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의 신호등이 노란색일 땐….

4부<문을 열며> 제27장. 내적 통제력 훈련: WDEP System

by 박광석

하진은 두 손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12월의 바람은 매서웠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 하나까지 모조리 떼어버리려는 듯.


형은 수시로 지원했던 학교에 모조리 떨어졌다.

이름조차 생소한 학교에 겨우 합격했다.

늘 그랬던 엄마와 아빠, 늘 닫힌 형의 방.

모든 게 그대로였다.


상담실 문 앞에서 하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다음 주가 상담 마지막이다.

가족도, 상황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홀로 설 수 있을까?


하진은 한 발을 내디뎠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 안 들어가면, 한 주쯤 더 미룰 수 있을지도.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따뜻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어! 하진아. 문밖에 서 있는 네 모습을 보았어. 내 눈이 신통하지?”

영애의 목소리는 포근했다.


하진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영애와의 만남에 의존하면 안 되니까.

홀로 서야 하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힘들 때 없어요?”

영애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할까?”

“선생님은 힘들 때 어떻게 하나? 그게 궁금해서요.”


“다음 주에 상담을 마친다니까, 그게 걱정되는 거지?”

하진의 눈이 웃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영애는 상담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대각선 쪽의 아주 작은 글씨를 가리켰다.

“글자가 보이니?

‘The ultimate goal of counseling is for clients to become their own counselor.’

이젠 네가 너의 상담자가 될 수 있겠어?”


하진은 긴장했다.
“어떻게요? 선생님은 스스로 상담하세요?”

“그럼, 매 순간 선택할 때마다…. 너도 자기 상담을 해볼래?“

”제가 저의 상담자라고요?“


영애는 의자를 조금 앞으로 당기며 말했다.

“겁나? 네가 너에게 질문을 던지기만 하면, 네 마음이 알아서 대답할 텐데도?”

하진은 숨을 멈췄다.


W는 Want를 묻는 거야. 넌 뭘 원해? D는 너의 Doing을 묻는 거야. 넌 무슨 전행동을 하고 있어? E는 Evaluation이야. 네 행동이 네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지 묻는 거지.”


하진의 몸이 달려들었다.

“그거 자기 성찰 말하는 거죠?“

”그렇지.“


영애는 계속했다.

”P는 Plan을 묻는 거야. 네 행동이 네가 원하는 거에 도움이 안 되면? 넌 어떻게 할래?“

“바꿔요. 새로운 행동으로.”

“그렇지?“


하진은 이제야 긴 숨을 쉬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나의 상담자가 된다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영애는 볼펜을 하진에게 주며 말했다.

“연습 하나만 해볼까? 네가 속상한 상황 하나만 적어볼래? 그리고 여기 W.D.E.P.질문에 해당하는 대답을 해보는 거야.”


하진은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속상한 상황: 엄마가 공부하라고 잔소리한다.

Want: 허접한 하진에서 벗어나는 것.

Doing: 엄마의 잔소리에 반항한다.

Evaluation: 도움이 안 된다.

Plan: 모르겠다.


하진이 내민 작업지를 보고 영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주 잘했어.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할지 Plan이 어렵지?“

하진도 따라 웃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그래도 좋지만,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면 Plan이 더 잘 찾아지거든. 다시 한번 같이해볼까?”


Want: 네가 허접하지 않으려면 네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어?”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 받는 거요.”

Doing: 네가 반항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

“일부러 공부를 안 해요. 엄마가 하지 말라는 게임만 해요.”

Evaluation: 어때? 게임이 좋은 성적에 도움이 되든?”


영애의 질문에 하진이 대답하며 다시 적은 작업지를 영애는 가리켰다.

Want: 공부 열심히. 성적 향상.

Doing: 일부러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기.

Evaluation: 도움이 안 된다.

Plan:


“이제 Plan이 나오니? 좋은 성적 받으려면 게임 말고 다른 것 어떤 것 하고 싶어? ”

하진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공부해야겠지요.”


영애는 하진이 잡은 볼펜을 멈추며 물었다.

“네가 공부하는 이유는?”

하진은 눈을 끔뻑거렸다.


영애는 작업지의 Want를 집으며 다시 물었다.

“네가 공부하는 이유는, 엄마가 시켜서야? 아니면 네가 원해서야?”

이제야 하진은 웃으며 당연한 듯 대답했다.

“물론, 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죠.”


영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 네가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데….”

하진이 웃는 눈을 흘기며 영애를 쳐다보자 영애는 덧붙였다.

“모든 Plan은 관계를 해치지 않아야 더 좋겠지?”


영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 탁자로 가다 말고 하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따뜻한 물?”

“아니요, 차가운 물요.”


하진은 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통제하는 엄마에게 복수하려 일부러 공부하지 않은 거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계획은 관계를 해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선생님, 저…. 엄마를 괴롭히려고 제가 망가진 거죠?”

하진은 영애가 가져온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엄마를 괴롭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하진의 질문은 간절했다.


영애는 잠시 생각한 뒤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너에게 공부라고 요구할 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겠지? 무슨 생각을 했어?”

“음….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를 이용하는 거다.’ 이렇게요.”


물을 한 모금 입에 물고 있다가 삼킨 영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이런 생각도 가능할까? ‘엄마가 몹시 불안하구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운가 보다.’ 이렇게.”

“그래도. 선생님! 엄마는 엄마잖아요. 자기 불안하다고, 자식에게 그러면 안 되죠. 옳지 않아요.”


영애는 하진의 말투에 깔깔 웃었다.

“내가 글라써 박사의 교차로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요?”

하진의 눈은 반짝였다.

영애가 무슨 얘기를 해준다고 했을 때는 항상 재미있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교차로 있잖아? 막 교차로에 들어섰는데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겠어? 네가 운전자라면?”


하진은 오토바이 탈 때를 생각하며 말했다.

교차로의 신호등이 노란색일 땐… 멈추는 거 아녜요? 아니 가도 되나? 교차로 중간에서 빨간불로 바뀌면 안 되는데….”

영애는 얼굴을 더 들이밀며 말했다.

“멈췄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트럭이 속도를 내어 내차 뒤를 받았다면? 아니면…. 그냥 갔는데 옆에서 오는 차가 내 차 옆구리를 받았다면?”


“에! 그러니까 백미러도 보고, 여러 상황을 봐야지요.”

“그렇지? 사고 안 나는 게 더 중요하지?”

“물론이죠.”


영애는 도장 찍듯 다시 물었다.

“교통 법규 어겼다고 딱지를 떼더라도 말이지?”

하진은 등을 기대고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선생님. 엄마랑 사람들이랑 잘 지내는 것이 교통사고 안 나는 거예요?”


영애는 더 크게 웃었다.

“어떻게 이렇게 이해가 빠를까? ‘옳다.’ ‘맞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지를 묻는 거야.”

영애는 웃었지만, 하진은 심각했다.

“그게 중요하긴 하지만,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영애는 말했다.

“‘옳다’, ‘맞다’… 그게 외부 통제의 명분이 될 때가 많아서 말이지. 힘 욕구에 중독된 사람처럼.”

하진이 대꾸했다.

“그럴수록 더 불행해지겠네요.”


문을 나서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쳤다.

건널목에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분주히 길을 건너려다, 모두 뒷걸음질을 쳤다.

꼬리물기를 하려는 차 한 대가 신호를 위반하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진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지금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하는 행동은 그것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새로운 행동을 계획해볼 수 있을까요?

특히, 당신의 새로운 계획은 관계에 도움이 되나요?


※내적 통제력 훈련: WDEP System을 활용한 자기 상담(Self-Counseling)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외부를 바꾸려고 애쓰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내적 능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 도구가 WDEP System이다.

WDEP 질문에 대답해보는 과정을 통해, 외부 통제에서 선택이론으로 사고가 전환된다.

또한 내적 통제력 훈련을 통해, 내가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내적 힘을 체험한다.

실제 상담에서는 상담자가 질문하지만, 상담이 끝난 후에는 자기가 상담자가 되어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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