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EUV: 빛으로 그리는 나노세계

by 크리슈나


1장. 보이지 않는 것을 새기는 권력의 붓


어느 날, 빛은 칼보다 날카로워졌고, 잉크보다 정교해졌다.

우리가 보는 스마트폰의 화면도, 슈퍼컴퓨터의 머릿속도, 그 모든 회로는 결국 하나의 '빛'으로부터 그려진다.

그 빛의 이름은 EUV, Extreme Ultraviolet — 극자외선.

13.5 나노미터의 파장을 지닌 이 빛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첨단 반도체 공정의 가장 깊은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반도체를 '전기의 예술'이라 부르지만, 실은 그것은 '빛의 공예'에 더 가깝다.

EUV는 기존 광원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술이다.

빛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더 미세한 회로를 정밀하게 새길 수 있고,

이는 곧 2nm 시대, 초고속 연산, 고효율 AI 칩의 핵심 기술로 직결된다.


2장. 기존 ArF 노광과 EUV의 단절


빛은 도구이자 한계였다.

기존의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된 빛, ArF(Argon Fluoride) 레이저는 193 나노 파장을 지녔다.

이 빛은 오랜 시간 동안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주력 수단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진보는 그 빛마저 답답해졌다.


문제는 간단하다.

파장이 길면, 더 이상 작고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없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이중 패터닝(double patterning), 삼중 패터닝(triple patterning) 같은 복잡한 꼼수들이었다.

빛이 모자라니까, 한 회로를 두세 번에 나눠 그리는 식이다.

결과는? 비용 폭증, 공정 시간 증가, 수율 불안.


그래서 EUV는 단지 기술의 진화가 아니라,

한계를 돌파한 단절이자 혁명이었다.


3장. 진공 속 거울, 빛의 행진


EUV는 상상 이상으로 까다로운 빛이다.

빛의 파장이 13.5 나노미터.

그건 박테리아보다도 작고, DNA 나선보다도 가는 수준이다.


이 정도의 극자외선은 공기 속에서조차 바로 흡수되기 때문에,

공정 전체가 진공 상태에서 이뤄진다.

거기다 렌즈도 쓸 수 없다. 유리는 이 빛을 통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

거울이다.

빛은 반사돼야 한다. 그것도 단 한 치의 왜곡도 없이, 10개 이상의 다층 반사 거울을 거쳐야 한다.

이 거울을 만든 회사는 단 하나. 독일의 Zeiss(자이스).

그리고 이 거울을 통제하는 장비는 단 하나. 네덜란드의 ASML.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기업들 ― TSMC, 삼성, 인텔조차도

이 ‘빛의 붓’을 빌려 쓸 수 있을 뿐, 직접 만들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극자외선을 쥔 제국의 독점 앞에 선다.


4장. 왜 오직 ASML만 가능한가


EUV 장비는 세상의 어떤 기업도 혼자 만들 수 없다.

이 장비는 마치 우주정거장을 지상에 내려앉힌 듯한 복합체다.

4만 개가 넘는 부품, 100여 개가 넘는 협력사, 100만 개의 세부 조립 프로세스.


하지만 그 정점에서 통합 조립·통제·판매를 맡고 있는 유일한 기업은

ASML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세계에서 단 하나의 EUV 장비 제조사다.


그렇다면 왜 오직 ASML만 가능한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세 가지 힘이 겹쳐졌다.


첫째, 시간의 겹: 20년의 집착

1990년대 후반, 대부분의 기업은 '193nm ArF'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ASML은 EUV라는 허황된 가능성에 돈과 사람을 쏟아부었다.

손익분기점은커녕, 10년 넘게 실패와 손실의 연속.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20년의 시간은,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기술 갭이 되었다.


둘째, 구조의 겹: 미국과 유럽의 기술 집합체

ASML은 혼자가 아니다.

빛을 만드는 레이저는 미국 Cymer,

거울은 독일 Zeiss,

진공챔버·전력시스템은 벨기에·프랑스·일본·미국 등에서 온다.


ASML은 이들 글로벌 핵심 기술을 독점적으로 조립·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전략급의 외교적 설계다.

ASML의 독점은 네덜란드의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기술블록의 합작적 전략 독점이다.


셋째, 정치의 겹: 미국의 지정학 무기화

ASML은 단지 상업 기업이 아니다.

중국에 EUV 장비를 팔 수 없다.

미국 정부가 직접 수출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ASML은 기술 독점을 넘어 무역질서와 지정학의 도구가 되었다.

이 장비는 한 나라의 산업 경쟁력, 아니 국가의 운명을 쥐는 무기다.

ASML의 장비는 곧 전략적 사슬의 중심 축이다.

반도체를 알고 싶다면, 결국 우리는 이 이름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5장.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그 실패


“중국은 왜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EUV를 못 만드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구조의 벽 때문이다.


1. 돈은 넘쳤다. 기술은 오지 않았다.


중국은 2015년부터 **반도체 굴기(굴절된 부흥)**를 외쳤다.

국가반도체펀드만 1,000억 위안 이상.

상하이 SMIC, 칭화유니, YMTC 같은 기업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과는?


EUV 장비 없음


EDA 설계툴 미비


반도체 장비 공급사 대부분 미국·일본·EU 독점


단순한 기술격차가 아니라

기술 진입을 봉쇄당한 구조적 한계였다.


2. 왜 EUV는 도달 불가능한가


EUV는 단지 '빛으로 그리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분업 체계와 외교적 허락의 산물이다.


Zeiss의 반사경 → 독일의 전략 자산


Cymer의 광원 → 미국 자회사, 수출금지


ASML의 통합 조립 → 네덜란드 정부 승인 필요


즉, 미국이 싫다 하면 끝이다.

이 장비는 무기이며, 외교이며, 제재 도구다.

그래서 중국은 아무리 돈을 써도 자체 생산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


3. 굴기의 실패, 패권의 재확인


중국이 자체적으로 만든 ‘DUV 장비’는 있지만,

성능은 2세대 이상 차이가 난다.

EUV 없이 5nm 이하로 내려갈 수 없고,

고성능 AI 반도체는 꿈이다.


중국이 열심히 달려도

기술 패권의 톱니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기술의 봉쇄선’**이라는 개념을 마주한다.

EUV는 국경이 아니라, 기술이 국경이 되는 시대다.

그 너머에 서있는 나라는 단 하나, ASML과 그 동맹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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