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녹 채 06화

녹채 6화 가볍게 놓을 수 없는 무게

꿈의 피부 아래 진실이 숨 쉰다

by 크리슈나


지영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지하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보니 벌써 열 시가 넘었다.


서둘러 돌아서서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벤이 스르르 옆에 멈추더니 지영을 순간 덮쳤다. 차에 실려서 어디론가 하염없이 달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지영은 숨조차 쉴 수 없었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바위가 병풍처럼 끝없이 늘어서 있고 빙글빙글 도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파라고 무나무 같은 것이 울창하게 빽빽이 서있는 밀림 같은 어느 입구이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비현실적으로 깊이조차 가늠하기 힘든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가 안도감과 동시에 깊은 두려움 같은 것을 주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듯 고요하고 소름 끼치는 절대 고독만이 있는 외딴곳이었다. 지영은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느낄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주사를 맞고 있다는 사실과 엷은 노란색 액체가 어마어마한 양으로 둥둥 떠다니며 계속 몸에 주입되지만 어떤 상황인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의식은 흐릿했다. 몸이 묶여있지는 않았으나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잠깐씩 의식이 겨우 들 때면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탈출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 살....... 아야 한다는 생각이 의식저편에서 계속 아우성을 치며 재촉을 했다. 아프다. 주사가 또 들어온다. 약물이 투입된다. “아니야! 아니야!! 안 돼!.......... 한참을 혼자서 자신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으으....... 아....... 악!!! 지영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새어 나오는 건 엷은 신음소리와 무기력한 육체뿐이었다. 나무들이 바위들이 더욱더 가까이 다가오며 몸은 그 암흑 속으로 계속 빨려 들어갔다.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겨우 힘없이 아 아 아 아 안....... 돼....... 공간에 둥 둥 떠다니는 온갖 사물의 환영들을 잡으려고 손을 휘휘 저으며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나 돌아오는 건 약간의 진통과 함께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살짝 열린 감색무지커튼사이로 여명을 알리는 푸른빛이 수줍게 들어왔다. 눈을 뜨면 바로보이는 자리에 있어도 평소엔 무심해서 눈에 잘 띄지 않던 고호의 해바라기가 압도적으로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다. 점차 외부에서 밀고 들어오는 빛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창문과 투명한 벽을 통해 해바라기 그림을 향해 쏟아졌다.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였으나 지영은 찬찬히 그 그림을 응시하며 자신이 마치 고흐가 된 것처럼 신들린 손놀림으로 페인팅했던 그 순간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맞은편 벽으로는 자신의 작품들이 은은하게 실루엣을 드러냈다. 드디어 익숙한 자기 방안이란 것을 지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분명히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 꿈이었구나. 그런데 이렇게 생생할 수가 있다니’ 지영은 식은땀이 흘러 온몸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꿈 속과는 반대로 지영에게 안심이 되는 그 무엇과 함께 해방감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실재를 들여다보는 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독, 죽음의 심연이라도 과도 같은 저 세계의 고통일 것이다. 그곳을 막 빠져나온 지영은 꿈에서 깬 후 안도감과 함께 이상하게 머릿속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 깊은 어둠도, 결국 자신을 통과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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