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기억
토요일 오후이다. 지영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자신도 모르게 이수 교차로에서 신세계 강남점 쪽으로 순간 차 방향을 돌렸다. 강남고속 터미널 옆 백화점 입구보다는 늘 이용하는 메리어트 호텔 쪽 입구를 택했다. 호텔정문을 살짝 통과해서 우회전을 하면 바로 신세계백화점 명품관으로 연결되어 vip전용 발레 파킹 서비스를 해준다. 한 시간 정도 둘러보며 종이 백 5개에 담긴 쇼핑으로 인해 기분은 살짝 흐뭇했다. 하지만 대학 다닐 때 학교와 오 분 거리여서 자주 갔던 런던에 있는 옥스포트 스트리트의 셀프리지 백화점을 생각하면 한국은 명품관이라 해도 눈에 들어오는 상품이 별로 없어 늘 찜찜했다. 나오는 길에 메리어트 호텔에서 머리도 하고 스파도 하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십 분 정도 운전해서 집에 도착한 후 지영은 다음 주 있을 미팅 스케줄을 보며 준비를 하다가 새벽이 넘어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은 분주했다. 영국에 있을 때 무척 친하게 지냈던 노리꼬라는 일본친구가 그녀의 남편윌리엄과 같이 방문을 했다. 최근에 노리꼬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자신이 키운 기초화장품 회사를 시세이도에 인수합병 방식으로 넘기며 거액을 벌어들인 뛰어난 사업가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화장품 메이크업제품 중 일부를 중국과 유럽시장에 진출을 모색하느라 국제변호사인 그녀의 남편 런던출신의 윌리엄과 바쁜 일정을 보내던 중 일부러 짬을 내어 한국에 잠깐 들른 거였다. 런던에서 노리꼬와 서로 옆방에 붙어살았던 지영은 많은 것을 함께 했고 같이 요리를 해서 식사도 나눠먹었다. 한국의 신 라면을 노리꼬는 특히 좋아해서 지영을 자신의 방에 초대해서 같이 키득거리며 많이도 나눠먹었다. 그때는 지영과 노리꼬에게 모든 것이 다 즐거웠다. 하찮은 얘기도 둘이서 나누면 드라마나 유치한 소설 한 권이 뚝딱 만들어질 정도였다. 당시 그녀의 남자 친구 윌리엄과는 같이 테니스도 하고 가끔은 윌리엄이 초청해서 사슴과 토끼가 자주 출연하는 골프장그린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인간에게 아무래도 먹는 정이 크긴 큰가 보다. 셋이서 런던에 모인 각국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주말이면 지영과 노리꼬가 사는 홀랜드 파크 옆 노팅힐에 있는 노리꼬 소유의 크림색 아치 창문들이 고풍스러운 미를 물씬 풍기는 4층 건물에서 전 세계의 다양한 직업의 친구들과 학생들의 파티가 열렸고 그중에 가장 입담이 좋은 이탈리아 시실리 출신의 심장 전문의 로돌포는 춤과 매번 색다른 이벤트를 열어 그곳의 친구들에게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매번 다른 패션 모자를 늘 즐기는 패셔니스타 노리꼬는 대리석 같은 흰 피부에 복숭아 빛 블러셔가 메이크업 포인트로 한 번만 그녀를 봐도 절대 잊히지 않는 매혹적인 눈빛과 성격의 소유자이다. 오랜만에 셋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기초화장품과 메이크업 신제품을 올 때마다 한 가방씩 지영에게 선물로 안겨준 노리꼬 내외와는 아쉬운 작별을 하며 공항마중을 했다. 지영은 문득 런던의 골목 바람 냄새가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