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적이지만 사랑은 진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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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7일 오전 8시, CIA 랭글리 본부
데이비드는 윌슨 부국장 사무실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어젯밤 받은 용린 칩이 가방 속에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들어와."
사무실 안에는 윌슨 부국장 외에도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
"FBI 동아시아 대 테러팀 존스 요원이다." 윌슨이 소개했다. "중국 관련 수사를 담당하고 있어."
데이비드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어제 만난 중국 여성에 대해 얘기해 보자." 존스 요원이 파일을 펼쳤다. "린샤오메이, 32세. 바이두 AI 연구소 수석 연구원."
"그냥 옛 동기입니다. 우연히..."
"우연히?" 윌슨이 끼어들었다. "중국 정부 직속 AI 연구소 핵심 인물과 우연히 만났다고?"
존스 요원이 사진 몇 장을 테이블에 올렸다. 어제 미술관에서 찍힌 사진들이었다.
"꽤 친밀해 보이는데?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데이비드는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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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시절 회상 - 2007년 가을
캠브리지의 단풍이 물들어가던 가을이었다.
"데이비드! 빨리 와!"
샤오메이가 연구실에서 흥분하며 손짓했다.
"뭔데?"
"내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드디어 완성됐어!"
컴퓨터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신경망 최적화 알고리즘이야. 기존보다 100배 빠른 학습이 가능해!"
샤오메이의 눈이 반짝였다.
"와... 정말?"
"응!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
"뭔데?"
"데이터가 부족해. 이 알고리즘의 진짜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엄청난 양의 실시간 데이터가 필요하거든." 데이비드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중국으로 돌아가면 그런 데이터를 구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14억 명의 데이터를... 하지만 그럼 미국과 경쟁하게 되는 거잖아."
샤오메이가 갑자기 우울해졌다.
"왜?"
"그럼 우리가 적이 되는 거야."
데이비드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기술에는 국경이 없어. 우리가 만드는 건 인류를 위한 거야."
"정말 그럴까?"
"그럼. 그리고..." 데이비드가 샤오메이를 바라봤다. "난 널 사랑해. 그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그들의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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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CIA 사무실
"데이비드? 대답해 봐." 윌슨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죄송합니다. 생각에 잠겨서..."
"그 여자와 무슨 얘기를 했나?"
데이비드는 잠시 망설였다. 샤오메이를 보호해야 했다.
"그냥... 근황 얘기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존스 요원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럼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얘기는 전혀 안 했다는 거군?"
"네."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 하지만 앞으로 그녀와 접촉하면 즉시 보고해.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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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바이두 본사
샤오메이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용린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프로젝트 용린 - Phase 3
14억 사용자 데이터 수집률: 97.3%
AI 학습 진행도: 89.7%
칩 설계 완성도: 95.2%
"정말 대단해..." 샤오메이가 중얼거렸다.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이 MIT 시절 꿈꿨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리언홍 CEO가 들어왔다.
"샤오메이, 워싱턴 출장은 어땠나?"
"네, 잘 마쳤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었지?"
샤오메이가 잠시 망설였다.
"개인적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친구?"
리언홍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혹시 미국 정부
관련 인물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대학 동기예요."
"대학 동기라..." 리언홍이 의심스러워했다. "혹시 그 친구가 CIA나 정부기관에..."
그때 샤오메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데이비드에게서 온 문자였다.
"괜찮아? 걱정돼. 3일 후 만날 수 있을까?"
리언홍이 메시지를 흘끗 봤다.
"영어로 온 메시지네?"
"네... 미국 친구입니다."
"이름이?"
샤오메이는 순간 당황했다.
"데이... 데이빗입니다."
"데이비드? 성은?"
"그냥... 친구예요."
리언홍은 뭔가 수상하다고 느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용린 프로젝트에 집중해. 곧 중요한 발표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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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워싱턴 D.C. 포토맥 강변
데이비드는 강변 산책로를 걸으며 샤오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샤오메이야, 나야."
"데이비드... 지금 전화하면 안 돼."
목소리가 긴장되어 있었다.
"왜? 무슨 일 있어?"
"회사에서 의심하고 있어. 우리가 만난 걸."
"그럼 어떻게...?"
"내일 밤 12시에 듀폰 서클로 와. 혼자서."
"위험하지 않을까?"
"괜찮아. 하지만...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어."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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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듀폰 서클
데이비드가 도착했을 때 샤오메이는 이미 분수대 앞에 서 있었다. 어두운 색 후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왔구나."
"너 괜찮아?"
"아직은.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어."
샤오메이가 주변을 둘러본 후 데이비드에게 다가섰다.
"데이비드, 내가 왜 너한테 용린 칩을 줬는지 아니?"
"중국의 기술 수준을 알려주려고?"
"그것도 있지만..." 샤오메이가 망설였다.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어."
"뭔데?"
"나는... 나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 개발자야."
데이비드가 놀랐다.
"핵심 개발자라고?"
"14억 데이터를 분석하는 AI 알고리즘을 내가 만들었어. MIT에서 연구하던 그 기술을 완성한 거야."
데이비드는 충격을 받았다. 샤오메이가 단순한 연구원이 아니라 중국 반도체 혁신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것을.
"그럼 너는..."
"맞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 나야."
샤오메이의 목소리에 죄책감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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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시절 회상 - 2008년 봄
"샤오메이, 졸업하면 뭐 할 거야?"
도서관 옥상에서 둘은 캠브리지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으로 돌아갈 거야."
"왜? 미국에 있으면 더 좋은 기회가..."
"내 나라야. 중국도 미국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샤오메이가 데이비드를 바라봤다.
"너는?"
"나도... 한국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 아버지가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싶고."
"그럼 우리 각자 자기 나라를 위해 일하는 거네."
"응. 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기술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면서."
데이비드가 샤오메이의 손을 잡았다.
"약속해. 어떤 일이 있어도 서로 적이 되지는 말자."
"약속해."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한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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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듀폰 서클
"그때 약속 기억해?" 샤오메이가 물었다.
"서로 적이 되지 말자는?"
"응.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니야." 데이비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적이 아니야. 절대."
"하지만 내가 만든 기술 때문에 미국이..."
"샤오메이." 데이비드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너는 과학자야.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없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그리고..." 데이비드가 잠시 망설였다. "나는 아직도 너뿐이야, 내 마음속에."
샤오메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이 10년 동안 한 순간도 널 잊은 적이 없어."
두 사람이 포옹했다. 차가운 11월 바람이 불었지만 따뜻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이야."
샤오메이가 흐느꼈다.
"상관없어. 사랑에 같은 국적이 필요해?..."
"데이비드..."
샤오메이가 가방에서 USB를 꺼냈다.
"이게 뭐야?"
"용린 칩의 완전한 설계도야. 그리고..."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14억 데이터 수집 시스템의 구조도 들어있어."
데이비드가 깜짝 놀랐다.
"이걸 왜...?"
"미국이 대비할 수 있게. 균형이 필요해. 한쪽이 너무 앞서가면 위험하니까."
"하지만 이건 반역 행위야."
"나는 중국인이기 전에 인류의 일원이야. 그리고..." 샤오메이가 데이비드를 바라봤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싶어."
데이비드가 USB를 받아들였다.
"고마워. 하지만 너는 어떻게 될 거야?"
"모르겠어.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그때, 어둠 속에서
검은 세단 두 대가 듀폰 서클 주변에 나타났다. 중국 국안부 요원들이었다.
"타깃 발견. 미국인과 접촉 중."
"뭔가 전달하고 있습니다."
"즉시 체포하라."
차 문이 열리고 요원들이 나왔다.
샤오메이가 그들을 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돼... 벌써?"
"누구야?" 데이비드가 물었다."
중국 국안부야. 날 데려가려고 온 거야."
요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샤오메이, 빨리 도망가."
"너는?"
"난 괜찮아. 미국 시민이니까."
"아니야. 같이 가자."
"안 돼. USB를 미국 정부에 전달해야 해."
샤오메이가 데이비드에게 키스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녀가 반대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멈춰!" 요원들이 외쳤다.
데이비드도 다른 방향으로 뛰었다. 총소리가 들렸다. 위협용 공포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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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후, 데이비드의 아파트
데이비드는 숨을 헐떡이며 아파트에 도착했다. 다행히 요원들을 따돌렸다.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파일들이 나타났다.
용린 칩 완전 설계도 14억 데이터 수집 시스템 AI 학습 알고리즘 소스코드
"세상에..."
이것은 중국의 모든 비밀이 담긴 보물창고였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무사히 도착했어. 하지만 이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사랑해. - S"
데이비드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딘가에서 샤오메이가 공항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의 손에는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USB가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금지된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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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베이징 수도공항
샤오메이는 국안부 요원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린샤오메이, 너는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조사받게 될 것이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미국인과 무슨 얘기를 했나?"
"개인적인 얘기만..."
요원이 그녀의 가방을 뒤졌다. 다행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일단 집에 가 있어라. 감시가 붙을 것이다."
공항 로비를 나서며 샤오메이는 생각했다.
'데이비드, 부디 그 정보를 잘 활용해 줘.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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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CIA 본부
데이비드는 윌슨 부국장에게 USB를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
"중국의... 중요한 정보입니다."
"어떻게 구한 거지?"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윌슨이 USB를 컴퓨터에 꽂고 파일들을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놀라움으로 변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정보군. 어떻게 구했는지 묻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윌슨이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네 주변에 더 많은 감시가 붙을 것이다. 조심해."
"알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사무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적국에 있고, 조국과 정의 사이에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이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