는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